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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3/09 00:00:00  유성희




주류음악계 강타한 인디밴드 장기하
“88만원 세대가 아닌 개인사 담긴 노랫말”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지난해 3월 장기하(보컬, 기타, 퍼커션)를 중심으로 정중엽(베이스, 코러스), 이민기(기타, 코러스), 김현호(드럼, 코러스), 미미 시스터즈(안무, 코러스)로 결성된 6인조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데뷔곡 ‘싸구려 커피’를 발표해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10회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숨은 고수’ ‘EBS 스페이스 공감 9월의 헬로루키’에 선정되며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흥겨운 리듬에 생활 밀착형 가사, 말하듯 노래하는 장기하 특유의 창법과 ‘미미시스터즈’와 펼치는 퍼포먼스로 두드러진 그들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방 흐느적거리는 이들의 독특한 무대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후 온라인상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실황을 담은 동영상과 함께 이를 패러디한 합성사진이 돌아다녔고, ‘달찬놈’ ‘장교주’ ‘인디계의 서태지’로 불리며 한층 더 이목을 끌게 되었다.


지난 27일 발매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 1집 ‘별일없이 산다’는 인디밴드로서 주류음악을 제치고 발매와 동시에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소속사 붕가붕가 레코드에 따르면 ‘1집은 8천장 선주문이 들어와 초도 물량이 모두 소진됐고, 현재 1만장을 추가 발주한 상태’라고.

윤하, 원더걸스와 함께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되며, 인기와 음악성을 두루 갖춘 뮤지션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얼굴들’이 빠진 장기하 인터뷰는 홍대 근처 커피숍에서 시작되어 상암동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 리허설 준비 전 공연장 객석에서 이루어졌다. 이동하며 오랜 시간 이루어졌던 인터뷰는 편안한 대화들로 이어졌다.



인기가수들을 제치고 인디밴드가 음반판매 1위를 차지했다. 기분이 어떤가?

좋다. 열심히 만든 음반을 많이 사주시니까 누구나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웃음)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는 소소한 반응을 이끌어 낼 자신은 있었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뭔지도 모르겠고 지루한 음악은 적어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뒤따른다는 건 상당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텐데, 대중적 인기를 얻고 나서 좋아진 점은 무엇인가?

일단 다른 알바를 안 해도 돼서...


알바?

지금은 음악 외에 다른 일 할 시간도 없지만, 차비 밥값 술값 댈 정도의 돈이 들어와서 무엇보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갖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심지어 부모님이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흐뭇하게 생각하시니까 마음이 또 편하다. 내가 음악을 하는데 있어 반대 하신적은 없지만 별다른 직장 없이 재미만 쫓아 음악을 한다는 게 아무래도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반면에 인기가 많아지면서 음악활동이나 실생활에 있어 의도하던 바와 다르게 흘러간 부분이 있나?

아주 심각하게 있었던 건 아니고. 인터뷰를 할 때도 하나하나 최대한 정확하게 내 생각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데 말이라는 게 항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한말과 전혀 다른 말을 써놓은 것을 본적도 있고. 사람이 직접 만나 눈을 쳐다보고 대화를 해도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데, 심지어 음악을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동영상을 거치고 UCC로 만들어지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중예술을 한다면 이러한 오해는 어느 정도 감수를 해야 하는 것 같다. 되도록이면 그 오해가 적어지도록 노력을 해야겠지.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팀명에 대해, ‘가장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을 한명씩 뽑아 구성한 밴드’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어떻게 팀명을 짓게 되었나?

사실 아무 뜻이 없다. 잘생긴 사람들이라고 하면 당연히 농담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진담으로 듣는 분도 있더라. 첫 공연 포스터 만들기 전날, 디자인 하는 친구가 ‘아직까지 팀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해서 처음에 내가 제안했던 ‘장기하와 얼굴들’로 가게 된 거다.


멤버들끼리 음반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내가 내용(작사ㆍ작곡)을 만들고, 각자 자신의 파트에 맞는 연주를 한다.


이번 앨범의 실린 노래들은 언제 만든 곡들인가?

지난해 5월 ‘싸구려 커피’가 나오기 전에 70% 정도 만들어져 있었다. 만든 시기는 넓게 퍼져 있다. 제일 처음에 만든 곡은 2006년도에 만들었고,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은 작년 가을에 만든 곡이다.


방송에서 이외수씨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의 가사는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가사이면서 독특한 랩이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을 한 바 있다. 가사와 음악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전에는 통기타를 들고 일단 생각이 나는 한마디를 계속 불러봤다. 그 다음에 어떤 가사가 붙으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한 마디씩 만들어가며, 같은 방식으로 계속 부르며 작업했다. 음반을 만들 정도의 지식은 아니지만 간단한 데모를 만들 정도의 홈레코딩 기술을 재작년에 간단히 익혔다. 편곡의 얼개를 짤 수 있는 기술을 익히니까 접근 방식이 또 달라지더라.



‘장기하와 얼굴들’의 첫 정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에는 헤드뱅잉, 환호 섞인 격렬한 몸짓은 없었다. 대신 관객들은 마치 익숙한 멜로디에 흥이 겨운 듯 어깨를 들썩였다. 히트곡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를 비롯해 함께 새롭게 실린 이번 앨범의 수록곡 ‘별일없이 산다’ ‘아무것도 없잖어’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 등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장기하식’ 삶의 태도와 표현들에 관객들은 가사 하나하나, 율동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첫 단독 콘서트에 대해 팬들의 만족도나 매체의 좋은 평가들이 줄을 이었다. 정작 본인은 어땠는지?

