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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1/14 00:00:00  서영석




세계 최고 대학을 향한 ‘조용한 혁명’ 동양대 최성해 총장
“자연 속에서 사람다운 사람 키워내는 자부심”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주인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걸은 사람은 저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핸드폰 컬러링을 애국가로 저장한 대학 총장,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

인삼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읍에 자리한 동양대학교는 캠퍼스 인근에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야트막한 야산과 전원, 인삼밭으로 둘러싸인 소담스런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다.

50여만 평에 달하는 동양대학교 캠퍼스로 들어서는 길목은 한 해를 마감하는 겨울의 언저리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교정에서 땀을 흘리는 몇몇의 학생들과 강의실, 도서관에서 학기 마감을 위한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분주한 모습들이 아늑한 산골의 겨울을 소곤거리는 듯하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날, 세계의 가장 중심에 자리잡을 대학교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켜나가고 있는 동양대학교. 문화와 예술을 인성교육으로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 최 총장은 최치원 선생의 17대 자손으로 국내보다는 중국에서 더 유명한 족보다. 중국의 4대 성인 반열에 올라있다는 우리도 모르는 역사의 인물로 중국의 유학생만 따졌을 때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고.

“먼길 오느라 고생했지요?”

총장실로 안내하며 내미는 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여타 대학의 총장실보다는 아담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총장실에서 캠퍼스 전체와 멀리 풍기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실내의 분위기가 대학 전체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동양대학교를 다른 대학과 비교해 한마디로 규정을 한다면요?

너무 포괄적 질문인데요? 인성교육을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는 젊은 친구들 패악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인성의 결핍이 두드러진다는 개인적 판단입니다.


총장님의 억양으로는 도무지 고향을 종잡을 수 없는데 태생은 어디신지요?

오랜 타향과 외국 생활,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하다 보니 고향의 말을 잃어버렸나 봅니다. 출생은 대구에서 했지만 호적은 여기로 되어있어요. 부친께서 교육자여서 사람은 고향이 있어야 바르게 자란다고, 또 ‘대도시는 고향으로 뭔가 부족하고 약하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삭막한 도시 생활은 사고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고 전인적 인간은 대지를 안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사고의 틀이 확장되고 웅지를 품을 수 있다고 판단하셨겠지요. 아마, 당신께선 자그마한 자식에게 큰 인물을 바라셨나 봐요. 세계적 수뇌들을 경우만 봐도 대도시 출신들은 찾아보기 힘듭디다.

유년시절의 학교도 여기서 다니셨나요?

학교는 대구서 다녔지만 방학만 되면 무조건 시골로 내려와 지내야 했어요. 워낙 자주 내려와 지내다 보니 간혹 주민들이 내가 여기서 학교에 다녔다 오해를 하기도 하지요. 주로 외가에서 지냈는데 어렸지만 그때 핏줄에 대한 막연한 개념이 정리되었어요. 외가의 장손과 내가 동갑이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씨름을 시키셨어요. 내가 계속 이기니까 화를 내시면서 자꾸 하라시는 겁니다. 못 이기는 체 한 번 져주었으면 금방 끝났을 일을, 훗날 친손과 외손의 차이에 대한 교훈으로 남았다 할까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기엔 답답한 점이 많았을텐데요?

영화를 무척 좋아했어요. 도시에선 아주머니들이나 대학생들에게 부탁하면 어지간하면 손을 잡고 따라 들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 시골에서는 영화관이 없어서 무척이나 아쉬웠어요. 간혹 학교에 천을 둘러치고 문화영화를 상영하곤 했는데 그런 날은 하루가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영화감독이 꿈이었는데 교육자 집안의 장손이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도 시간이 나면 조금씩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남 주기가 아까워 꼭 내 손으로 영화를 찍을 겁니다.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고등학교까지는 그냥 적당히 공부하고 놀러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문제는 대학? 그 당시에 대학생들은 누구나 내적, 외적으로 정부에 대한 엄청난 불만을 품고 살았지요. 표현을 하느냐 삭히느냐의 차이일 뿐, 부정부패를 참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면 바로 운동권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던 시절, 혈기를 다스리지 못했지요. 결국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유학을 떠났어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유학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요?

