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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6/13 14:13:01  정중헌




한국연극계의 큰별 여석기 교수
92세로 타계한 그의 삶 연극 그리고 학문


 

한국 연극계의 원로인 여석기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이 12일 오전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여 이사장은 1960년 유치진, 신태민, 이해랑 등과 함께 드라마센터를 설립해 젊은 극작가 양성과 연극 진흥에 힘썼다. 한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윤대성 오태석 등이 모두 드라마센터 출신이다.
영미 희곡 전공자였던 여 이사장은 연극비평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1964년 한국셰익스피어학회를 창립했고, 1970년부터 1980년까지는 연극비평 전문지 '연극평론' 발행인을 맡았다. 1987~1988년에는 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해서 '20세기 문학론' '희곡론' '현대연극' '한국연극의 현실' '동서연극의 비교연구' 등 연극에 관한 저작과 논문을 남겼고 '햄릿' '리처드 3세' '십이야(夜)'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인터뷰365에서는 지난 1월 여 이사장의 자서전 ‘여석기 나의 삶, 나의 학문, 나의 연극’ 출판에 즈음해 현장 취재를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여 이사장의 삶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당시의 취재기를 옮긴다.-편집자주

 

【인터뷰365 정중헌】지난 1월 26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 기라성 같은 연극계 원로들과 극작가, 배우, 연출가들, 그리고 공연예술계 대표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올해 우리 나이 92세의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출간한  <여석기 나의 삶, 나의 학문, 나의 연극>(연극과인간 발행)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었지만, 한국 현대연극 초창기를 회고하고 현실을 다시 보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영문학자인 여석기 교수는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34년 모교인 고려대에서 강의했고, 현장 연극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해온 1세대연극평론가로 지금도 활동하는 노익장이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여 교수가 태동 시킨 한국연극평론가협회(회장 허순자 서울예술대 교수)가 주관하여 모처럼 공연예술계 원로 중진과 현역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나 미디어의 관심권에 들지는 못했다.
현대가 디지털시대라고 하여도 현장성을 중시하는 연극은 살아있고, 여 교수를 비롯한 원로들이 한국 현대연극의 반세기 기반을 구축했다면 원로 연극학자의 자서전 출간은 주목을 모을 만도 한데 신문과 방송, 인터넷매체들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날 헤드테이블에는 92세의 여석기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신극사연구>의 저자인 이두현 전 서울대 교수(90세),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백성희 선생(89세), 무대미술가이자 예술원 회원인 이병복 선생(87세), 국제극예술협회(ITI) 세계본부 명예회장인 김정옥 예술원 회장(81세), 극단 현대극장을 이끈 극작가 김의경 대표(78세)가 자리를 함께 했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음악평론가 이상만 선생(90세), 할리우드 1세대 배우인 오순택 선생(81세),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원장(78세)이 보였다.
이날 참석자와 나이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이들 대다수가 여석기 교수가 일궈온 연극 교육 및 단체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극작가 윤대성 노경식 이강백 선생은 1962년 유치진이 설립한 드라마센터 극작워크숍 출신들인데, 여석기 교수는 드라마센터 초대 연극아카데미원장을 맡아 창설한 한국극작워크숍을 이끌어 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극작가 장성희 김명화씨도 참석했다.
학계 및 평론계에서는 서연호 안민수 김윤철 김방옥 김미혜 교수가 축하를 해주었다.
연극단체에서도 최치림 한국공연예술센터이사장,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 박계배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정대경 소극장협회이사장, 박명성 신시컴퍼니대표 등이 참석했다.
연극배우 박정자 장두이 예수정, 연출가 한태숙씨도 자리를 함께 해 여석기 교수의 폭넓은 인맥을 볼 수 있었다.
김정옥 예술원 회장은 노익장의 자서전 출간은 연극계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축하했고, 축사에 나선 김의경 대표는 여석기 교수가 활동하던 1970~80년대의 연극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최근 느낄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답사에 나선 여석기 교수는 “기억이란 공백과 단절, 아니면 뿔뿔이 흩어진 조각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지만 기록에 남겨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고 말기에 글로 남기기로 했다”며 “이제 나이 90세,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망백(望百)이라는 유페니즘(완곡어법)으로 미화했는데 이제 그 연배에 들어서 지나온 온갖 풍상에 대한 나름의 오마주를 기술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 극작가 윤대성 교수, 김정옥 예술원 회장, 이두현 연극학 교수, 여석기 교수, 김미혜 교수, 극작가 노경식 선생.


