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즐겨찾기  l  시작페이지  l  2017.10.22 (일)
 http://interview365.mk.co.kr/news/3749
발행일: 2009/10/25 00:00:00  임정진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27)
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27. 천재, 선생님께 사랑을 고백하다



드디어 봉구네 학교에서는 학기말 고사가 시작되었다.

교무실에서 시험지 뭉치와 출석부를 뽑아든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딱딱한 얼굴로 복도를 지나왔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만만해 보이거나 빈틈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시험 감독 선생님 둘이 교실로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학생들은 책과 암기 노트를 펴고, 읽고 외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에는 정적과 함께 긴장감이 가득 찼다.

선생님 한 분은 교실 앞에, 또 한 분은 뒤에 섰다.

「전부 공부하던 거 치우고 눈 감어.」

아이들은 후다닥 책과 노트를 가방에 넣어 가방을 교실바닥에 내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순간 그동안 외웠던 것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봉구는 속으로 기도를 했다.

(오 하나님, 저를 가련하게 여기시어 제가 외운 문제만 쏙쏙 나오게 하시고 헷갈리지 않도록 통촉하시옵소서. 성은이 망극라여이다, 아멘.)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되는 세상이다. 알량한 선심 쓰다 자신의 내신 성적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각자 유의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컨닝을 한 사람, 보여준 사람 똑같이 시험지 회수하고 영점 처리한다. 눈 뜨고 시험지 뒤로 돌려.」

시험지는 순식간에 골고루 나뉘어졌다. 시험지를 받아 든 아이들은 이를 꽉 깨물거나 한숨을 쉬며 이름과 반, 번호를 적었다. 앞에 섰던 감독 선생님은 교탁 위로 올라가 앉았다.

은주는 차분한 표정으로 문제를 풀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 은주를 흘낏 보고 봉구는 다시 시험 문제들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알 만한 문제는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팔뚝에 깨알처럼 메모를 해둔 성훈은 시험지로 선생님의 시선을 차단한 후 재빠르게 옷소매를 올려 컨닝을 하며 문제들을 풀어 갔다.

민자는 스커트에 고무줄로 매달아 놓은 컨닝 페이퍼를 꺼내려고 조심스럽게 손을 스커트 밑단에 가져갔다.

「손이 책상 밑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어!」

뒤에 서 있는 감독 선생님의 고함에 민자는 찔끔해서 얼른 손을 시험지 위로 올렸다. 고무줄의 반동으로 컨닝 페이퍼는 스커트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촉새는 뒤에 앉은 애를 협박하여 정보를 얻기로 했다. 왼쪽 발을 까딱거리면 십자리 수, 오른쪽 발을 까딱거리면 일자리 수였다. 모르는 문제 서너 개를 남긴 후 왼쪽 발을 까딱거리고 오른쪽 발을 까딱거려 몇 번 문제인가를 알렸다.

그러면 뒤에 앉은 애가 볼펜을 똑딱거려 답을 가르쳐 주었다,

모의고사 때는 OMR카드를 사용해 주관식까지도 무난히 정보를 전달했으나 학기말 고사 때는 OMR카드가 없어 갖가지 원시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시간이 10여 분밖에 남지 않게 되자 다급해진 몇 명이 최대한으로 눈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난다.」

앞에 있는 선생님이 위협적인 말투로 소리치자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자기 시험지만 쳐다보았다.

달중은 시험지는 보지도 않고 느긋하게 답안지만 채워 나갔다. 만 원을 주고 매수한 꼬마라는 별명의 아이만 쳐다보면 되었다. 꼬마는 달중의 대각선 앞쪽에 앉아 왼손으로 머리를 받치는 척하면서 손가락을 목 뒤에 자연스럽게 갖다 댔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을 천천히 하나씩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며 달중에게 사인을 주었다. 검지손가락은 일 번, 새끼손가락은 사 번이 답이란 뜻이었다. 그렇게 33개의 답을 다 가르쳐 주고 나서 시험지를 내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달중은 열심히 받아 적다가 꼬마가 손을 들자 깜짝 놀랐다. 제일 마지막 칸이 비어 있었다.

「야-아」

그러나 자신에게만 들릴 크기의 목소리가 꼬마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꼬마는 시험지를 내고 나가 버렸다.

