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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1/10 00:00:00  소혁조




클라라 하스킬이 남긴 음악
소혁조의 인터미션


 



[인터뷰365 소혁조] 하스킬은 그녀의 나이 52세인 1947년부터 레코딩을 시작하였다. 첫 번째 레코딩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그녀가 레코딩을 하게 된 것은 스위스에 망명하여 스위스 국적을 얻은 후의 일이었는데 전쟁의 포화를 피해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숨어 지내던 그녀를 발굴한 네덜란드의 기획사가 그녀를 스카우트하여 네덜란드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가진 이후부터였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연주회가 크게 흥행한 후부터는 그녀의 짧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시작된다. 유럽 전체에 천재 여성 피아니스트의 명성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열리는 연주회마다 언제나 성공을 거듭했다. 이후 여러 연주자들과 실내악, 협주곡을 녹음하였고 독주곡도 많이 녹음했다. 레퍼토리도 다양했다. 바흐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슈만을 비롯하여 현대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의 음악까지 모두 다루었다.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갖고 녹음했던 것은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호흡을 맞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타나였다. 아들뻘 되는 그뤼미오와 함께 환상의 커플을 이룬 이들의 연주는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화음을 들려준다.


짧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십 수 년을 보낸 하스킬. 그 짧은 행복마저도 누릴 권리조차 타고나지 못했을까? 그녀의 마지막마저도 너무 비참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연주여행을 하던 하스킬은 벨기에의 브뤼셀에 도착하여 기차역에서 계단을 헛디뎌 굴러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되었다. 의식을 잃고 바로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급히 파리에서 날아온 그녀의 동생에게 그녀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내일 연주는 못 할 것 같구나.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렴…"



잠깐 의식을 찾아 동생에게 이 말 한 마디를 남기고 하스킬은 다시 의식을 잃었고 다음 날 아침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났으나 인생의 절반 이상이 불행으로만 점철된 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이처럼 불행하고 쓸쓸했다.


그녀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모차르트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신의 삶은 끝없이 고통스럽고 불행했으나 모두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음악만을 만들었던 모차르트. 마치 자신의 몸을 불태워 세상을 밝히는 양초와도 같은 운명. 모차르트와 하스킬 모두 그 양초와도 같은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을까?


하스킬의 위대한 유산



하스킬이 남겼던 음반 중에 첫 손가락으로 꼽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이다. 그토록 겸손했던 그녀도 자신이 작업한 이 음반에 대해서는 '그나마 괜찮다' 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그녀가 이 정도의 평가를 내린 음반이라면 이건 기적적인 명반이라는 말과도 같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가 서로를 양보하고 밀어주는 듯이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음반의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봐도 이 음반을 뛰어넘는 그 어떤 음반도 나오지 않는다고 평가 받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하스킬은 그녀의 성격상 피아노 반주를 주로 하는 실내악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타나 외에도 역시 그뤼미오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또한 대단히 잘된 명반으로 꼽힌다.


그 외에 그녀가 소녀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춘 이자이, 에네스쿠, 카잘스 등과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등을 연주하였는데 이처럼 그녀가 현악기의 반주를 주로 맡았던 이유는 어린 시절에 바이올린도 함께 배워 현악기의 메커니즘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고 잠깐 배웠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병에 걸린 후 몸에 이상이 생겨 바이올린을 더 이상 연주하게 될 수 없었으니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협주곡 분야에서도 그녀의 활약은 매우 두드러진다. 특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그녀의 음반이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20번은 그녀가 가장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였다. 알려진 음반만 해도 모두 6가지나 될 정도로 많은데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 샤를르 뮌쉬,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가 지휘한 음반도 있고 그녀의 최만년인 1960년에 녹음한 음반도 있다. 그 어떤 것을 선택해도 하스킬의 모차르트 20번이라면 최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특히 1960년에 이고르 마르케비치와 함께 녹음한 음반이야말로 이 곡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 받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워낙 유명한 곡이라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여 많은 음반이 있지만 마르케비치와 함께 협연한 음반 이상의 것은 없다고 평가 받는다. 그 어떤 가식적인 요소도 첨가하지 않은 하스킬의 청량하고 투명한 피아노 소리야말로 모차르트 피아노의 본령을 들려준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도 하스킬의 연주 이상의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슬픈 곡으로 알려진 이 곡은 하스킬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녹아있는 듯한 구슬픈 연주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려 놓는다.


모차르트 이외에도 하스킬이 연주한 레퍼토리는 매우 다양한 편이다. 여성 연주자치곤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다양한데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슈만 등의 곡도 많이 연주하였다. 병에 걸리기 전엔 훨씬 더 다양한 곡을 연주했고 현대 작곡가들의 난곡들을 많이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병에 걸린 이후엔 신체에 이상이 생겨 연주 레퍼토리가 많이 협소해졌다.



그녀가 남긴 음반은 비록 52세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라 그나마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녀의 세포경화증이 다행히도 그녀의 팔에까지 피해를 입히지 않았기에 감사해야 하고 이 정도의 음반만을 남겨서라도 이토록 아름다운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게 해준 점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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