후학들에게 인생의 경륜과 예술의 깊이를 전해주는 회고록

 

여석기 자서전 출간이 주는 또 하나의 의미는 100세 이상 장수하는 시대에 학문의 길을 걷거나 예술의 바다를 헤엄쳐 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자기 인생과 활동을 정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귀감을 보였다는 점이다.
여석기 교수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온 셈이지만 일제치하부터 근 1세기 그의 여정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제목에서 보듯 제1부는 ‘나의 삶’, 제2부는 ‘나의 학문’, 제3부는 ‘나의 연극’으로 엮었다.
동경제국대학 영문과 2학년 때 학도징용에 끌려 가 노역을 치른 후 광복을 맞기 까지 고생도 많았지만 그는 경성대 영문학부를 나와 1987년 정년퇴직하기 까지 34년간 고려대 강단에 섰다.
광복 후 1세대 학자로 척박한 여건 속에서 영문학 연구에 매진한 여 교수는 한국영어영문학회,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햄릿과의 여행 리어와의 만남> <나의 햄릿강의> <현대 영미문학사> 등의 저서를 냈다.
여 교수는 연구와 후진 양성뿐 아니라 1960년대 초반부터 연극현장에 뒤어 들어 드마라센터 연극아카데미 원장을 맡아 극작워크숍을 이끌었고, 계간 <연극평론>을 발행하는 등 연극비평의 토대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그의 업적을 기려 ‘여석기연극평론가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해 오고 있다.
여석기 교수는 출판 기념회에 이어 열린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고려대 퇴직 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1977년 학술원 회원에 선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순을 넘긴 지금도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으로 매주 3일간 종로 사무실에 나갈 정도로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3부 ‘나의 연극’에 연극사적 가치 큰 증언 실려

 

