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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2/08 00:00:00  서영석




잘 짜여진 스토리라인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열광적인 관객 반응 속 군데군데 아쉬움 남아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연극계가 고사 직전에 있음의 근저(近底)는 대형 뮤지컬의 흥행과 무관하지 않지만 이미 대세는 뮤지컬이라는 현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굳이 뮤지컬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끔은 흥얼거리는 노래, 바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 ‘This is the moment’다. 황혼이 휘황찬란한 네온으로 바뀌면서 논현역의 사거리를 비롯한 강남의 밤은 애주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유혹한다. 특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공연장, LG 아트센터의 인근은 한 해를 서둘러 마감하려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고 일전에 보았던 뮤지컬 ‘Phantom of the Opera’의 뉘앙스를 풍기는 듯하다.

Robert Louis Stevenson 원작, Lesslie Bricusse 극작, 작사, Frank Wildhorn 작곡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너무도 유명하기에 굳이 작품에 대한 다른 기술은 오히려 사족을 다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1990년 미국 Houston, Alley Theatre에서 초연 후 세계 각국에서 선풍적 인기몰이에 나선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로 인간의 이성과 감정, 또 인간과 신의 존재라는 두 개의 축을 스토리라인으로 하고 지킬과 엠마의 러브스토리를 가미한 작품으로 금세기 최고의 뮤지컬로 손꼽히고 있다. 또 2004년 7월 21일, 8월 21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막을 올렸던 한국의 공연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게 전회 매진, 전회 기립박수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탄생 시킨 화제의 뮤지컬로 그 작품성에 대해선 세계적임이 이미 밝혀진 공연이다. 2005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 그 해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앵콜 공연을 통해 폭발적 인기를 모은 작품으로 또 조승우라는 걸출한 뮤지컬 스타를 탄생시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 일본 오사카와 동경 공연에서 한류의 위상을 더욱 높이기도 했다.



탄탄한 대본, 완벽한 무대의 최고 뮤지컬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최고 수준의 작품, 탄탄한 대본, 스타 배우들, 빅토리아 시대 현장에 있는 듯한 완벽한 무대, 조명 등 금세기 최고의 뮤지컬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 객석을 꽉 채운 극장의 하우스 조명(객석을 밝히는 기본 조명)이 서서히 조도를 낮추며 공연의 막이 올라간다. 막이 오르기 전 보여지는 무대에 관객들은 이미 주눅이 들어버린다. 초연에 비해 너무 정갈하게 수준이 높아진 무대, 생생한 생동감으로 다가와 당시대 영국의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훌륭한 무대로 우리의 수준이 무척 향상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오늘의 배우들, 지킬 역에 김우형, 루시에 김선영, 엠마에 김소현 등 이름만 들어도 관객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쟁쟁한 배우들이다.

막이 오르자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명성에 걸맞는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들, 그들이 뮤지컬 넘버(노래)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열광의 150분(인터 미션 포함)이 지나고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종합예술이 지니는 모든 면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탄탄한 대본, 최고의 배우들과 스탭들, 중후한 극장 공간 등 공연의 흥행과 작품성을 발휘하기에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공연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뮤지컬이 너무 노래와 춤이 부각되기에 흔히들 간과하기 쉬운 대본 즉 텍스트(책), 무엇보다 대본이 좋아야 한다는 지론을 아낌없이 보여준 공연이다.

극은 시종일관 선과 악, 인간과 신의 권위에 대해 대립구도를 강요한다. 악을 처단하는 것이 악인가? 악은 죽음으로만이 소멸되는가? 민주와 자유라는 껍질을, 가면을 쓰고 있는 현실의 가장 부조리, 종교인과 정치인, 장군을 악의 축으로 묘사는 것은 우리의 정서와 너무 흡사, 세계 공통적 악인들의 상징으로 규정을 지어버린다.




