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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0/01 00:00:00  이근형




2006 독일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 리포트 ②
개방적 선수 운용으로 우승 트로피 안아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2006년 7월 9일 베를린의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프랑스전을 앞두고, 언론은 하나같이 “유로 2000의 복원판” 이라고 헤드라인을 실었다. 왜냐면 당시 월드컵의 4강 대진이 모두 유럽 팀이었다는 점, 결승 주인공 프랑스가 유로 2000 당시처럼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꺾고 올라왔다는 점, 더해서 8강서부터 유럽의 강세가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로 2000 당시와 똑같다고 한 목소리 한 이유는, 유로 2000 결승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우승컵을 놓고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두 팀 모두 수비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포메이션이 바뀌더라도 끝까지 유지했던 마켈렐레 / 비에라 라인, 그리고 가투소 / 피를로 라인이 존재했다. 이들은 이번 대회 최강의 수비형 미드필더 듀오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다. 마켈렐레 / 비에라, 가투소 / 피를로 듀오 모두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하면서 혼연일체가 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띠였다. 게다가 두 팀의 포백 수비는 말 그대로 정석이었다. 고른 존 디펜스와 상대팀 주요 스트라이커들을 꽁꽁 묶는 영리한 움직임과 철저한 커버링이 돋보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결코 두 팀의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더불어 프랑스가 조금 더 우세할 것이라 예상했다. 바로 그것은 정답이었다. 두 팀은 스코어상으로 1-1 무승부 기록, 그리고 프랑스에게는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


지네딘 지단은 전반 7분에 얻은 페널티킥을 가뿐히 성공시키며 잠시간 승부의 추를 프랑스로 옮겨놓았다. 이로써 프랑스는 초반부터 지루하게 이뤄지던 공방전에 정점을 찍는 듯 했다. 이것은 지단의 신기 (神技) 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었다. 전반전부터 철벽 수비를 펼치며 프랑스의 앙리 / 지단 듀오, 그리고 양쪽 윙어 말루다 / 리베리를 막아섰던 이탈리아 수비진을 말루다가 페널티킥으로 귀결, 지단이 득점으로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 지단의 페널티킥 성공은 월드컵 결승전 최다골 타이 기록이라는 값진 레코드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프랑스에게 쏠리는 양상을, 차세대 세계적 마에스트로 피를로가 엎어놓았다면 그것은 과언일까.


피를로는 전반 19분 얻은 코너킥을 안전하게 프랑스 문전 앞으로 띄워보냈고, 그것을 센터백 마테라치가 헤딩 골로 연결시키며 순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평론가들은 어찌 보면 공격적인 센터백 마테라치의 네스타 대체가 이탈리아에게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조별리그 체코전에서 체코의 기선을 제압하는 마테라치의 골,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에서 프랑스에게 옮겨진 추를 다시 중앙으로 갖다놓는 마테라치의 천금같은 동점골이 연속해서 터졌기 때문이다. 마테라치는 이미 이전부터 세리에 A에서 공격적인 센터백으로 이름났는데, 월드컵 결승전을 통해 비로소 세계적으로 그의 공격력이 공인되는 순간이었다.



전반 20분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호불호가 갈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공방전이었다. 일부에서는 결승전 치고 너무 지루했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양팀의 공격과 수비가 고르게 분포되며 서로 막아서고, 서로 앞서가는 원활한 피드백이 있었다며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두 팀의 공방전은 왜 그들이 세계 축구의 강자를 가리는 결승 무대에 올라섰는지 증명케하는 매치였다. 교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면서 너무 치고 올라온 상대를 묶거나, 각자 파트를 담당하여 맡은 선수의 맥을 끊는 커버링, 그리고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 골키퍼인 부폰과 파비앵 바르테즈의 놀라운 선방력이 돋보였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는 연장전에 감정 폭발, 이탈리아 선수단과 충돌을 일으키며 지단이라는 조타수를 잃는 결과를 낳았다. 어쩔 수 없었다. 두 팀의 주고 받기가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파울이나 심한 언쟁을 통해 흐름을 바꿔서 어느 한 쪽이 패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렸다. 지겹도록 지단을 마크하던 마테라치는 지단과 언쟁이 붙었고, 여기서 마테라치는 평소 행동처럼 과한 표현, 즉 지단의 친인척까지 끌어들이는 농담을 했다. 지단은 가뜩이나 경기도 안 풀리는데, 상대 선수가 자신을 조롱한 것에 대해 복수하는 마음으로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가격했으며, 결승전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는 연장 110분 지단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계속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이탈리아 선수들의 평정심 부족이 또다시 드러났으며, 퇴장 기록을 꽤나 많이 보유하고 있던 지단과 물리적 충돌로 인해 어느 한 쪽이 망하는 스토리로 갔다라고 말이다.


팀의 생명 지단이 경기에서 빠지는, ‘어느 한 쪽이 망하는 스토리’ 는 결국 프랑스의 이야기였다. 연장전 30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120분 풀타임을 마친 이들은, 승부차기로 피파 트로피의 주인공을 가리게 되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결승전 이후 역사상 두 번째 승부차기 결승전이 진행되었다. 프랑스는 예봉 지단의 부재로 인해 키커를 선택하는데 있어 신중을 가했고, 이탈리아 역시 지금껏 메이저 대회에서 승부차기로 이득을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에 역시나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승부차기 진행 이후 각 언론들이 기사를 쓸 때, 이탈리아의 승부차기 징크스가 과연 발목 잡을 것인가에 대해 힘을 실었다. 주변의 이러한 과소평가, 결국 이탈리아 선수들이 스스로 해결했다. 바로 그 방법은 그들의 최대 약점을 보완하는 것, ‘평정심 찾기’ 였다.