여석기 자서전 중에서도 특히 3부 연극 부문에 한국연극사에 기록될만한 증언들이 다수 수록돼있다.
여 교수는 1960년대부터 20년간을 한국연극의 금싸라기 같은 시기로 꼽는다. 과거와의 단절을 내세운 1960년대 한국연극의 화두는 소극장이 주축이 된 ‘실험’이었고 상아탑에서 연극 현장으로 뛰어든 여 교수는 그 열기의 선봉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여 교수는 회고록에서 ‘시대를 살아남은 동인제 연극인들’과의 교류를 가장 행복했던 청춘기로 꼽고 있다.
1960년 동랑 유치진과 연을 맺은 여석기 교수는 극작워크숍 시절의 일화들을 소상히 밝혀 연극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기와 2기를 통해 현재 한국 연극을 이끄는 오태석 윤대성 박조열 노경식 등과 이강백 등을 배출한 극작워크숍 부문을 보다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 여 교수는 윤대성과 박조열의 증언을 자서전에  수록했다.
여석기 교수는 1960년 12월 ‘1960년의 연극’이라는 짧은 글로 평단에 데뷔했다. 그 때만해도 우리 연극계에는 비평가라는 존재가 생소했다. 연극학자 유민영 교수는 “여석기야말로 최초의 연극평론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여 교수의 관심사는 전통연극으로 이를 해외에 소개하는데 일익을 맡았다. 특히 ‘전통연극의 현대적 계승’과 오태석 유덕형의 실험을 다룬 ‘한국 연극의 실험’이란 2편의 평론은 ‘우리 것 찾기’ 운동의 촉매가 되기도 했다.
그는 1970년 봄에 <연극평론> 첫 호를 냈다. 이후 10여년 동안 매호 편집에 특집을 활용하여 관심을 모았다. 당시 10호까지 특집 중 몇 개를 열거해 보면 ‘소극장운동“(2호), ’극예술연구회 40주년‘(5호), ’몰리에르 탄생 350주년‘(6호), ’아서 밀러‘(7호), ’연출론‘ 등이다. 이중 연출론은 그로토프스키, 서사연극, 스타니슬랍스키, 브레히트 등 현대연극의 대표적 조류를 소개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유덕형의 <초분>과 피터 브룩의 <리어왕> 연출노트를 게재하기도 했다.
<연극평론>은 비록 발행부수는 500부 정도였으나 우리 전통연극에 대한 개안과 세계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연극의 현대성을 터득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하나의 업적은 새로운 평론가들의 발굴이다. 여 교수는 자서전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새로운 면면들, 이태주, 한상철, 이상일, 유민영, 양혜숙 등 ‘서울연극평론가그룹’ 멤버들은 조선일보 문화부 정중헌 기자의 뒷받침으로 화려한 논진을 펴게 되는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자서전 3부의 하이라이트는 ‘1970년대 한국 연극, 황금의 10년’이다. 평론가 여 교수는 1970년대의 키워드를 ‘자기 정체성 찾기’라고 했다. “1970년대는 연극행동의 당위성과 거기 수반되는 방법론에 대해 연극인 스스로가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얻어내려는 적극적 자새를 취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본 것이다.
구체적 사례로 여 교수는 유덕형의 <초분>에서 ‘연출의 묘미’를 유감없이 보였다고 평했다. 오태석의 <태>에 대해서는 ‘관객과 비평가 양쪽을 만족시켜준 작품’이라고 했고, <춘풍의 처>에 대해서는 ‘전통연희를 현대적으로 수용한 자유자재의 독특한 형식미’를 평가했다. 그러나 <하멸태자>의 경우에는 한국적인 내용과 양식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만족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최인훈의 일련의 희곡작품에 주목한 여 교수는 ‘신화적 상상의 세계에서는 훌륭한 비극이 될 수 있다는 패러독스를 우리 연극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기술했다.

 

후학들인 극작가, 평론가, 교수들과 함께 한 여석기 교수.


원로 학자와 예술가에 대한 관심과 활용 높이는 계기

 

지난 연말 ‘한국 출판계 대부’로 불리는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팔순을 기념하여 <책>이라는 자서전을 내고 프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회고전에는 단행본 출판의 정상에 서게 된  노하우와 출판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유익한 정보들이 수록돼 있다.
이처럼 한 평생을 의욕적으로 또 보람 있게 산 학자와 CEO들이 팔순과 구순에 이르러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영양가가 높은 경험들을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나 하는 것으로는 그 가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후학들이 그 책에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을 얻어야 회고록의 부가가치가 있고 올곧게 살아온 저자들의 생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고령화에 묻혀 버린 원로 학자와 예술가들에 대한 국가적 대책과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일이다.
평균 수명이 80을 넘어 90으로 가는 세상에서 50~60대에 정년  퇴직한 학자와 예술가들의 활동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주변의 유명화가들 중에는 90을 넘어서도 붓을 잡고 있는데, 이들의 작품을 소통할 방법이 막막한 실정이다. 전에는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도 했으나 지금은 포화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나 지자체들이 관심을 가지면 이들이 지역 사회에 재능 기부도 할 수 있고, 창고에 쌓아놓은 작품들도 현실에 맞춰 유통시킬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인터넷 시대를 맞아 언론매체는 늘었으나 한국의 학계나 예술계를 이끌어 온 1세대 원로들에 대한 관심과 보도는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기존의 신문들도 표피적인 현상 보도에 급급할 뿐 심도 있는 인간 분석이나 현상 분석은 소홀한지 오래다. 종편을 비롯한 케이블TV들과 기존의 지상파들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와 예능에 경도되어 학예술 관련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이유에서 매스컴의 무관심 속에 흘러가버린 여석기 교수의 92세 자서전을 뒤늦게나마 조명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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