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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4/01 12:08:57  석광인




가슴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이광조
13년 만에 귀국, ‘아주 특별한 선택’ 콘서트


 

【인터뷰365 석광인】“대형 무대를 마련할 수 없으니 작은 콘서트부터 해야지요. 사실 소극장 공연이 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팬들과 보다 가까운 무대에서 노래해야 하니 작은 음 하나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니까요. 저를 사랑해주신 팬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듯 편안한 공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돌아와 신곡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가수 이광조(61)가 작은 공연의 장을 마련했다. 그는 오는 4월 6일과 7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2013 이광조 소극장 콘서트-아주 특별한 선택>을 개최한다.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어쿠스틱 편곡에 땨른 5인조 어쿠스틱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팝/재즈 보컬 그룹 그린티가 게스트로 무대에 함께 오른다. 토요일 오후7시, 일요일 오후 3시에 각각 열린다.

 

이광조는 이번 무대를 새 앨범 <꽃이라 부르지 마오>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꾸밀 계획이다. 그의 간절한 절창이 매혹적인 타이틀 곡 ‘꽃이라 부르지 마오’(정영 작사 김한년 작곡)를 비롯해 따뜻한 느낌의 발라드 ‘사랑인거죠’(박호명 작사 작곡), 가스펠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올드 프렌드’(이인영 작사 김한년 작곡), 인디밴드 노브레인이 피쳐링한 강렬한 라틴 리듬의 곡 ‘오! 예’(원상욱 작사 작곡) 등이 바로 문제의 신곡들이다.
이광조의 새 앨범에는 이외에도 가요 명곡 ‘웃는 얼굴 다정해도’와 ‘꿈속의 사랑’을 비롯해 팝 명곡 ‘문리버’, ‘오버 더 레인보우’, ‘브라질’ 등 11곡이 담겼다.
이광조는 ‘추억과 고독을 노래하는 가수’답게 이번 앨범에서도 외로움과 추억이 잔뜩 묻어나는 곡들을 노래했다. 분명히 처음 들어보는 신곡들인데도 예전의 첫사랑을 연상케 하거나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고독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2000년 미국 이민, 샌프란시스코에서 13년

 

이광조는 서울 태생으로 홍익대 미술대에 재학 중 이정선 등과 어울려 축제나 음악 살롱, 라이브 홀 등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76년 미술학도의 길을 접고 솔로 앨범 <사랑의 바람>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이정선 엄인호와 함께 트리오 풍선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9년 2집 <선창가에서>에 이어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오늘 같은 밤’이 수록된 3집을 발표한 것은 1980년. 그러나 이 노래는 무려 5년 뒤에야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이후 1986년 발표한 6집에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오늘 같은 밤’의 인기에도 탄력이 더욱 붙었고, ‘사랑을 잃어버린 나’,  ‘상처’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 이상 절정의 인기를 누린 이광조는 2000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가수로선 아직 전성기였던 40대 후반에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환갑의 나이에 돌아와 다시 활동을 펼치는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았다.

 

왜 떠났었나?
1999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내 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이민을 갔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것도 13년이나 외국 생활을 했는데….
널리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에 몇 번씩 귀국해 TV 라이브 프로그램에 출연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내가 외국에서 사는 사실조차 몰랐다.

 

미국 어디에서 살았나?
줄곧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다.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퍼시픽 하이츠라는 곳에서 거주했다. 월세 600달러짜리 방을 하나 얻었는데 정말 바깥 풍경이 아름다웠다. 하루 종일 방에 앉아 날씨에 따라 쉴 새 없이 바뀌는 금문교를 배경으로 한 바다 풍경만 바라봐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엇보다 바닷가에 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유유자적하면서 즐긴 셈이다. 휴식일 수도 있고 여유를 되찾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1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세월을 까먹은 게 아니냐’, ‘왜 그렇게 허송세월을 했느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스스로 게을러졌다는 생각도 했지만 삶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으니 허송세월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대 출신인데 그림도 많이 그렸나?
화구도 사러 다니고 스케치도 하곤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리진 않았다.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면서 내가 너무 아등바등 살았구나 하고 깨달았다고나 할까? 가사 쓰는 일도 그림 그리는 일도 싱거워졌다. 절실하게 덤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소일거리 밖에 되질 않았다. 가사도 써놓은 게 많은데 마무리가 잘되지 않았다.

 

돈이 제법 들었을 텐데 수입이 없어서 어떻게 했나?
수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의 가사를 썼기 때문에 매달 나오는 저작권료 수입이 꽤 된다. 물론 번 돈의 일부를 까먹긴 했지만 미국에서 살았다고 큰돈을 쓴 건 아니다.

 

여행도 많이 했겠다.
미국 남부 지역을 많이 다니며 구경했다. 특히 아칸소 주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인상이 깊은 곳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냈다.
영화 관람도 많이 했다. 특히 ‘지젤’ ‘호두깎이 인형’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발레 뮤지컬 오페라 등을 라이브로 촬영한 비디오를 보거나 상영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감상하곤 했다. 발레와 뮤지컬을 자주 보며 배우들의 감정 표현과 정서를 배워 내 노래에 이입시키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최근 서울에서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감명 깊게 보았다. 혜민 스님의 책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도 크게 공감을 했다. 소설 <오두막>도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 이민 13년만에 돌아와 공연을 여는 가수 이광조의 공연 포스터.

 

가요계가 많이 변했다. 새 앨범 내놓고 공연을 열자니 낯설지 않은가?
새로운 스타들도 많이 나오고 새로운 음악도 많이 나왔지만 난 원래 유행과는 상관없는 가수였으니 그냥 덤덤한 느낌이다. 어차피 젊었을 때도 나는 유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터이니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완전히 돌아온 것인가, 아니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홀어머니 때문에 돌아왔다.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이나 계획은 없다. 미국에서 생긴 살림살이를 배로 부쳤는데 통관이 무척 복잡했다.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사관에 찾아가 주저없이 영주권을 반납했으니 다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셈이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하루에 두 세 시간씩 걷는다. 30대 중반까지는 친구들하고 농구를 즐겼는데 40대 이후에는 특별히 하는 운동이 없다. 미국에 있을 때는 주로 바닷가를 많이 걸었고 요즘에는 효창공원과 남산을 오르곤 한다. <
kayeye2@naver.com>

 

가슴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이광조는 이번 공연에서 감성 발라드 위주의 곡들로 관객들과 대화하듯 노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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