나도 재밌었다. 워낙에 단독공연이라는 게 마치 홈구장에서 경기하듯이 호의적인 분들 앞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송의 긴장감과는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재밌게 했다.


처음 듣는 노래들은 가사가 귀에 잘 안 들어오기 마련인데 공연장에서 노랫말들이 정확하게 들리더라. 관객들이 가사를 듣고 웃음을 터뜨리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대중들에게 무엇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큰 것 같은데.

공연장에서 가사가  잘 들렸나? 가사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가사가 장점인 밴드인데 정확한 가사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지 않겠는가. 메시지라는 건 어느 노래나 유효하다고 보는데, ‘이왕 만든 거 잘 전달되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기 보다는 가사 그대로이다. 우리말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우리말 자체가 가진 느낌을 어떻게 하면 노래로 잘 살릴 수 있을까’ 관심을 갖고 만들다보니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서 부르게 되는 것 같다.


‘우리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장기하의 음악적 특징이 있다면?

예를 들어 오늘 공연에서 부르게 될 ‘고래사냥’을 보면 ‘우리들 가슴 속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직접 노래를 부르며 설명해나가기 시작한다) 송창식씨가 부르는 것을 듣다보면 그냥 말하는 억양을 반영시켜 노래를 부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당시 노래를 들어보면 이러한 방식이 상식이었던 것 같다. 산울림의 노래도 마찬가지이고. 말할 때 보면 한 문장에서 강조가 되는 단어들이 있지 않나. 그게 멜로디 상에서도 음이 높아진다거나 악센트가 들어간다던지 강조가 되는 것이다.


노랫말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가진 인기 요소 중 하나다. 그들의 노래에는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발바닥이 쩍 달라붙는 방에서 뒹굴거리는 ‘88만원 세대’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혹은 즐기는) 지금의 비참한 삶을 유머로 승화시킨 그들의 삶에 패배감 따위란 없다. 방바닥을 뒹구는 것도 하나의 문화, 이 시대의 이야기임을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이들을 대입시켜 세밀하고 기발한 묘사에 한바탕 웃고, 뒤돌아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88만원 세대’를 위로하려고 또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해서 노래를 만든건 전혀 아니예요. 가사는 전적으로 제 개인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평소 말하는 분위기가 재치 있는 노랫말과 닮았다.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TV를 많이 봤다. 시험기간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분출하며 놀았다.


주로 어떤 TV 프로그램을 좋아했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시간이 겹치지 않는 이상 다 봤는데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는 프로레슬링으로 관심이 넘어갔고,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이후에는 가요프로그램에 많이 쏠린 편이었다.


어떤 노래들을 불렀나?

중학교때부터 친구들과 노래방 가는 걸 좋아했다. 화음이 들어가는 노래는 친구들과 합심해 연습해서 부르기도 하고.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주로 불렀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는 모든 곡을 외우고 있었고, 듀스의 음악과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HOT의 노래를 연습해 많이 부르기도 했다.


음악에 가장 심취했던 시기는 언제였나?

요즘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지만, 군대에서는 정품 CD외에는 반입이 금지였다. 그러다보니 같은 앨범을 여러 번 들으며 자꾸 곱씹게 됐다. 생각해보면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굉장히 쓸쓸했다. 군대에서 애들이랑은 재밌게 지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갇혀있다는 느낌에 황무지에 사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인지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더 애틋하다. 그 음악들을 들을때만은 진짜 재밌고, 즐거웠다.


지금과 비슷한 밴드의 음악은 언제부터 듣게 되었나?

일단 록음악을 접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반에 꼭 한명씩 가요 안 듣고 외국의 메탈류 음악만 듣는 애들 있지 않나.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메탈을 많이 듣게 됐다. 중학교 때 우연히 갖게 된 통기타의 영향도 있었고. 그때는 메탈리카(Metallica)나 너바나(Nirvana) 등 그야말로 죽도록 유명한 것 외에는 접하지를 못했다. 이것저것 들어보기 시작한건 2002년 ‘눈뜨고 코베인’을 하면서부터인데, 내가 음악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멤버들에 의해서 산울림 음악부터 듣기 시작했다.


‘산울림’과 ‘송골매’ 등 7-80년 포크록 음악들의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 또 다르게 영향을 받는 것들이 있나?

잘 모르겠다. 좋다고 해서 모두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는데 김창완 배철수 두 분은 확실히 머릿속에 보인다. 내가 노래를 만들 때 두 분을 기준 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비틀즈(Beatles)’도 그렇고. 맹목적인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때 방금 언급한 분들이 많이 생각난다.


음악 외에 인생에 있어 영향을 준 인물이 있나?

부모님.


이유는?

살아가는 전략이나 태도 같은 것. 무게중심을 낮춰야 안정적이 자세가 나온다는.(웃음) 자세를 너무 높게 하고 있으면 넘어지기 쉽고, 낮추고 있으면 오랫동안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삶의 방식이랄까.


가족들의 응원은 어떤가?

아버지는 일이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라디오방송이 끝나면 항상 문자를 보내오신다. 엄마도 라디오와 TV를 다 보시고, 인터넷 블로그까지 살피신다.


부모님께 낯선 음악은 아닐 것 같다. 음악에 대한 반응은 어떠신가?

좋다고 하시지, 그래도 호불호(好不好)는 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아예 말씀을 안 하신다. 그래서 별다른 코멘트가 없으면 ‘마음에 안 드시는구나’ 생각한다.



음악 외적으로 요즘 당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 있나?

없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없더라. 그렇다고 내 평소의 태도가 음악에 목을 매는 건 아닌데... 술 마시는 거? 시간이 있을 때 술 마시는 게 즐거운 일의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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