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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3/06 00:00:00  서영석




어느 방화범 이야기,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
소통과 불통에 관한 김태수의 역설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극심한 경제난은 대학로를 동토로 몰아붙이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좋은 작품에는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수 년 내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어느 방화범의 이야기, 김태수 레퍼터리 창단 공연인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이하 탱고)가 연극계와 대학로에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이 공연이 연극관계자들이나 일반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시 작가 김태수라는 브랜드가 아닐까 한다.

물론 한국연극배우협회의 맏형에 가까운 공호석, 중견 배우 박기산, 영화와 CF에서 종횡무진하는 뮤지컬배우 출신 조원희, 탄탄한 연기력의 전병호, 신혜정, 김영찬 등 배우들의 위력도 무시 못하지만 역시 작가 김태수에게 무게가 실림은 누구도 부인 못 할 것이다. 개그맨을 뺨치는 입담이나 문선대에서 갈고 닦은 음악 솜씨를 보면 극작가라기보다 연예인에 가까운 그가 주옥같은 희곡들을 거침없이 발표하고 있다. 한국의 연극사에서 김태수만큼 많은 히트작을 발표한 작가도 드물다. 그를 이 시대의 최고의 희곡작가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작가의 말에 의하면 뮤지컬을 포함 40여 편 공연이 막이 올랐고 창작극만 해도 23편이라는 전과(?)를 거두었단다. 특히 해마나 열리는 지방연극제의 참가작을 보면 그의 작품이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한국 희곡의 대표적 작가인 그가 대학로에서 연극의 중흥을 위해 힘차게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좋은 배우들은 많으나 그들이 무대라는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고 연극계의 발전을 고민하던 차 그들은 의기투합을 했다.

친구이자 연극동료인 작가 김태수와 배우 박기산은 2여년 전 소주집에서 회동, 연극계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다가 동인제 형식의 극단 창단과 공연을 위한 작품의 극작에 돌입하였단다. 날로 침체되어가는 대학로를 살리고 무대가 없어 방황하는 능력있는 배우들에게 무대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막이 오르면 주인공 주윤발(조원희, 성형진 더블) 기자의 진술로 극이 진행된다. 물론 관객은 공연의 마지막에야 진술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신문사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는 퓰리처상을 꿈꾸는 기자 초년생. 하지만 사회와 신문사는 그에게 그의 의지와는 상반되는 기사를 요구한다. 정치가의 썩은 정신을 고발하려는 그의 의지는 신문사의 데스크에 의해 무참하게 묵살되고 그는 퇴사를 강요당한다. 의지가 말살되는 과정에서 그는 소통과 불통이라는 개인적, 사회적 구조 속에서 심한 변비를 앓게 된다. 변비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두 개의 입, 윗입과 아랫입의 소통 부재라는 작가의 추상적 상상이 작품 속에서 번뜩인다. 다른 신문사로 옮긴 그는 기자 특유의 날카로움으로 특종을 취재하게 된다. 취재 도중 찍은 사진의 한 부분,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부분을 기자의 직감으로 파헤쳐 확대해보니 의외의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 단서는 다름아닌 패스트푸드 포장지. 정치적 테러에 대한 항거로 단식투쟁 중인 야당의 거물 6선 의원의 기자회견을 취재하던 도중 의원의 침대 밑에 숨겨진 햄버거 포장지를 발견하고는 신문에 대서특필을 하게 된다. 하지만 특종은 잠시, 가판대에 깔렸던 신문은 야당에 의해 완벽하게 수거되고 부장은 그에게 돈봉투를 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부정한 거래를 거절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개밥의 도토리 자리. 작가는 제도권에서의 반발은 곧 직장에서의 퇴출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놓았다. 자신의 의지를 펼치고자 인터넷을 통해 고발하자 양심적 기자라는 칭호와 함께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며 급기야 주윤발은 인터넷 신문사의 사장이 된다. 또 다른 음모와 편법, 그가 혼심의 노력으로 발견한 사진이 합성이라는 모략에 의해 그의 꿈은 산산이 무너지고 진실의 왜곡은 젊은 기자를 죽음으로 내몬다.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캐롤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그는 방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떨고 있다. 직장의 파산, 애인과의 이별, 그나마 삶의 터전이었던 원 룸은 밀린 방값으로 출입이 막히고 전기, 수도, 먹을거리가 차례로 단절된다. 주윤발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자조적인 대사를 읊조린다. “캐롤송이 이렇게 슬픈지 몰랐어...,” 마지막 남은 라면을 부셔먹으며 그는 자신의 의지-사회를 밝히려는-를 사회에 알리고자 최선의 선택을 한다. 다름 아닌 방화, 건물에 불을 질러 사회를 밝혀보겠다는 몸부림으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흔히 좋은 연극이라는 전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공연에서 작가를 비롯 모든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소통과 불통의 사회적 문제를 거론한다.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소통과 불통이 이 작품의 전체적 줄거리이며 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연극은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하고, 관객을 가르친다거나 뭔가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그렇지만 또 아무 꺼리도 아닌 것을 행위자들 위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관객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 <탱고>는 극단 김태수 레퍼토리의 첫걸음이지만 그 이름이나 배우들의 위상을 볼 때 좀 더 극적으로 완성도를 높여야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통과 불통을 한 인간의 신체적 문제일 수도 있는 변비에 대한 비유는 작가 특유의 뛰어나고 예리한 발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탱고>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면 현실을 살아가려면 적당히 현실과의 타협, ‘먹고 살려면 회사나 사회에 반항하지 말고 숨 죽이고 살아라’라는 역설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부정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도식을 작가는 위험하게 강요하고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극의 사회적 기능에서 배우의 속물근성에서 관객들은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일면에서는 추종하는 오류를 낳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런, 반성을 하는 계기에 대한 장치가 부족하다. 물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현실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 명제 아래 현대인은 특히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상 많은 부정들과 직면을 하게 되는데 기자들의 타협은 곧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요 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지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물질만능의 다분히 위험한 발상이고 현실적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구도에서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다.