달중은 울상이 되어 빈 칸을 내려다보다 별수없이 시험지를 내고 꼬마를 따라 교실을 나섰다. 꼬마는 화장실 쪽으로 가버렸다. 달중은 씩씩대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소변을 보던 꼬마가 달중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달중은 너무나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약속이 틀리잖아, 임마, 왜 끝까지 안 불러 줘?」

「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끝까지 다 찍어 줬잖아.」

「뭐? 끝까지 다 찍어?」

달중은 당황했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사태인가.

「그래, 난 다해줬어.」

「그... 그럼, 내가 하나씩 밀려 썼단 말야?」

꼬마는 태연하게 바지 지퍼를 채우며 그건 자기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이구야, 난 망했네. 망했어.」

달중은 자기 머리를 쿵쿵 쥐어박았다. 꼬마는 그런 달중을 외면하고 화장실로 나서려 했다.

「얌마.」

꼬마가 돌아보자 달중은 손을 쑥 내밀었다.

「돈 줘.」

「무슨 돈?」

「일이 잘못됐으니까 돈을 돌려줘야 할 것 아냐.」

「돈? 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돈 돈 하다 돌아 버린 애 있어. 약속은 지켰는데 잘못은 네가 했잖아?」

달중은 그만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돈 똥 된 지 오래다. 억울하면 네가 직접 공부해. 그럼 돈도 안 들어.」

꼬마는 휘파람을 불며 나가 버렸다. 달중은 꼬마 뒤통수에 주먹을 휘두르며 <저런,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5분 남았습니다. 답안지 확인하세요.」

감독 선생님의 <종료 5분 전> 선언이 내려지자 몇 명은 연필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답안지를 백지로 남겨둔 채 천정만 보던 천재는 비로소 결심을 하고 연필을 들었다.

굳은 표정으로 2번 칸에 빗금을 쳐 메우기 시작했다. 끝까지 2번을 채운 후 주관식 칸 두 개에는 2, 2 라고 적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이름과 번호를 확인하고 나니 종이 울렸다.

「손 올려.」

「뒷사람 일어나 걷어.」

시험지를 걷어 가는 날렵한 손을 보며 준식은 지난 달 담임선생과 면담할 때 들은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고3만 입시생이 아니다. 이젠 고등학교 3년이 모두 입시철이야. 내신성적을  위해서 3년 내내 입시생이어야 하는 거다. 과외하니? 그럼 학원? 과외 교습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래 일주일에 두 번하고 15만 원, 20만 원이라며? 비싸긴 하지만 일류대 들어간 두뇌 빌려 쓰는 건데 비싸도 할수없지. 좋은 대학에 가면 그 정도 투자는 아까운 게 아니다. 좋은 대학 가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말야. 취직에 연관되고 임금에 관계되고 일생 동안 승진에 영향 주고 그것으로 인해 사회적 위신과 경제적 수준이 결정되잖니. 투자할 만한지. 고3때 원서 쓰는 거 보면 가슴 답답하지. 지방대 가는 애들이 많잖아? 재수하는 것보다 지방대 가는 것이 낫다고, 아무데고 대학만 가면 되는 줄 아는 부모들이 많거든. 지방대 나오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해. 웬만한 중소기업도 힘들어. 4년 뒤 그 애들이 겪을 설움을 생각하면 4년간 하숙비 쓰는 걸로 재수하라고 충고하고 싶을 때가 많아. 그러니까 준식이 너도 잘 생각해서 공부해. 알았지?」

준식은 아이들이 서로 답을 맞춰 보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다음 시간 시험 볼 과목의 노트를 꺼냈다.

시험은 3일간 계속되다가 드디어 끝이 났다. 마지막 시험지를 내고 천재는 양호실로 달려갔다. 양호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양호 선생은 창가에 의자를 갖다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천재의 눈은 가운 밑으로 드러난 강 선생의 늘씬한 다리에 머무르자 빛나기 시작했다. 인기척을 느낀 강 선생이 문 쪽을 바라보자 천재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강 선생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더니 심각한 얼굴로 강 선생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강 선생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책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러자 천재는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강 선생에게 한 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강 선생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시험 보다 미친 애가 있다는 최 선생의 말이 떠올라 뒷걸음질 쳤다. 천재는 또 한 발, 두 발 다가오는 것이었다. 몇 걸음 못 가 강 선생은 벽에 부딪혔고 천재는 강 선생 코앞까지 다가섰다. 강 선생이 너무 두려워 고함을 지르려고 하는 순간에 천재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우는 것이었다. 엉엉 울면서 천재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엉엉, 전 죽어야 해요. 저 같은 놈은 살 가치가 하나도 없어요. 엉엉. 저는요, 인간쓰레기예요.」

강 선생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천재를 내려다보았다. 천재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계속 울먹였다.

