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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2/01 11:37:50  석광인




40년 만에 첫 콘서트 여는 가수 이장희
“가수로 다시 태어난 기분…설레고 떨리고 만감이 교차”


 

【인터뷰365 석광인】“가수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죠.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데뷔 41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갖게 된 가수 이장희(66)의 의미심장한 소감이다. 그는 지난 1972년 자작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발표하며 데뷔한 이후 ‘한잔의 추억’, ‘그건 너’, ‘편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방송무대를 제외한 콘서트 무대라곤 올라본 적이 없다.

 

순회공연을 앞두고 서울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 홀에 마련된 쇼케이스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기자들 앞에서 선 이장희는 자신의 말대로 이제 갓 데뷔한 젊은 가수처럼 활기가 넘쳤다. 그의 순회공연은 <이장희 전국 투어 콘서트-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제목으로 오는 3월 2일 오후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9일 부산 벡스코오디토리움, 16일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 23일과 2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4월 6일 전주 소리문화회관 모악당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1973년 동아방송 심야 프로그램의 DJ로 인기를 누리던 이장희는 1975년 가수 생활의 절정기에 당시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활동을 중단한 이후 최근까지 가수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가수 활동을 접기는 했지만 작곡가와 음반 프로듀서로선 계속 활동을 벌여 가요계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음반제작자로는 김수철과 김현식 등을 발굴했는가 하면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조영남의 ‘불 꺼진 창’, 정미조의 ‘휘파람을 부세요’, 김세환의 ‘좋은 걸 어떡해’,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등의 명곡들을 만들었다.

 

콧수염과 오토바이 그리고 통기타와 청바지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청년 이장희는 감성을 자극하는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197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지만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레스토랑, 의류 판매업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다가 LA 미디어 그룹 ‘라디오 코리아’의 대표로 오르며 사업가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라디오 코리아’, ‘스포츠서울 USA', ’옐로 페이지‘ 등 10개의 미디어 그룹을 경영하는 등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는 캠핑카를 몰고 여행을 떠나곤 하던 여행광이었다고 한다. 미국 전역은 물론 남미의 아마존 정글,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 유라시아의 일부 지역까지 고루 섭렵했다.

 

이장희는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 맞춰 그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음원들을 모아 앨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새로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그의 히트곡들과 다른 가수들이 불렀던 곡들을 담을 예정이다.  또 은퇴 이후 울릉도에 거주하며 만든 곡 ‘울릉도는 나의 천국’도 담는다. 그의 공연에는 함춘호 밴드와 그의 오랜 음악친구 강근식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는 회견에 앞서 오랜 친구인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함께 기타를 연주하며 ‘그애와 나랑은’과 ‘그건 너’의 두 곡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불러 제치더니 “기자회견하면서 노래까지 하려니 쑥스럽다”며 웃었다.

 

이장희는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 맞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음원들을 모아 앨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새로 발표한다.

 

데뷔 40년 만에 첫 콘서트를 여는 소감은?
저는 연예계 생활이 짧았습니다. 습작시절이라 할까, 가수 지망생 시절 잠시 클럽에서 노래한 것 외에는 무대에 선 경험도 거의 없어요. 데뷔곡이 '그애와 나랑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1972년도 인가…. 여기 강근식 씨하고는 그 당시부터 오래 음악을 같이해 왔는데 이번에 콘서트 앞두고 연습하면서 내가 그랬어요. '야 근식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한 적이 있냐'고. 하하.
하여간 72년 데뷔하고 이듬해인 73년 동아방송 심야 프로그램의 디제이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공연 무대라곤 선 적이 없어요. 물론 스튜디오에서 취입을 하거나 방송용으로 노래한 적은 있었지요. ‘한 잔의 추억’이나 ‘그건 너’ 같은 곡들도 많아야 열 번 정도 밖에 부르지 않았어요. 그 외에는 40여 년 간 무대에 오른 일이 없어요. 85년인가 미국에 친구들이 와서 콘서트할 때 억지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는데 한 소절 부르고는 못했어요.
작년 초 MBC TV에서 방송용 공연을 하자고 해서 데뷔 후 처음으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더 늙기 전에 한 번 열어보자는 심정으로 노래 연습을 하는데 즐거웠어요. 가수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도 즐겁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할 생각인가.
주제넘게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진정과 감성을 전해주는 자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에 젖는 자리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면서 만든 노래들이어서 그 시대의 정신과 내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요.