이탈리아는 피를로, 마테라치, 데로시, 델피에로, 그로소 모두 깔끔하게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비록 잔루이지 부폰이 그 어떤 프랑스의 승부차기 키커의 슛을 막아내지 못했고, 두 번째 키커 트레제게가 실축하는 행운을 얻었지만 말이다. 결국 이탈리아 키커들의 놀라운 집중력과, 하나 성공했다고 자축하지 않는 평정심 찾기가 승부처의 요인이었다. 실제로 이탈리아 선수들은 승부차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 모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경기 결과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미동하지 않았다. 그간 감정 싸움, 감정 주체 불가 때문에 승부의 결정 지점에서 패전을 당한 이탈리아였다. 어쩌면 그런 요소들이 이탈리아로 하여금 ‘승부차기 징크스’ 라는 기분 안 좋은 별칭을 달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지적 받았던 ‘평정심’, 이탈리아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되찾았다.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그리고 종합적인 평가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승부차기에서 전원 키커가 득점에 성공하는 릴레이를 선보이며 프랑스를 5-3으로 누르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의 고지에 올랐다.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왔던 결승전의 필드골 승부 갈리기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무승부를 통해 3연패의 기록이 깨졌지만, 2002 대회 이후 이탈리아가 피파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다시금 세계 축구의 판도는 유럽으로 옮겨졌고, 이탈리아는 1934년, 1938년, 1982년 이후 네 번째로 세계 축구 최강자의 자리에 그들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이 경기에서 100번째 출장으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칸나바로는 월드컵 우승에 힘입어 2006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 을 수상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이끄는 23명의 아주리 전사들은 우승하기까지, 사실 주변의 평가에 의해 굉장히 폄하된 부분이 많았다. 먼저 각 유력 언론들로부터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등과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극찬을 받으면서도, 월드컵 지역 예선과 친선 경기에서 보여지는 ‘프란체스코 토티에게로 집중되는 경기 운용력’ 때문에 그들에게 한계점이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피 감독의 개혁 이전만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인차기, 델피에로, 토티로 대변되는 스타 플레이어에게 관심이 쏠리거나, 그들을 목적으로 짜는 작전에 기대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힘에 의해 팀이 움직이면, 분명 밑천이 드러난다는 것을 리피 감독이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스타 플레이어 우대를 지양하고 프로축구 무대에서 진짜 실력으로 무장한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는 개방적 선수 운용으로 결국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리피 감독의 이러한 코칭이 전문가들로부터 칭찬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득점의 분포에서부터 나타났다. 거의 득점이 보이질 않는 윙백 및 수비수들의 골 레이스 (참브로타, 그로소, 마테라치), 중앙 미드필더 바로네의 체코전 과감한 문전 돌파 및 공격 조달, 그리고 노장들의 경기 역전 (델피에로) 등의 긍정적 결과가 이어진 것이다.


또한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공격과 수비를 잘 하면 결국 월드컵을 우승할 수밖에 없는 진리를 이탈리아가 증명했다. 비록 네스타의 부상 및 도중 하차와 마테라치의 평정심 부족이 흠이었지만, 차카르도의 자책골 이외에는 필드 골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으며, 지단의 페널티킥으로 그나마 상대팀에게 하나 실점한 것이 전부인 실점의 결과물이 그것을 받쳐준다. 유벤투스 리그 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센터백으로 절정에 다다른 칸나바로의 냉철한 수비력, 양쪽 사이드 커버링과 오버래핑에 있어서 막히는 게 없었던 그로소 / 참브로타 라인,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단 2실점에 가장 큰 공신인 잔루이지 부폰의 선방력이 삼위일체를 이뤘다. 그것은 잔루이지 부폰의 2006 독일 월드컵 야신상 수상, 칸나바로의 <피파 올해의 선수상>으로 보답되었다. 게다가 승부처가 보이는 지점에서 과감하게 공격진을 대거 투입시키는 것은, 공격 축구의 진면목이었다.




1994 미국 월드컵 준우승으로 시작되어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 탈락,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 준우승, 2002 한/일 월드컵 8강 탈락, 그리고 2004 유럽축구선수권 토너먼트 탈락으로 이어지던 이탈리아의 갈지자 행보. 대업을 이루려던 아리고 사키, 체사레 말디니, 디노 조프, 그리고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놀라운 등장에 비해 비교적 만족하지 못할 성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르첼로 리피 감독 이전의 사령탑들이 비난받을만한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미신적으로 이야기 해서 운이 안 닿았을 뿐, 그리고 승부의 도처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는 ‘승부차기 징크스’, ‘평정심 부족’, ‘놀라운 대이변’ 등이 장애 요소였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그것마저도 실력의 하나라고 인정했기에, 파올로 말디니가 일찍이 대표팀을 반납하고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밥을 떠먹이는 행태를 벌이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마르첼로 리피 시절 그들이 월드컵 정상에 오른 것이다. 물론 2006년 5월에 터진 칼치오폴리의 여파로 인한, 이탈리아 축구의 갱생 의지도 월드컵 우승의 주요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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