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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7/22 00:00:00  홍경희




[당신을 찾습니다] 조건없는 사랑 베풀던 화전민 출신 사장님
가난에 한맺힌 노모 소원 따라 봉사 / 홍경희


 

 



[인터뷰365 홍경희] 화전민촌의 나무꾼 소년이 자라서 사장이 되어, 번 돈을 어린이와 이웃 복지에 돌리던 일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의 미담이다. 주인공은 서울 화곡동에 살던 이중희(당시 48세)씨.


“장작개비 한 지게를 지고 큰마을에 내려가 이집저집 팔러 다니다가 들어선 집이 교장선생님댁이었지요. 두 끼를 굶고 수십리길 산등을 넘어 창자가 달라붙었을 때였어요. 교장선생님은 구경도 못한 쌀밥 한그릇을 먹여주고 시세보다 3배가 되는 나뭇값을 주더군요.”


이중희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인정을 도저히 잊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경북 울진군의 화전민 마을. 불을 질러 만든 밭에서 옥수수와 고구마를 갈며 살았다고 한다.


“12살 때 7남매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노래처럼 부지런하면 밥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1년을 하루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버릇도 그때부터 익힌 것입니다.”


그는 새벽 5시에서 밤 11시까지 막노동을 하며 벽돌 쌓듯 사업기반을 닦았다. 일에는 무지막지했으나 화전민 출신 사장의 마음은 무골호인(無骨好人)이었다. 팔아야할 집에 전세를 살던 가난한 사람이 불운한 일이 겹쳐 대가족을 이끌고 거리로 나서야할 판일 때 이씨가 빚을 안고 집 한 채를 그냥 넘겨주기도 했다.


“내 마음은 아직도 불을 질러 밭을 일구던 때와 다름없어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남을 도울 수 있는’ 화전민이 됐다는 것이겠죠. 내가 먹고 남는 돈을 이웃에 돌리는 것보다, 내가 덜 먹고 먹을 것을 아껴서 남을 돕는 일이 진정한 이웃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심값 몇 백원을 아끼고 살면서도 서울 화곡동 지역의 어린이와 노인복지사업 등에는 거액의 지원을 쏟아 넣던 이중희씨. 공사감독에서 인부까지 겸하며 2천만원의 자비를 털어 신정초교에 옥외교실을 지어준 그는 전부터 이미 부족한 과학실의 보충시설, 불우한 학생들의 학용품 등을 도왔다고 한다.


“아들 잘사는 것보고 죽는 것이 우리 어머니 소원이었습니다. 이제는 남을 많이 돕는 걸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십니다. 생전에 그 뜻을 이뤄드리고 싶지만 아직도 내 인생은 부족하고 못난 점이 많아요,”


어릴 적 자신이 받았던 작은 도움을 잊지 않고 아낌없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던 그의 소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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