「선생님, 절 좀 죽여주세요. 여긴 극약도 있죠? 그걸 좀 저에게 주시란 말예요.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죽지를 못했어요. 선생님, 전 비겁한 놈이에요.」

강 선생은 그제서야 천재가 시험을 못 봐 괴로워하는 것임을 짐작하고 위로를 해주려고 천재 곁에 앉았다.

「진정해라.」

강 선생이 천재 어깨에 손을 얹고 다독거리자 천재는 용기를 내어 강 선생에게 와락 안겼다.

「선생님-」

강 선생은 흠칫 놀랐지만 애써 여유 있게 천재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키려 했다.

「너 시험을 망친 모양이구나.」

천재는 <네> 하면서 더욱 용기를 내어 머리를 강 선생의 가슴에 비벼댔다. 강 선생은 고함을 지를 뻔하다 간신히 참고 천재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원통해 하는 걸 보니 이번엔 공부를 열심히 한 모양이구나.」

천재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볼멘소리로 <아뇨> 라고 했다. 강 선생은 어리둥절했다.

「앞으론 열심히 할 거예요.」

강 선생은 이제 천재가 진정이 된 것 같아 천재를 떼어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덩치만 컸지, 하는 짓은 꼭 유치원 다니는 조카 같았다.

천재는 양호 선생님이 자기의 투정을 받아 주자 감격의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선생님.」

「응?」

천재는 이번이 다시 못 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저한테 말 못 할 고민이 하나 있어요.」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겠니?」

강 선생은 속으로 <성병 문제>나 혹은 <자신의 성기가 작다고 고민하는 것>, 아니면 자위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는가보다 짐작했다. 상담실이 있는데 양호실로 와서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그런 쪽 문제이리라는 짐작이었다.

「사실 그럴려고 왔어요. 선생님만이 제 고민을 해결해 주실 수가 있거든요.」

「그래, 여기 앉아 말해 보렴.」
둘은 마주앉았다. 천재의 얼굴은 다시 심각해졌다.

「선생님, 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그래? (여자애가 임신을 했나?) 아주 잘된 일이구나.」

「근데 문제가 있어요.」

「문제라니? (또 낙태 수술 하는 데 같이 가줘야 하나?)」

「제가 사랑하는 여자가 저보다 나이가 많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고3짜리 여학생을 꼬신 모양이군.) 서로 사랑하면 됐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이런 말두 있지 않니? <사랑엔 인종도 국경도 없다.> 그러니 나이 같은 건 아무 문제가 안 되지. 요즘 연하남자하고 결혼하는 여자도 많아.」

천재는 표정이 환해졌다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문제가 또 있어요.」

(아니 그럼 유부녀?)

「제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여자는 전혀 모르고 있어요.」

「그래? (짝사랑도 괜찮지.)」

「전 어떻게 해야 하죠?」

강 선생은 잠시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고백을 하는 것이 좋겠어. 남자답게 말야. 혼자 끙끙 앓아 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고백하면 될까요?」

「물론이지 여자는 모름지기 남자의 박력에 약한 거야.」

천재는 <박력>이란 말에 용기백배하여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그리곤 후다닥 밖으로 도망쳤다. 강 선생은 멍하니 있다 곧 웃기 시작했다. 웃어도 웃어도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계속>




- Copyrights ⓒ 인터뷰365,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interview365.com 발행인 김두호 ㅣ 편집인 겸 청소년보호책임 김두호
인터넷 신문 등록 서울아00737ㅣ등록일 2009. 1. 8 / 창간일 2007. 2. 20
발행소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콜카빌 801호 l TEL: 02-6082-2221 ㅣ FAX: 02-2272-2130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 Allrights reserved press@interview365.com ㅣ shinyoung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