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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4/03 18:22:45  정중헌




추기경 전도사 된 전속 사진작가 전대식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주기 추모사진전


 

【인터뷰365 정중헌】전대식씨(58)는 여러 신문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하다가 지난해 평화신문에서 정년한 평범한 중년이다.
그를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지난 2월 중순 경기도 양평의 갤러리 와에서 그가 찍은 김수환 추기경 만년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들을 접하면서였다.
2009년 2월 16일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1998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혜화동 주교관에서 10년 활동하다가 2008년부터 서울 성모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했다.
공적활동을 하지 못했던 말년의 3년여 기간, 김 추기경의 일상은 베일에 가려있었다.
그 당시 전대식 프란치스코(가톨릭 본명)만은 혜화동 거처와 병실을 무시로 드나들며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들을 기록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주기를 맞아 갤러리 와에서 열고 있는 추모사진전(2월 14일~4월 29일)에 전대식 작가는 김 추기경 만년의 모습들을 기록한 사진작품을 다수 발표해 관람자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추기경님은 명동교구청에 계실 때보다 은퇴 후 혜화동에서의 모습이 더욱 자애로워 보였습니다. 추기경님의 모습 안에는 풍요로움과 넉넉함이 배어있어요. 또한 그분은 보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고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셨습니다.” 

 

추모 사진전 작품 중 벚꽃이 만발한 혜화동 주교관 앞뜰을 산책하는 김 추기경의 앞모습은 깊은 사려와 지혜가 서린 대인다운 풍모를 보인다. 그러나 그해 여름 같은 장소에서 찍은 뒷모습에는 인간적인 고독이 스며있다. 필자에게는 그해 가을 단풍이 깃든 그 뜰에서 한 소녀와 산책하는 추기경의 뒷모습 사진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는 비서수녀님의 전화를 받고 휴일 아침 카메라를 메고 혜화동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진 속의 소녀가 추기경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밤새워 썼다는 ‘추기경님 사랑해요. 항상 기도합니다’라는 편지를 전하자 추기경님은 그 소녀의 손을 잡고 정겹게 아침 산책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주교관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몰랐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혜화동 주교관 뜰에서 한 어린이와 손을 맞잡고 걷고 있다. (2006.11)

 

김수환 추기경은 혜화동에서의 마지막 가을을 보내고 겨우내 투병하다가 선종했다.
3주기에 맞춰 지난 2월 전대식 작가가 엮고 출판사 눈빛에서 펴낸 추모헌정 사진집 <김수환 추기경>에는 병상에서의 모습 몇 커트가 실렸다.
전 작가는 양평의 갤러리 와에서 열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주기 추모사진전>을 김 추기경의 고향 대구에서 열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가 주최하는 이 초대전은 5월 2일부터 21일까지 매일신문사 1층 CU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다.


“국내 각 도시 순회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시회를 여는 것이 꿈입니다. 우리에게 큰 사랑을 남기고 가신 추기경님의 모습이 모든 이의 마음 안에 끊이지 않고 이어져 추기경님의 가없는 사랑을 온 누리에 전하고 싶어요.” 


전대식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을 근접해 찍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지금 그 분의 자료를 정리하고 국내외에 알리는 일까지 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75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국방일보를 거쳐 코리아헤럴드에 근무할 80년대 중반까지 그는 평범한 기자이자 가톨릭 신자였다.

 

“노사분규로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어요. 몇 군데 신문사에 면접도 보고 취업이 결정된 곳도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쉬는 기간 동안 제게 변화가 일어났어요. 가톨릭 영세 받은지 10년이 되었지만 성당도 제대로 못가다가 쉬는 기간 동안 매일 아침미사에 나가게 되었고 부부성가대에서도 활동하면서 신앙이 싹튼 거예요. 그러다가 1989년 평화신문에 사진기자로 입사해 추기경님의 거대한 삶을 세상에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섭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평화신문에서 사진을 담당하게 된 전 기자는 매주 한국 가톨릭의 동향과 함께 서울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동정을 찍어 보도했다.

 

“김 추기경님과의 첫 만남은 1989년 성탄 때였는데 그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성탄 전야에 낮은 곳을 향하셨던 추기경님은 그해 서울 용산구 신계동의 장애인 실직 노숙인 시설 베들레헴 집을 찾으셨어요. 철길 옆 오두막집, 허리를 굽혀야 오를 수 있는 다락방에서 추기경님께서는 장애인 행려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셨는데, 추기경님은 살아계신 성자같으셨어요. 그 순간 제가 이 분의 모습을 기록해야겠다는 사명을 갖게 되었지요.”


사제 수품 후 어머니 서중하 여사와 함께 (대구 주교관 1951. 9. 15)
그날 이후 전대식 기자는 추기경의 전속 아닌 전속 사진기자가 되었다.