<탱고>는 김태수 특유의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 순간의 대사들은 완숙한 연기와 대사로 물 흐르듯 이어지지만 무대 언어(배우의 대사, 마임, 음향, 조명 등)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먼저 연기적 측면을 보면 순간의 감정에만 몰입하다 보니 전체를 통관하는 연기들이 부족했다. 분장만 바꾸고 의상만 갈아입는다고 일인 다역이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역으로 변신할 때 배우 역시 다른 역으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연극배우의 맏형에 가까운 공호석의 노련한 연기는 완급을 조절하며 선장 역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나머지 연기자들은 2% 부족한 아쉬움을 남긴다. 자신의 각 등장 부분을 하나의 씬으로 설정, 또 전체로 연결하여 감정의 증폭을 조절함으로 기승전결을 수행해야 하는 것에 부드럽지 못함은 연습의 부족이었을까? 여주인공 석호진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는데 자신의 순간순간 분위기에 따라 표정이나 대사의 템포 등에 변화를 주었으면 더 훌륭한 연기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한다. 다른 배우들 역시 하나의 에피소드에 묶여 전체를 아우르는 연기적 몰입이 안타깝다.

연출을 맡은 오순환은 프로그램에 ‘동선을 못 긋는’ 혹은 ‘동선을 안 긋는’ 연출로 스스로를 자학(?)하며 누군가에게 비수를 들이댄다. 한국을 비롯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 많은 공연이 이루어지는데 연출과 작가, 배우들이 아기자기하게 신혼살림을 살 듯 살갑게 공연을 하는 경우가 몇이나 있을까? 결국 연출은 어떠한 물리적 정신적 압박이 있어도 공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유명한 연출가였던 앙드레 앙뜨완느(1858-1943)는 “연출가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배우들에게 명확하고 끈기있게 설명해야합니다. 또한 작품이 전개되어가는 방식, 극이 순간순간 형상화되어 가는 모습을 관찰...,”이라고 강변했다. 인용 글에 대한 연출의 답변이 궁금해진다. 연출은 배우와 작가와 견해가 틀릴지라도 자신의 연출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찾아 그들과 싸우더라도 작품을 완성시켜야 한다. 그러한 노력들이 작품을 통해 비춰지지 않아서 유감이었다. 공연은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불통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스스로들의 소통, 작가와 연출, 배우들 상호간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게 지나쳐 좀 더 많은 고민의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료된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 형사의 등장에서 대사를 너무 건조하게 처리하여 주제를 은폐시키는 묘한 재주를 보인다. 공연은 극단적으로 관객에게 방화범의 변명만 드러낼 뿐이다. 왜? 라는 의문엔 또 방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변명만 이어질 뿐 그 행위에 대한 어떤 도덕적 양심적 가치부여를 외면하고 극의 마지막 부분에 형사의 간결한 형식적인 법률적 형량에 대한 해설만 나온다.

김태수 작가의 자기 작품에 매몰돼 관객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또 방화범의 사회적 타당성에 대한 의도적이든 작가나 연출의 미스인지 어떤 해설도 외면하고 있다. 어떠한 범법 행위도 자신의 세계, 현실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묵인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황금만능으로 도덕이 무너져 버린 암울한 현실에서 누가 자기 자식에게,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살아라” 라고 과감하게 권유(?강요?)할 수 있을까? 이는 곧 “이 사회에서 도퇴되어 살아라.”라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희곡의 사회적 기능에서 이런 것 들이 가능하다는 도식은 일제강점시 우리의 문인 예술인들이 당시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일제를 대변했다라는 엉뚱한 등식을 성립시킬 우려가 있다.

보수와 진보의 소통 불능이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작가는 교묘하게 외면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불의와도 서슴없이 손을 잡으라고 작가는 은연 중에 암시하는 인상도 깊다. 보다 광역의 의미에서 일제시대에 누가 보수이고 누가 진보였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완용, 송병준을 그 시대의 보수로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송이 꽃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을 구가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꽃의 삶보다 그저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우선일 것이다. 작가 김태수는 공연에 있어 작품의 구성을 ‘변비와 탱고’로 대비시켰단다. 신체적 중요요소인 입과 항문의 불통에서 변비를, 스텝이 엇갈려야 춤사위가 된다는 탱고를 키워드로 삼아 휘청거리는 현실을 재치있게 역설했다.


대학로의 빙판보다 더 차가운 현실에서 몸부림치는 연극인들의 안타까운 발상이 아름다운 결실로 작품을 일구었다는 부분만은 어떤 칭찬이나 격려로도 모자랄 것이다. <탱고>, 이 첫걸음을 발판으로 아름다운 연극, 형제같은 화기애애한 축제 분위기의 공연으로 이어져 가까운 미래에는 거대한 폭풍우를 기대하고 싶다.

네온이 태양을 대신하여 하루를 마지막 태우는 시간, 공연에 지친 이들은 한 잔 소주에 회포를 풀고 내일의 공연을 위해 총총히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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