걸출한 부분들, 그러나 전체적 조화는 아쉬워


굳이 흠을 잡으려면 하나하나의 공연을 구성하는 면면들이 너무 뛰어나서 조화의 문제가 부각된 점이다. 특히 조명은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미적 감각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배우와 무대를 조금 상쇄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불꽃놀이 장면은 환상적 불꽃의 장경을 기대했건만 멀리서 희미하게 불꽃놀이라는 단순히 상징만으로 표현 관객들을 실망으로 이끌어 아쉬웠다.

각각의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 완숙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지킬 역의 김우형은 너무 감정에 치우쳐 대사의 전달에 미숙함을 드러내고 또 연기를 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모습에 자연스러움을 잃는다. 에너지를 가지고 내몰아치는 연기는 좋았지만 1막에서의 흥분이 2막까지 지속돼 작품의 구성을 도리어 떨어뜨리는 효과를 유발했다. 1막과 2막에서의 감정의 차별화를 위해 1막에서 자제와 절제가 필요함에 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혼자 들떠 있는 지킬의 연기는 후반부의 절정에서 빛이 바래, 아쉬움을 낳았다. 극도로 감정이 고조된, 통제불능의 배우는 관객을 불안하게 하는 위험요소가 있고 관객들의 혼란을 초래해 극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흩뜨린다. 감정의 배분에 세련미를 갖추었으면 앞으로 한국 최고의 배우(이미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더 큰 배우)로 탄탄대로를 보장받을 수 있겠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는 배우가 자연스레 눈에 뜨인다. 배우 김봉환과 김소현, 특히 김봉환은 평소에 보이던 그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완전히 작품에 녹아들어 백작이라는 직함과 엠마의 아버지란 모습만 보여 역시 능숙한 배우고 배우의 참모습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찬탄을 자아내게 했다. 또 한 명의 배우 김소현. 뮤지컬에서 노래가 연극에서의 대사와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의 대사를 느끼지 못하는 배우는 대사가 아니라 허공의 메아리처럼 객석을 공허하게 울릴 분이다. 이 작품에서 김소현은 자기의 노래를 충분히 느끼고 가슴에 닿은 노래로 관객들을 극중으로 몰고간다. 김소현, 엠마. 그의 모습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오직 지킬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존경하는 엠마의 모습만 투영하는 연기로 예전에 비해 보다 완숙해진 모습이다.

주인공은 공연의 성패에 책임을 져야함은 불문곡지의 사실이다. 주인공들은 그 능력이나 명성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모든 공연에 주인공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는데 반해 극을 끌고 가는 숨은 공신 코러스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박수를 받아야 하는 친구들이 바로 이 앙상블들이 아닌가.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조그만 순간도 결코 놓치지 않았던 최선의 연기는 바로 예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런 배우들이 가까운 미래에 좀 더 비중 있는 역할로 무대에 설 때 우리 뮤지컬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밝혀질 것이다. 관객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리액션으로 무대에 긴장감을, 공간을 꽉 채워주는 에너지, 완벽한 훈련과 배우들의 책임감이 빗어낸 무대예술의 최고의 가치, 자기 예술을 죽여야 종합예술은 빛이 난다는 정설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전체 공연을 통해 필자가 느낀 것 중 으뜸은 배우들의 노래가 다른 공연에 비해 너무 좋았다는 점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앞에 기술한 바와 같이 뮤지컬에서 노래는 연극의 대사로 배우들이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해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연출에 관한 아쉬운 부분들


또 다른 문제를 지적하자면 연출에서의 의문점이다. 연출의 가장 기본인 무대미술, 안무, 노래에 맞는 배우의 캐스팅은 절묘했다. 장면의 예를 들면 공연의 마지막 부분 루시의 침실에서 살해하는 장면에서 무대는 침대 하나만으로 구성되어있다. 윙이 무대의 반 정도를 가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무대 전체가 오픈되었다면 루시의 능력으로 큰 무대를 다 채웠을 수 있었을까? 연출의 캐스팅과 배우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에서 완급의 조절과 배우들의 감정의 폭을 컨트롤함에 있어 세심함이 떨어졌다. 또 무대와 객석을 너무 평면 위주로 구성, 공간을 적극 활용하지 못해 볼거리 제공에서 아쉬웠다. 현대 공연의 특성이 비주얼의 강조에 있음에 너무 자신만의 그림만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간다.