유학자체가 쉽지는 않았어요. 도피성 유학이랄까, 누구보다 애국심만은 출중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생활을 하려니 내 자신이 엄청난 매국노라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환율이 높아 버스비도 만만치 않았으니. 아무리 아껴도 한정이 없더라고요. 일반 유학생에 비해 가정 형편이 괜찮았다 해도 이건 아니다, 1년 반인가 지난 후 모진 결심을 했어요. 부모님께 아무리 사정을 해도 돈을 부쳐주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부인과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나마 남자이기에 참을 수 있었지만 집사람은 흑인동네 가발가게에서 일을 했어요. 그런 부인을 볼 수밖에 없는 남편의 처지,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1년 남짓 몸부림을 쳤지만 공부는 공부대로, 돈은 돈대로, 죽도 밥도 안되더군요. 어느 날 학과 학생들과 함께 백인동네 백화점에 통계를 내러 갔는데 유색인종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조장인 나한테는 말도 안건네고 무시를 하더라고요. 공부에 대한 환멸을 느꼈어요. 공부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하는데, 돈 버는 것에 대한 공부가 과연 학문일 수 있을까 라는 강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최 총장은 필라델피아의 템플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무언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느끼고 아내와 함께 그랜드 캐년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돈을 제대로 벌어보자는 결심이었어요. 주위 사람들, 주로 외가의 인척들에게 돈을 빌려 펜실베니아 남부에 잡화점, “Choi's Conner”을 차렸지요. 일주일을 유동인구와 사람들의 동선을 연구하고 고심 끝에 자리를 결정했어요. 백인과 흑인의 경계선쯤 되는 곳에서 잡화와 도매를 겸했는데 노력의 대가가 있어 상상 이상으로 돈을 벌었어요. 집도 사고 빌딩도 살 정도로. 장사를 하면서 느낀 점도 많지요.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니 그것도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공부로 돌아왔지요. 심리경영학을 공부했는데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신학 증명을 위한 철학, 심리와 철학, 종교에 근거하는 학문으로 적성에 맞았는지 공부에 파고들 수 있었지요.


장사를 하다보면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요?

좀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어요. 흑인 꼬마가 상습적으로 물건을 훔치는데 근저에 유색인종이라 깔보는 느낌이 들어 금전보다는 인간적 모멸감에서 하루는 추적을 했지요. 결국 기마경찰이 체포했는데 처벌을 원하는냐 묻더라고요. 물건과 지금까지 훔쳐 간 것에 환불만 받으면 된다고 했더니 경찰이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아이 엄마가 가게에 찾아와 감사하다면서 어머니들의 세계 공통어를 말하더군요. “우리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 못 만나서”라는.


귀국 후 동양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하셨는데?

한국이 변하고 있다고 실감하고 있어요. 모름지기 남자는 용맹, 여자는 아름답고 여성스러워야 하는데 여자가 너무 강해지고 남성이 약해지는 남녀의 혼돈의 시대가 왔어요. 우리 동양대학교는 이런 시대상황에서 교육 마인드로 ‘현대에 맞는 선비정신’을 주창하고 있어요.


아직 연륜이 짧아 모교 출신의 교수진들이 많지 않은데요?

우리 동양인이 세계 각국의 현장을 누비며 이론과 실기를 닦아 연어가 수십만리 물길을 따라 모천(母川)에서 알을 낳듯이 모교로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교라는 애교심도 있을 뿐더러 학교를 알고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를 테니까요.

교수들 사이에 국내파와 유학파가 있는데 총장님이 선호하는 부류는?

나도 유학을 했기에 조금은 그 실정을 압니다만 그 옥석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공부에 매진했던 분들도 있고 그저 유람삼아 학위나 받아 챙기자는 부류들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부류건 간에 가장 우선되어야하는 부분은 역시 교수로서의 자질과 신뢰와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명문대나 외국의 유명 대학 출신이라는 포장만 그럴듯한 교수님은 사절입니다. 교수로서의 자질이 없으면 아무리 성적이 우수해도 강단에 세울 수 없지 않겠어요?


