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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6/10 00:00:00  김우성




프로축구 선수 차출 논리의 위험성
K리그 발전 없는 월드컵 성적은 사상누각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한국 축구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최다(8회) 출전기록이자, 세계에서 여섯 나라밖에 경험하지 못했다는 7회 연속 출전의 위업이다. 사우디, 이란과의 최종예선 경기가 남아있지만 언론에서는 이미 월드컵 본선을 염두에 둔 보도일색으로 축구열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선수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통솔한 ‘허정무호’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본선진출을 확정한 다음날 한 공중파 메인뉴스에서는 남아공 월드컵 선전을 위해 프로축구 선수차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뉴스가 주요 꼭지로 보도됐다. 신구세대의 조화 등 조직력 강화훈련을 위해서는 프로구단의 적극적인 협조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축구협회가 전부터 주장해온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한국축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발상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이 오랜 기간 합숙훈련을 하며 거두었던 호성적이 전제가 된 것인데, 당시의 성적은 공동개최국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극약처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로 다음 열린 독일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한국대표팀은 여러 차례 감독이 교체되는 진통 끝에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바꿔 말해, ‘히딩크’라는 처방과 홈 이점이 없을 시 한국축구는 언제라도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드컵 진출 기록과 궤를 같이하는 프로리그 역사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한 한국은 이후 30년이 넘게 본선무대를 밟지 못했다. 국민적 염원이 지금보다 덜했던 것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스쿼드’가 부실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시아의 황금다리라 불리던 이회택, 아시아 최고의 철벽수비라인 김호 김정남 콤비, 철벽 수문장 이세연에 박이천, 김진국, 차범근 등이 동시대를 풍미했음에도 동남아시아 국가에마저 번번이 좌절을 맛보며 월드컵 변방에 밀려있었다. 그러던 한국이 1985년 잠실에서 벌어진 ‘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제압하며 32년 만의 본선진출을 확정 짓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1983년 출범한 K리그의 전신 ‘수퍼리그’다.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기 3년여 전, 실업 세 팀과 프로 두 팀을 합쳐 다섯 팀으로 출범한 수퍼리그는 1.2부 승강 시스템까지는 아니어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프로시스템의 골격을 갖춘 리그였다. 당시 수퍼리그는 이전의 실업리그와 비교해 경기수준과 내용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고, 한국축구 사상 일찍이 볼 수 없던 관중 동원에 성공하며 축구 붐 조성과 저변 확대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료에 의하면 원년 수퍼리그가 진행되는 동안 축구장을 찾은 관중은 유료 입장객만 42만 여명으로, 하루 평균 2만 명을 훌쩍 넘었다. 여기에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 등 무료 입장객까지 감안하면 하루 평균 3만 여명이 수퍼리그를 관전한 셈이다. 수퍼리그가 펼쳐진 운동장은 연일 만원이었고 미리 문을 닫는 바람에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간 관중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최종일인 9월 25일 마산의 경우, 운동장 수용 능력(3만 5천명)을 넘어선 4만 여명이 입장, 트랙에까지 관중이 몰려드는 최대의 인파를 기록하기도 했다. 초창기 수퍼리그에는 박성화, 이장수, 최순호, 정용환, 이태호, 오연교, 박창선, 조병득 등이 그라운드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밖에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소속이던 허정무가 1984년 현대호랑이 축구단에 입단하며 국내팬들과 재회했고, 1987년에는 야생마 김주성이 대우로얄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모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주역들이다.

 



멕시코 월드컵 이듬해 수퍼리그는 프로팀만 참가하여 자웅을 겨루는 본격 프로시대 개막을 알렸다. 유공, 대우, 럭키금성, 현대, 포항제철 등 5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80게임 대장정을 시작한 87년 리그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에 입장 수입을 홈팀이 관리하는 등 훨씬 프로다운 면모로 운영되었다. 80년대 후반 리그에 합류한 일화 천마는 경기당 1천여 명의 고정팬을 몰고 다니던 스타감독 박종환의 지휘 아래 사상 최초로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프로축구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프로리그의 출범을 염원하던 실업리그 출신 노장들과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스타들은 관중들의 환호와 눈물 속에 그라운드 위에서 명멸했고, 그사이 한국축구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지나 3회 연속 본선 진출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졌다. 1994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미우라에게 한 골을 내주고 일본에 패했던 것이 ‘결코 용납하지 못할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그만큼 한국축구는 소리 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90년대를 거치며 한국은 더 이상 월드컵 본선을 염려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아시아의 맹주라는 별명도 붙었다. 비록 본선 조별리그에서 매번 탈락하기는 했지만, 60, 7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위상이었다. 같은 시기 프로축구도 명칭을 ‘K리그’로 변경하고 발전을 거듭했다. 강도 높은 팀 훈련과 지속적인 리그 경기를 통해 선수들은 실전감각과 전술이해력을 길렀고, 감독들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과 성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듯 시기상으로나 내용면에서 한국축구의 성장은 K리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독주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이웃 일본과 중국도 프로리그를 출범시킨 이후에야 비로소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히딩크가 와줄 수 없다


물론 해외리그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이 최근 국가대표 주전 자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선수구성은 말 그대로 ‘최근’에 이르러서야 시작된 것이고, 그들 역시 대부분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다져진 선수들이다. 만약 K리그 선수들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2년여에 걸쳐 수 십 경기가 치러진 2010년 월드컵 예선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는 게 가능했을까. 일부 해외파 선수들만으로는 부상, 컨디션 난조, 경고누적 등의 변수로 인해 본선 티켓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럽리그에서는 소속 구단뿐 아니라 선수 스스로도 차출 자체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를 간혹 접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선수의 장래와 팀 내 입지, 나아가 리그발전이 우선이라는 논리가 적용된다. 그렇게 최고의 리그에서 충분히 기량을 펼치던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제라드(리버풀), 램퍼드(첼시)가 장기합숙훈련을 갖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나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기력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자 하는 우리에게 언제까지 히딩크가 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정시기에 반복되는 기형적 합숙훈련은, 평소 끼니만 올바르게 챙겨먹어도 유지할 수 있는 건강을 고용량 영양제에 의존하는 것과 다름없다. 거의 매년 열리는 국제대회마다 선수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면 리그경기력 저하는 물론, 리그에 대한 팬들과 언론의 관심도 훨씬 시들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한국축구는 영양제가 소용없을 정도의 허약체질이 되고 말 것이다. 선수차출을 둘러싼 프로구단의 협조 또한 K리그가 선진화하는 속도에 비례해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K리그를 통해 한국축구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K리그에 무조건 희생을 요구할 게 아니라, 우선 K리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이 한국축구가 살 길이다. K리그도 할 일이 많다. 전술, 장비 등 세계축구의 추세를 신속히 적용하고, 우수지도자 육성, 판정시비 해소, 승강제 완전정착, 팬서비스 강화 등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동네마다 ‘제2의 기성용’ ‘제2의 이청용’을 꿈꾸는 아이들을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우리 축구의 자립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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