공연의 구성에 있어서도 조금은 의아한 부분들이 눈에 띤다. 사회적 악을 응징하던 하이드가 공연 후반 자신의 질투로 루시를 살해하는 장면은 대표적 의문이다. 창녀가 사회적으로 악의 부분인지 아니면 개인적 질투에서 유발된 것인지 살해 동기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다. 하이드의 혼선유발은 전체 공연의 이해를 엉뚱하게 변절시키는 부분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연출의 세기가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또 루시의 살해장면까지 끌고 가는 에너지의 미숙은 원작에서 인지 연출상 미스, 또 출연 배우들의 설정 미숙인지 클라이막스로 가는 부분 치고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살해 장면들에서도 과정에 비해 너무 싱겁게 살해하는 단조로움이 보인다. 지킬이 변호사에게 좀 더 다급하고 절실하게 다그쳤으면 하는 바람과 극적 감정을 고조시키지 못해 인간의 죽음에 대해 너무 맥없고 허무하게 지나쳐버린다. 필자가 아직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연출선상(演出線上) 지킬은 바닥에 하이드는 허공에(혼자 두 역을 하는 연기에서)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무엇이 선이고 악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의구심이 간다. 물론 이중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겠고 일반적 통념인 ‘선은 하늘이다’라는 관념을 타파하려는 실험인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선과 악의 기본적 대립구도, 진실한 사랑(지킬의 자살/선은 죽음으로밖에 지킬 수 없는 것인가?), 인간과 신의 정확한 관계설정의 오류는 옥의 티로 남아 앙금으로 깔리는 요인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선(지킬)이 자살하는 장소를 성당으로 끌고 와 종교와 신의 존재에 의문을 던진다. 종교와 신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굴레가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상상을 야기 시키고, 갑자기 살인에 대한 사회적 이슈들을 잊어버리고 너무도 평온한 모습들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러한 그로테스크한 모습에서 교회라는 배경을 깔고 있는 연기라면 이 시대 최고의 연기적 명장면이 아닐까 하는 반문도 가져본다.

또 신부의 “영원히 침묵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대사에서 사랑만이 진실이고 악의 응징을 가능케 한다는 설정이라는 역설이 부담스럽다.

전체 공연에서 1막부터 시종일관 같은 템보, 스피드와 릴렉스의 대비와 조화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1막의 지루함은 작품의 롱런에 걸림돌이 아닌가 한다. 또 일부 관객은 작품을 보지 않고 몇몇 배우의 연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다른 관객의 집중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리 뮤지컬의 현재는 세계 3대 시장으로 그 성장세가 가늠이 어렵고 종합예술의 선두주자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 공연계의 대세임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연극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은 숙제, 난제로 예술의 균형적 발전에 대한 연구는 불가피하다. ‘지킬 앤 하이드’의 코러스들과 스탭들이 보여 준 모습은 뮤지컬의 예술로의 진입을 한층 앞당기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고 어쩌면 이미 발을 딛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극장을 나서면서 뿌듯하면서도 가슴에 저미는 아련함, 우린 왜 이런 뮤지컬을 만들지 못하나 하는 자괴감이 급습한다. 세계에서 가무(歌舞)에 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 민족이건만 우리의 창작 뮤지컬은 이제 겨우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니 말이다.

공연의 커튼콜에서는 기립박수를 치지 못했지만 극장을 나서며 혼자, 마음껏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한 모든 이들에게, 특히 공연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킨 코러스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박수를 보냈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지만 가슴을 활짝 열고 온몸이 훈훈해지는 기분 좋은 날이다. 멋진 웨스턴 바에 가서 와인이라도 한잔 하면서 이 감동의 기분을 다시 한 번 새록새록 음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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