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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01/11 00:00:00  김두호




[그때 그 인터뷰] 되돌아 본 노래인생 반세기의 ‘동백아가씨’ 이미자
꾸미지 않고 산 평범한 모습의 국민가수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어느덧 고희에 이른 가수 이미자가 우리의 노래문화에 끼친 그의 공적을 돌이켜 보면 그의 가슴에 온통 수백 개의 훈장을 달아주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기만 하여도 울렁 / 생각만 하여도 울렁 / 수줍은 열아홉살 움트는 / 첫사랑을 몰라주세요 / 세상의 그 누구도 다 모르게 / 가만히 남몰래 숨어 있는 / 음∼내 가슴에 음∼ 숨어 있는 / 열아홉 순정이래요’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 열아홉 생머리 처녀 이미자가 1959년 가요무대에 등장하며 부른 <열아홉 순정>이다. 지금도 나이 든 분들은 흘러간 열아홉 시절의 향수에 젖어들며 이 노래를 애창한다. 노랫말에 묻어 있는 애잔한 정감을 듣는 이의 가슴에 스며들게 하는 그의 노래와 창법은 그 자신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히트곡으로 이어졌다. <동백아가씨> <황포돗대> <울어라 열풍아> <섬마을 선생> <흑산도 아가씨>...부른 노래가 1천 5백여 곡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분명한 것은 트로트가요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며 ‘국민가수’라는 말이 가장 손색없이 주어질 수 있는 대표 가수라는 점이다.


“난 아직도 내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 왔는지 궁금하고 믿어지지 않는다며 자문자답할 때가 많다. 난 한번도 인기를 얻으려고 욕심내고 누구에게 매달려 본 적이 없다. 스스로의 인기관리에도 무관심했다. 신비하게 보이려고 무엇을 감추거나 미화시키는 재주도 없다. 나이도 감춘 적이 없고 월남 위문공연 때 입은 교통사고의 흉터가 있어도 성형을 할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그냥 필요로 하는 곳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사는 것도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고 사는 게 내 인생이다.”


이미자가 언젠가 기자들에게 고백한 자신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그녀는 ‘엘리지의 여왕’으로 가요무대의 한복판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늘 겸손했다.


서울 한남동의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평탄한 성장기를 가질 수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불러 어딜 가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피난시절 충남 예산극장에서 열린 콩쿠르에 출전할 때도 소녀였다. 서울 문성여고를 다닐 때는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노래자랑에 나가 일등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캬바레에서 섹스폰을 불던 김경호 씨를 만나 이론을 접하는 음악공부를 하게 되고 첫 TV 방송국인 HLKZ의 아마추어 가요경연에 출전하면서 인기 작곡가인 나화랑 씨의 눈에 띄어 <열아홉 순정>을 부르면서 이미자의 노래시대가 시작됐다.


반세기, 50여 년을 보낸 이미자의 노래인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매년 연말 ‘이미자의 효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해온 그는 젊은 시절 KBS 프로듀서 출신의 김창수 씨를 만난 후 아들 하나를 두고 다복하게 살아 왔다. 무대를 떠난 시간은 언제나 평범한 주부로 주말에는 가족과 성당을 찾고 부군이 좋아하는 난을 키우며 직접 식탁을 준비하는 주부로 돌아갔다. 은퇴 없는 가수의 삶을 산 그의 30년 전 화려했던 젊은 시절 전성기의 후반은 어땠을까? 1980년 인터뷰에서 그는 뜻밖에도 “이제 조용히 한 가정의 아내로 돌아가 살고 싶다”고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59년에 데뷔했으니 가요계 여왕으로 군림한 지 20여년이 됐다.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곧 가요계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각오는 하고 있지만 시기는 정하지 않았다.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전 아쉬움이 남을 때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요즘 일과는?

학교에 가는 아이와 출근하는 아빠 때문에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난다.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 있지만 청소 같은 일은 직접 한다. 세탁기가 있지만 빨래를 손으로 직접 하기도 한다. 시간나면 뜨개질도 하고 낮잠으로 피로를 푼다.


아들은 공부를 잘하는가?

초등학교 3학년이다. 줄곧 1등을 하고 있다. 나는 별로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아빠를 닮은 것 같다.


아기를 더 낳을 건가?

하하하. 내 나이가 몇인데 더 낳겠는가?



요즘 공연 활동은?

TV에 출연하고 야간무대에 조금 나가는 것뿐이다. 극장쇼엔 나가지 않고 있어서 시간에 여유가 많아졌다. 너무 공연에 얽매이면 후배들 보기에도 그렇고 내 시간도 없어서 불편하다. 차츰 스케줄을 여유 있게 관리하고 있다.


가요계를 떠날 생각을 한 것은 직접적인 동기가 있는가?

점점 복잡하고 분주한 것이 싫어진다. 중년에 접어들어 이젠 조용히 살고 싶다. 아주 평범한 주부가 되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노래도 내가 바라는 만큼 이루어졌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당신을 엘레지의 여왕으로 부른다. 노래도 슬프게 하지만 지금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 고생한 것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 같다.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말이든 그 소리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좋아하지 않는 호칭이다.


그동안 인기를 누리며 재산도 엄청나게 많다는 소문이 있다. 어느 정도인가?

경기도 이천에 사 둔 농장이 유일한 재산이다. 연예계 소문이란 진실도 있지만 황당한 것도 많다. 5년 전에는 내가 벽혈병인가, 암인가로 시한부 생명을 산다는 소문이 나돌아 방송에 출연해 해명까지 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적은 없는가?

좀 약해 보이지만 보기보다 강한 체질이다.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산다.


과거를 돌아보면 가장 흐뭇했던 시간은 언제였나?

데뷔 첫 디스크가 나왔을 때 이미자란 이름 석자가 크게 박힌 음반을 만지는 순간의 기쁨은 잊을 수 없다. 또 1965년 파월장병 위문공연 때 장병들과 <동백아가씨>를 함께 부르며 주룩주룩 함께 울 때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1969년 빅터레코드 주최로 열린 일본 산케이홀 공연과 국내에서 첫 리사이틀을 가졌을 때도 감격이었다.


반대로 슬펐던 기억이라면?

강물처럼 흘러간 지난 세월의 아픔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만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다. 5년 전 경기도 금촌극장 공연을 하고 돌아오다가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내가 탄 차와 영업용 택시가 충돌해 머리와 팔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가 내 인생의 위기였다.


은퇴 시기를 언제쯤 잡고 있나?

실행되지 않은 앞일을 장담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떠날 때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 공연무대를 마련하고 싶다. 한번 떠났다가 다시 나오는 가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주부로 철저히 돌아가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또 가수가 되고 싶은가?

아니다. 평범한 주부로 살겠다.


가깝게 지내는 가요계 선후배는?

패티 김 언니와 친구는 미국에 간 최숙자, 후배는 노래 잘하는 조용필 나훈아 등 후배들이 많다.


평생 즐기는 음식이나 취미생활이라면?

채식을 즐긴다. 지금의 취미는 뜨개질이고 좋아하는 색깔은 밤색이고 핑크색은 질색이다. 운동은 하지 않고 하루중 즐거운 순간은 일과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가 언제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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