수도권에서 떨어진 대학들의 바람이 있다면?

우선은 지역민들과의 의사소통입니다. 어느 학교에나 존재하는 몇몇 학생들의 파행이 결국 학생 전체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지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학교의 이미지를 떨어뜨려 결국 주민들은 타도시로 자식들을 보내게 되고 그 학생 역시 집을 떠나 방종의 생활을 하는 경우를 왕왕 보았습니다. 지역에서 30% 이상의 학생을 유치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근본적인 문제가 대두되는 부분이지요.



동양대학교가 자랑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면 뭐를 들 수 있습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산이 바로 눈앞에, 더 나가면 강이 보이고. 하루하루가 자연과 교감을 하다보면 자연과 동화, 정화가 되어 인간적으로 순수해진다는 겁니다. 계절을 갈아입는 자연과 더불어 심신수련, 신라시대 화랑의 교육이 이러지 않았을까? 교육과 환경의 조화를 통해 전인교육을 할 수가 있죠. 또 학생들이 심신수련을 위해 천연 잔디 구장을 만들었습니다. 입시에 찌든 학생들이 몸과 마음을 다듬기에 부족한 점이 없도록 특별히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학교가 특성화로 집중 육성하는 공무원 사관학교,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기숙사, 중국 유학생들이 많아 자연히 중국어 회화 습득에 유리한 점 등, 동양대만의 자랑거리를 들라면 한두 가지로 힘들 겁니다.


‘공무원 사관학교’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은 어떤 목적이 있었습니까?

공무원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습니다. 외국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점이 약소국가의 한이 있어요.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 도덕적 가치관과 투철한 국가관, 역사의식 등이 절대 필요합니다. 타 대학의 경우 공무원을 하려는 학생은 노량진이나 여타의 학원을 전전해야 하지만 동양대학교는 학교 내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입학 때부터 공무원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과 삶을 주지시켜 준비된 공무원으로 또 부정, 부패, 부조리 등의 원천 차단에 대한 집중적 교육으로 국가에 이바지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충실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집중 교육하고 있습니다. 교, 강사는 물론 최고의 시설과 교재, 임용분만 아니라 임용 후에 적극적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타과의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반발도 있을 텐데요?

있을 수가 없지요. 어떤 특정과나 개인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은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 참가가 가능합니다.


호텔 이상의 기숙사 시설은 역으로 학생들의 생활에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내 자식 이상으로 돌봐주어야지요. 그래야 믿고 맡기신 학부형들에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호텔 수준의 환경에서 4년 생활을 하다보면 몸에 배여 어느새 자신들의 수준을 상당히 격상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어요. 또 앞으로의 세대는 국제적인데 해외여행이나 출장에서 망신을 당하지는 않아야 되지 않겠어요?


기숙사 생활에서 학생들의 불만은 없나요?

식사문제가 가장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어요. 한창 왕성한 나이에 일찍 저녁을 먹고 나면 야참이라든가 간식이 불편하지요. 여학생들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기숙사 내 식당의 야간 운영에 반발하고 남학생들은 배가 고프다 항의를 합니다. 저는 학생들의 자치로 운영될 수 있는 새로운 기숙사 운영에 신경을 씁니다만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할지 난감합니다. 나 역시 미국 유학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집 떠나 생활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만 현재로는 학생들에게 허기로부터 참을 줄 아는 지성인으로 인내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까요? 학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집보다 엄격한 기숙사만이 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요즘은 거의가 1인 자녀입니다. 학생들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전부 왕자고 공주이다 보니 사회에 적응을 못하죠. 집에서야 부모가 하인 노릇을 해주지만 사회에서 어디 그렇습니까? 그런 학생들에게 학교마저 부모처럼 떠받들어 주는 것은 교육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자신의 의지를 표출시킬 수 있도록 가정교육에서 힘든 부분들을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교정(?)의 차원에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제 2의 창학 선언을 하셨던데 배경이나 동기가 있는지요?