 

“추기경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그 분을 보필하는 비서신부, 비서 수녀와 운전기사와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추기경님에게는 1990년부터 선종 때까지 12년간 추기경님을 그림자처럼 보좌한 백성호(세례자 요한) 비서신부님과 1991년부터 10년 넘게 비서로 계시며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신 김 유스티나 수녀님, 2003년부터 선종하실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추기경님을 돌본 노 율리안나 비서수녀님이 계셨어요. 아 그리고 운전기사로 39년을 봉직한 김형태씨(요한)를 빼놓을 수 없어요. 매일 오전 이들에게 추기경님의 일정을 알아내 추기경님의 뒤를 쫒았지요. 이분들의 도움으로 추기경님의 근황을 보다 밀착해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전대식 기자가 김 추기경과 본격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2년 김수환 추기경 상본(예수, 성모, 여러 성인들의 모습을 카드 모양에 담은 성화) 제작용 사진을 의뢰받으면서 부터다.
전 기자는 까만 한복을 입고 밝게 미소 짓는 추기경 사진을 제공했고, 교구청 비서실은 이 사진을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세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 희생과 봉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도로써 보답하겠습니다’ 라는 추기경의 친필을 넣은 상본을 만들었다.

 

“추기경님은 한국교회의 상징인 만큼 신자들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장 친근한 모습의 사진을 골랐어요.”


한국사상 첫 추기경에 서 된 후 청와대를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환영한 가운데 박근혜 양이 추기경에게 인사하고 있다. (1969. 7. 1)

 

상본의 반응이 좋자 이후에도 열쇠고리와 카렌다 등 김 추기경의 사목 모습이 담긴 여러 사진을 선보이면서 전 기자는 ‘김 추기경 전문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추기경님은 참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셨고 저는 그런 모습들을 많이 찍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 집 없는 사람들, 병실의 어린이, 대구 지하철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신음하는 유가족들, 온갖 시련을 딛고 찾아온 정치 지도자 등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사회의 약자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위로하셨습니다.“

 

전 작가는 자신이 추기경의 활동 모습을 찍은 것은 2007년 가을까지였다고 회고한다.

 

“주교관 안에서 생활하시다가 2008년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입원하시기 전에도 부축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으셨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추기경님께서는 기력이 다하실 때까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 당시 추기경님의 일상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비서신부님과 수녀님의 양해를 받아 주교관에 들어가 새벽 6시의 성무일도(기도) 모습과 숙소 생활, 식사하시는 일상까지 모두 담아 두었습니다.”

 

전씨는 2008년 4월 생신 때 김 추기경이 링거주사를 맞은 채 축하 케익의 촛불을 끄는 순간을 포착, 여러 매스컴에 이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그해 추석 다음날 평화신문 식구들과 문병을 갔는데 책도 보시고 대화도 나누며 건강이 좋으셨어요. 그날 밤 1층까지 내려가 창문에 걸린 보름달을 보며 혜화동 주교관을 다녀오고 싶다던 모습이 지금도 선해요. 몇 달 후 성탄 전야에 인사차 병실을 찾았는데 기동조차 힘든 추기경께서 병원 1층 기도실로 내려가 환우들과 손잡고 미사를 드리셨어요. 휠체어에 앉아 담요를 덮은 추기경님께서 생명 나눔 의식인 촛불을 들고 계시는 모습을 찍은 게 생전의 마지막 사진이 되고 말았지요.” 
 

서울 용산구 신계동 노숙인들의 쉼터 인 베들레헴의 집을 찾아 성탄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김 추기경 (1089. 12)

 

전대식 작가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추기경의 미발표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여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자신이 찍은 <추기경의 눈물>과 가톨릭의료원에서 찾아낸 <각막> 사진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대표적인 케이스다.

 

“<추기경의 눈물>은 김수환 추기경이 눈물을 보인 유일한 사진입니다. 저 역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 사진을 찍었고요. 평화신문이 성탄 특별 인터뷰를 위해 2005년 12월 15일 교구청 집무실을 찾았을 때입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셔 부축을 받고 집무실에 나온 추기경님께서  황우석 박사 배아줄기세포 진위논란 소식을 접하시더니 갑자기 입술을 바르르 떠시는 거예요. 예감이 이상해서 저는 망원렌즈로 바꿔 끼고 추기경님께 초점을 맞췄어요. 추기경님께서 안경을 내리시며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소처럼 우직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시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거예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찍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흘리시지 않던 팔순의 추기경께서 눈물을 흘리신 까닭은 누구보다 우리나라를 사랑하신 그분께서 도덕성의 붕괴를 우려하셨던 것 같아요. ‘누구의 원망 아닌 우리의 문제’라며 ‘우리나라 사람들 머리는 좋은데  좋은 것에 쓰지 못해’ 라는 말씀에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어요.”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정직과 남을 위한 배려, 작은 것 하나라도 법을 지킬 것을 역설했는데 가톨릭교회가 성원했던 황우석 교수 사건을 매우 안타까와하며 흘린 눈물 아니겠느냐고 전 작가는 말했다.