 

히트곡들의 가사가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게 특징인데 곡 만들 때 어떤 원칙이 있나?
감수성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 노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특히 팝송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당시 유행하던 컨트리 앤 웨스턴을 많이 들었어요. 가사를 들여다 보니 평소 대화하듯 쓰는 말이었어요. 특히 행크 윌리엄스라는 유명한 가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히트곡들은 모두 대화를 나누는듯한 가사였어요. 당시 우리 가요는 그와는 달리 문어체를 많을 썼지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대화하듯 자연스런 내용의 곡들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저는 가사를 먼저 쓰는데 어떤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냐, 아니면 이별의 아픔이냐 하는 내용을 정한 다음 쓰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방향이 정해지면 한 1주일에서 열흘이면 가사가 완성됩니다. 처음 몇 구절만 떠오르면 나머지는 쉽게 연결되곤 합니다.

 

예전 음반제작을 할 때 특히 사랑과 평화의 곡들을 보면 선구자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젊은 시절 접한 음악을 흉내 내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세레나데로 발전하고 나이가 들면 정서도 바뀌면서 음악도 변하게 되지요. 75년 대마초 사건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한 이후 옷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사랑과 평화의 무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연주를 아주 잘하는 밴드였는데 이 친구들이 자신들이 취입할 곡들을 달라고 해요. 내가 무슨 작곡이냐며 웃어넘겼는데 자꾸 전화 오고 찾아오는 바람에 한 번 해보자고 달려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한동안 뜸했었지’와 ‘장미’가 완성되었지요. 이후 동생 친구인 김현식씨 등의 곡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장희는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 맞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음원들을 모아 앨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새로 발표한다.


가수 이장희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한 마디로 복잡다단합니다.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사람, 밝은 사람. 모든 걸 다 갖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 달라.
제가 중 2때 윤식이라는 경기중학교에 다니던 친구와 함께 도봉산으로 캠핑을 갔어요. 최초의 캠핑이었는데 우이동 계곡에 텐트 치고 겁도 없이 담배를 피우는데(웃음) 너무 좋았습니다. 자연이 좋고 친구가 좋았고 하여간 너무 좋아 “야 윤식아. 하루 더 있자”고 말했어요.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이면 돌아와야 하는데 결국 월요일 밤에 귀가했지요. 그 때부터 저는 자연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여행 특히 캠핑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에 가서도 주말만 되면 여행을 떠나곤 했어요. 뒤쪽 트렁크를 열면 자동으로 텐트가 되는 캠핑카를 구입해 20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즐기곤 했습니다.
88년인가 은퇴하면 한국에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방송국과 교섭하느라 귀국하면 설악산에 머물곤 했습니다. 달밤에 설악산 암자나 토굴에 앉아 산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을 내려다보노라면 저절로 무릎을 치게 됩니다. 이런 게 선경이구나. 정말 우리의 산야는 아름답고 신비하구나 감탄을 하며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울릉도에서 생활하는데 그 이유는?
원래 은퇴하면 여름에는 알라스카에서, 겨울에는 하와이에서 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그래요. 울릉도에 한 번 가보라고. 울릉도에 가는 순간 홀딱 반하고 말았지요. 1주일 동안 울릉도 곳곳을 걸어 다니며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그곳 농협을 찾아가 “밭이 딸린 초가집을 사고 싶다”며 문의를 했지요. 그래서 도동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걸리는 곳에 있는 현재의 집을 소개받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백년도 넘은 집인데 겉모습은 놓아두고 내부 일부만 수리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노래할 생각인가?
그 문제는 명확하게 답을 못하겠어요. 늘 생각지도 않게 바뀌니까. 2년 전 '무릎팍도사' 출연할 때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나갔는데 '세시봉'에 나갔잖아요. 미국에 있는 친구가 “네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모여서 하는 거 같은데 넌 왜 안 나가냐”고 해서 마음을 바꿨죠.(웃음) 그러다 보니 TV콘서트도 하게 되고, 또 이 자리까지 오게 되고…. 하지만 일단 이번 공연에 혼신을 다해야죠. 처음으로 콘서트하는 기분인 만큼 내 모든 걸 다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인터뷰이 나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9월 27일부터 이틀간 개최되는 42회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에 포크 싱어 이장희가 출연해 자신의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를 부른다.


이번 공연에는 성악가 고성현, 박기천, 김재형 김유섬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테너와 소프라노들이 참여하고 서희태 지휘자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특히 눈길을 끌게 하는 인물이 지휘자인데 그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실존 모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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