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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1/03 00:00:00  소혁조




여성으로 환생한 모차르트. 클라라 하스킬
소혁조의 인터미션


 



[인터뷰365 소혁조] 클라라 하스킬. 아마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소나타를 즐겨 듣는 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일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모차르트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페셜리스트였고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했던 바이올린 소나타는 전설적인 명반으로 남아 있다.



그녀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는 가장 모차르트다운 아름다움, 자연스러움, 생동감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봄의 미풍에 온몸을 맡긴 채로 들판에 누워 있는 느낌?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모차르트는 이토록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클라라 하스킬이란 피아니스트가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도록 기구한 삶을 살았던 여인인지 모른다면 '피를 짜내고 뼈를 깎아서 만들었던'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명연주를 감상하는 의미가 크게 반감되리라 생각한다.



천재의 환생-여성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모차르트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이 있다. 이 천재들 중엔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과시하여 평생을 영광스러운 삶을 살다간 축복받은 천재들이 있는가 하면 유약한 심성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한계, 또는 주위의 불우한 환경 때문에 그 천재성을 펴보지도 못하고 일찍이 산화한 이들도 적지 않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20세기 음악사에서만 이런 불행한 천재들을 살펴보자면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미남 지휘자 '귀도 칸텔리' 와 평생을 두고 아꼈던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 를 품에 안고 망망대해에서 시체로 발견되어야 했던 천재 여인 '지네트 느뵈' 가 있다. 이들의 삶은 비극 그 자체이다. 만일 그들이 조금 더 살았더라면? 조금만 더 살아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더라면? 하는 가정에서 오는 진한 아쉬움만을 남긴다.


칸텔리, 느뵈와는 약간 다른 궤적을 보이는 삶이 있다. 요절의 비극은 아니지만 예기치 못했던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하지만 그 천재성의 일부만을 보여주었어도 이미 전설로 남은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첼리스트 중 가장 빛나는 삶을 살았던 여인 '재클린 뒤 프레' 와 오늘 이야기하는 '클라라 하스킬' 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클라라 하스킬은 1895년에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스페인계 유태인이었는데 그녀의 조상들이 유럽의 여러 곳을 전전하는 고단한 삶을 살다가 루마니아에 정착하였고 바로 이 곳에서 하스킬이 태어나게 되었다.



하스킬이 어린 시절부터 천재 중의 천재였다는 일화는 많다. 하나씩 열거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많은데 6세 땐 한 번 들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그대로 따라서 연주하기도 했고 악장 전체를 조바꿈 해서 연주하기도 했다. 당시 하스킬은 악보를 전혀 볼 줄 모르는 아이였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비엔나에서 리하르트 로베르트의 문하에 들어가서부터였다. 참고로 로베르트의 제자 중엔 유명한 지휘자이자 연주자인 조지 셀과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있다. 11세가 되어선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가 포레와 알프레드 코르토를 사사하였다. 당시 하스킬을 가르쳤던 코르토는 석 달 만에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며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5세에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다. 주로 실내악에서 많은 연주를 하였는데 그 이름만으로 전설인 이자이, 에네스쿠 등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연주하였고 첼로의 신 파블로 카잘스와도 함께 협연하며 15세의 소녀는 전설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짧았던 영광의 세월은 그녀가 18세가 되기 이전까지의 일이었다. 18세가되면서부터 그녀는 끝없는 불행과 불운 속에 몸부림치며 투쟁하는 고단한 삶을 살게 된다.


영광과 기쁨, 좌절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 둘도 없을 천재란 평가를 받으며 레전드를 예약해 놓았던 소녀 하스킬. 그러나 18세에 찾아온 병마는 그녀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게 된다. 세포경화증이란 희귀한 불치병에 걸려 온 몸의 신경이 모두 마비되고 무려 7년 간의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뼈와 근육이 모두 붙어버리는 이 희귀한 병에 걸렸던 이 7년의 세월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가버렸다. 등과 허리가 모두 굽어 꼽추가 되었고 아름다웠던 미모도 모두 잃었다. 부모님은 일찍 죽었고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친 세월이 무려 7년이었다.



7년의 긴 세월을 보낸 하스킬은 극적으로 재기하게 되어 옛 동료들과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다. 이자이, 에네스쿠, 카잘스 등의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반주자로 활약을 하게 되었으나 병마는 그녀에게서 건강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 그녀는 성격마저도 무척 소심해졌다. 그녀의 성격은 겸손함과 수줍음을 넘어 무척 소심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그녀의 성격 때문에 그녀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음반 레코딩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8세에 찾아온 병마는 그녀 개인에게 찾아온 불행이었다면 세계 2차 대전은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유태인인 그녀는 생존을 위해 나치의 눈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파리에서 숨어 지내다가 파리가 나치에게 점령되자 다시 마르세유로 숨어 들어갔고 이 와중에 뇌종양까지 걸리게 되었다. 뇌종양 수술을 받으며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다시 겪어야 했던 하스킬. 뇌종양 수술 중 시력을 잃을 뻔한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다. 천만다행하게도 유태인 의사가 마르세유까지 내려와서 그녀를 수술해주었기에 살아날 수 있었다. 아무리 불행은 겹쳐서 오는 법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라면 소설을 써도 뻥이라고 할 정도로 지나치지 않을까?


끝없는 불행과 싸우며 적어도 최악의 상황만큼은 맞지 않았던 하스킬. 너무 어린 시절부터 큰 불행과 싸워야 했기 때문일까? 그녀의 성격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척 겸손했고 수줍음이 많았으며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었다고 한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청소부나 되었어야 할 인생이다. 청소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난 행운아였다. 난 항상 낭떠러지에 있었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신의 도움이었다"




그토록 기구했던 삶을 인생이었기에 그녀의 성격은 아무래도 외향적, 적극적이기보다는 내성적,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으리란 추론이 가능하다.



50이 넘어서야 세상에 내놓은 신기



어린 시절부터 모차르트가 다시 태어난 신동 중의 신동이란 소릴 들었던 하스킬의 천재성은 병마에 시달린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얼마나 천재적 재능을 가졌는지 하나씩 사례를 살펴보면


① 42세에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 이틀 만에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하였다.


②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하루 만에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모두 외웠다. 이 연주는 전혀 예정이 없었고 원래 연주자는 호로비츠였으나 호로비츠가 나타나지 않아 급하게 대역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③ 찰리 채플린이 말하길 그의 평생 세 사람의 천재를 만났는데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 또 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또 한 사람이 하스킬이었다. 그 중 나머지 둘에 비해 특출하게 뛰어난 천재는 바로 하스킬였다고 한다.


하스킬은 그녀의 나이 52세가 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레코딩을 시작하였다. 50이 넘어서야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의 신기(神技)를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이는 그녀의 성격이 지나치게 겸손하고 소극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그녀의 성격이 조금만 덜 겸손했거나 그녀의 재주가 조금 덜 뛰어났더라면 훨씬 더 많은 역사적 명반이 나왔을 것이라 평한다.



그녀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모(代母)라 불리는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서방 세계에 나가 잠깐 동안 피아노를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하스킬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니콜라예바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 당시 한창 뜨고 있는 지휘자 카라얀을 보기 위해 연주회를 찾았는데 정작 연주회에선 카라얀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에 온몸이 구부러진, 흡사 마녀와도 같은 모습으로 연주하는 한 여성 피아니스트에게 온 정신을 빼앗겼다고 한다. 니콜라예바의 회고에 의하면 카라얀이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하스킬의 열 손가락이 모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하니 그녀의 연주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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