 

“<추기경의 눈물>은 제 특종이라고 생각했는데 평화신문에 싣지는 못했어요. 큰 어른이 눈물을 보인 사진이 대외로 나가는게 바람직 못하다는 주위의 판단에서였어요. 대신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안경을 벗은 사진이 조선일보 1면에 <추기경의 눈물>로 크게 보도되면서 그날 저녁 TV 뉴스에 눈물 흘리는 추기경의 동영상이 방영되기도 했지요.”


음력 설날 화재로 마을 전체가 타버려 천막생활을 하는 빈민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김 추기경. (서울 송파구 문정2동 화훼마을 1999. 2. 15)
전 작가는 <추기경의 각막> 사진에 얽힌 우여곡절도 털어놨다.
김 추기경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 당시 한마음 한몸 운동에 동참하며 각막기증을 약속했고, 선종 후 두 눈을 적출해 실명자에게 이식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찍지는 못했다.

 

“선종 3주년을 맞아 뭔가 새로운 사진을 매스컴에 공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있는데 우연히 가톨릭의대 주천기 교수팀이 안구적출 과정에서 찍어 둔 추기경님의 각막 사진을 확보하게 돼 기뻤어요. 그런데 끔찍해서 쓸 수가 없다는 거예요. 다행히 중앙일보 기자의 끈질긴 집념으로  각막 사진이 <이 눈속에… 김수환 추기경은 살아있다>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KBS, MBC, SBS, EBS와 종편 TV뉴스에도 보도되면서 장기기증운동이 활기를 띠게 됐어요.”

 

기자에서 이제는 사진작가로 타이틀이 바뀐 전대식은 자신이 찍은 사진만이 전부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김수환 추기경과 관련된 사진을 발굴하고 수집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독일 유학시절 사진 등 옛날 사진들을 수집해 추모 사진전뿐 아니라 추모사진집에 자신의 작품과 함께 게재해 추기경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사진집 서문에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써주신 것처럼 김수환 추기경님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 억눌린 분들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으며,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으셨습니다. 저는 성직자로서 뿐 아니라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모습에도 애착이 갑니다. 1994년 새해 가톨릭의 한 복지관에서 한복을 입고 꼭두각시 춤을 추던 추기경님, 어린이와 외국인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진은 성직자 김수환을 더 친근하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민청학련 사건으로 공주교도소 수감된 함세웅 신부 면회 가는 도중 개울 옆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 추기경, (1975년 충남 마곡사)
20여년을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을 찍어온 전대식 작가가 가장 아끼는 사진은 무엇일까.
그는 추모 사진전 포스터와 카드, 사진집 표지에 실린 김 추기경의 미소 짓는 사진을 꼽았다.

 

“2007년 11월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이자 추기경 서품 50주년 경축행사 때 찍은 사진이예요. 추기경님이 좋아하셔서 5X7 사이즈로 인화해 드렸더니 사진액자를 집무실에 놓아두셨지요.”

 

전대식 작가는 자신이 김수환 추기경 알리는 일에 뛰어든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명예 때문도 돈 때문도 아닙니다. 그분이 선종하자 일반인들까지 명동성당 앞에 장사진을 쳤던 추기경님의 정신과 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하는 겁니다. 김 추기경님은 국가적 큰 일에 명쾌한 해답을 주셨고, 사회적 혼란기에 역대 대통령들을 자문해 주며 돌파구를 여셨으며, 무엇보다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떠나셨지만 저는 사진을 통해 그분의 정신과 사랑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게 마련인 세상에서 사진을 통해 김 추기경님이 그때 당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록으로 정리하는 한편 그분의 메시지를 많은 분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려고 해요.”

 

김수환 추기경과 전대식 작가, 김 추기경이 전 작가의 손을 잡고 있다.(혜화동 주교관에서 2005.12)

 

전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바보의 나눔’과 여러 기념사업도 거들면서 해외전을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사진작가의 눈으로 본 김 추기경은 어떤 분이냐고.


“천사처럼 아이처럼 맑으신 분이에요. 세상의 고통과 불쌍한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신 분이고요. 요즘처럼 메마른 세상에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절실하게 그립습니다.”

 

 

[인터뷰이 나우] 일간신문에서 국방부를 출입하며 취재 촬영한 사진을 모아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으로 사진집을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추어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KBS가 9시 뉴스로 소개하기도 했는데 오는 8월 8일 하오 4시 30분에는 mbn-tv가 저자와 사진에 얽힌 비화를 생방송으로 소개할 예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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