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즐겨찾기  l  시작페이지  l  2017.5.1 (월)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http://interview365.mk.co.kr/news/2422
발행일: 2009/02/20 00:00:00  김우성




1976년 스크린의 샛별은 누구였을까
‘진짜진짜..’ 임예진 8편 출연하며 여제 등극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영화계의 앞날을 가늠하는 데에는 그해 얼마나 새로운 이름이 오르내렸는지가 좋은 기준이 된다. 신인배우들의 등장은 침체된 영화계에 활기를 주고 무한한 발전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는 한국영화가 마냥 어둡다고만 할 수 없는 것도, 신인들의 예사롭지 않은 활약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30년여 년 전인 1976년 스크린을 누빈 샛별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이 한국영화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다.



1976년 한국영화계는 고교생시대였다. 소재는 주로 학교와 가정에서의 억압이라든지 이성, 진로 문제 등이 다루어졌다. 성인과 청소년 문화의 경계가 없어진 지금 본다면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겠지만, 진심 가득한 그들의 열정 앞에 객석은 연일 북적였다.

최고 스타는 서울 무학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예진이었다. 완전 신인은 아니었으나, 관객들 사이에서 그녀의 이름이 확실히 각인된 해였다. 1년 동안 무려 여덟 편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그나마도 학교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출연을 자제한 결과였다. 그녀는 얼마 전 “70년대만 해도 연예 활동을 특기생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출석일수를 맞추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충무로에서는 임예진을 잡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지난 1월 타계한 문여송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임예진이 주연한 <진짜진짜 잊지마>는 76년 초에 6만7천명(단관 개봉)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고교생영화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진짜진짜 미안해> <정말 꿈이 있다구> <소녀의 기도> <이런 마음 처음이야> 등 소녀취향 물씬 풍기는 제목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푸른 교실> <진짜진짜 미안해>를 거치며 연기에 눈을 떴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임예진은 최근 다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전성기에 버금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민희(당시 24세)와 한유정(당시 19세)은 76년에 가장 각광을 받은 신인이다. 데뷔한 지 채 1년이 안 되었던 두 사람은 스타부재의 영화계에서 재빨리 스타덤을 차지했다.

최민희는 두 번째 출연작 <청춘을 이야기합시다>로 파나마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세 번째 출연작 <빗속의 연인들>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TV에까지 진출했다. 한유정은 이른바 ‘사진빨 잘 안 받는다’는 세간의 평가를 재빨리 극복하고 가장 개성있는 연기자로 성장,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최민희와 한유정 모두 80년대를 전후해 영화계를 떠나 아쉬움을 남겼다.

이밖에 76년 국산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한 <여자들만 사는 거리>의 유미나, 귀여운 용모로 주목을 받았던 <별하나 나하나>의 이화(본명 임승애), <야간학교>의 송재민과 정희, <젊은 도시>의 장현 등이 새롭게 등장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1976년에는 훗날 한국영화 판도를 뒤흔들게 될 신인 한 명이 조용히 등장한다. 십대 스타 이미지를 지닌 이덕화가 <성춘향전> 이몽룡 역에 내정됐지만 춘향을 맡을 십대 여배우가 없었다. 제작사는 ‘성춘향전 하이틴 춘향을 찾습니다’라는 공개모집 광고를 냈고, 3백여 명의 후보가 몰려들었다. 결선 투표 끝에 가지런한 치아와 촉촉한 목소리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은 19세 소녀가 최종 선발됐다. 장미희였다. <성춘향전>은 추석에 맞춰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장미희는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로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1976년 한국영화계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특기할 만한 배우는 ‘고교생영화 트리오’ 이덕화, 전영록, 임예진이다. 이덕화의 남성적 강렬함과 전영록의 섬세함은 하이틴영화의 줄거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임예진이 있었다. 76년 한 해 동안 이덕화는 임예진과 다섯 작품을, 전영록은 세 작품을 함께했고 세 사람이 같이 출연한 영화는 <푸른 교실>이었다. 특히 이덕화와 전영록은 연예인가족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각별한 우정을 나눴는데, 그해 전영록이 군에 입대하며 황금트리오는 막을 내렸다.

[관련기사]
30년 전 최고의 인기스타는 - 최불암과 임예진
영화의상 대가가 놀란 이덕화의 프로근성
멋과 사랑을 잃고 고독하게 떠난 문여송 감독
[인터뷰] '오빠가 돌아왔다' 가수 전영록
[인터뷰] 나를 사랑해준 세대에 대한 책임, 장미희



- Copyrights ⓒ 인터뷰365,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interview365.com 발행인 안성기 ㅣ 편집인 겸 청소년보호책임 김두호
인터넷 신문 등록 서울아00737ㅣ등록일 2009. 1. 8 / 창간일 2007. 2. 20
발행소 04549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 47 l TEL: 02-6082-2221 ㅣ FAX: 02-2272-2130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 Allrights reserved press@interview365.com ㅣ shinyoung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