“새 역사의 원대한 창학 이념”을 품고 태어났다. 나름대로 거창한 웅지를 품어보았습니다. 이제 대학도 구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저, 학생들에게 공부나 시키고 졸업장이나 쥐어주고 사회에 내모는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서 우리는 지적, 도덕적 지평을 확장하는 교육 공동체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사회적 삶의 양식을 창조하여 이 꿈을 이루어야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배려와 그들의 꿈과 이상의 날개를 달아주려 합니다.


그렇다면 교권에 대한 상당한 프레스(Press)가 예상될 텐데요?

그건 절대 용납 못하지요. 학생은 모름지기 학생다워야 하고 교수 역시 그래야 합니다. 교수들은 학부모들이 맡긴 자식을 자기 자식 이상으로 생각하며 교육에 임하야 한다는 생각이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공존해야지요.


의외로 연극영화가가 있던데요?

인성 교육의 마무리는 문화와 예술 교육에 있습니다. 이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극영화과를 만들어 첫해년도부터 인근의 문화의 사각지대를 돌며 공연, 매스컴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지요. 시골 촌구석에서 무슨 연극영화과냐 하고 반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제가 관심이 있기에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도시의 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기성 극단이나 영화, 방송가를 기웃거리는 반면 동양대 학생들은 학교에서 밤을 새다시피 땀을 흘립니다. 수도권 학생들이 통학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몇 시간 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들을 활용하면 4년 후에는 동양대 학생들이 그들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또 시골이라 수도권 학생들에 비해 문화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겠지만 대학로에 소극장을 마련해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양대학교가 지방의 명문으로 발돋움하려면 선결과제들이 있을 텐데 그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지요?

사학, 특히 지방의 사학들이 인적 가뭄에 말라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숫자는 자꾸 줄어들고 대학은 과잉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또 좋은 학생을 선발해 훌륭하게 배출을 하려면 좋은 교수님들은 필수적이지요. 좋은 교수는 실력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어깨동무하면서 학생들이 저 넓은 세상에 마음껏 할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학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철밥통만 고집하는 교수들에 대한 제재도 강구중입니다. 학생이 있어야 학과도 존재하고 교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답답합니다. 이러한 제반적 상황을 종합하여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대학 스스로의 구조적 변형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지요. 동양대학은 항상 훌륭한 교수님들을 모시기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입시에서 학생들 모집에 대한 대비책은?

우리 동양대학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지원자가 폭주하는 공무원 사관학교, 또 중국에서의 유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지원자 감소에 대한 걱정이 없어 학교에서 아직 대책을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교양미술, 철학 등 타 대학에서 이미 사라진 과목을 교육하는데?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인생이 단거리 경주가 아닐진대 어찌 근시안적으로 눈앞의 목표만을 두고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까? 지금 학생들은 경제의 몰락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 정치사회적 붕괴, 교육정책의 부재, 교육 행정의 실패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아래서 가장 인간답게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교육이 바로 인적 소양교육이라 생각합니다. 남들은 실용학문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서가 몸에 밴 학생들, 결국 동양대학인들이 승리를 하게 될 겁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양인, 학생이나 교수들에게 당부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요즘 학생들은 거의가 개인이기주의적 경향이 팽배해 애교심이 절대 부족합니다. 저는 항상 이 부분에서 고심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양인들의 자부심을 고양시키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들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 뇌리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 고민입니다. 당부의 말씀이라면 학생들이나 교직원들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아달라는 부탁과 부모님들이 믿고 보낼 수 있는 지방 명문으로 입지 구축에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이 나우] 최성해 동양대총장의 부친으로 일생을 육영사업에 바친 최현우 이사장(현암학원)이 지난 9월 1일 별세했다. 학교법인 현암학원을 비롯해 경영교육재단, 경북공업교육재단의 설립자인 최현우 이사장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일찍이 육영사업에 뜻을 세우고 경북공고, 경구중, 경북전문대, 동양대를 차례로 설립하였다. 그 가운데 경북 풍기에 있는 4년제 동양대는 3년 연속 교육개혁 추진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성해 총장은 고 최현우 이사장의 3남 4녀 중 장남이다. 9월 5일 동양대 체육관에서 학교법인 현암학교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에서 성균관대총장을 역임한 정범진 동양대 석좌교수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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