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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4/08 12:36:03  정중헌




화단의 아웃사이더, 지리산화가 이호신
30년간 그림순례, 자연과 문화유산을 화폭에 담은 생활산수화 장인


 

【인터뷰365 정중헌】이호신. 57세의 이 화가는 주류 화단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시쳇말로 라인과 백, 학벌과 인맥이 닿아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개척했으니 학연과 인맥이 닿을 길이 없었다.    
아웃사이더. 화가 스스로도 인정하는 화단의 외톨이지만 그는 결코 만만히 볼 화가가 아니다.
그는 지난 30년을 마라토너처럼 전국의 산하를 달리며 사찰과 부락과 산천초목을 화폭에 기록해 왔다.
지난 25년 동안 1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5권의 화문집을 출간했다.
첫 개인전만 관훈미술관에서 자비로 열었고, 15회는 학고재, 금호미술관, 덕원미술관 등의 초대와 한양대 박물관, 탄자니아국립박물관 등 유수한 기관의 주최로 열었다.
그가 처음 발간한 책은 <길에서 쓴 그림일기>였다. 이어 <숲을 그리는 마음> <달이 솟는 산마을>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우리마을 그림 순례> 등 제목만 보아도 우리네 삶의 소담한 정취가 물씬한 생활산수 화첩을 엮어왔다.

 

어머니의 땅, 지리산 진경 순례 전시회

 

꽃소식이 북상하는 요즘, 이호신 화백이 지리산 진경(眞景) 그림들을 서울 도심으로 옮겨왔다.
4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신축한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어머니의 땅, 지리산 진경 순례’ 전시회에 이 화백은 20년 전부터 준비해 최근 4년 동안 집중적으로 완성한 지리산 주제의 생활산수화 89점을 선보였다.  
“대작들과 소품을 합쳐 270점을 준비했는데 89점만 걸었어요. 앞으로 이어질 지리산 탐사의 중간 전시회지요.”

출품작 89점은 원로작가의 회고전 그 이상의 규모다. 미술관 아니면 불가능한 전시가 기획된 것은 지상 5층 지하 4층의 전시 전용 공간을 갖춘 아라아트센터가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이호신의 지리산전은 지하 1층에서 시작되어 지하 4층까지 무려 4개층을 돌아 내려가야 다 감상할 수 있다. 가로 세로 2~3 미터가 넘는 대작들이 큰방마다 내걸렸고 통로에는 현장에서 사생한 밑그림 화첩이 빼곡히 전시되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살펴볼 수 있게 디스플레이 했다.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내가 살고 우리 민족 대대로 살아 온 국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30년 가까이 틈만 나면 배낭에 화첩과 지필묵 챙겨 넣고 전국의 산하를 누볐습니다. 우리네 삶을 품어온 산하와 문화의 유산들을 발로 기록해 보자는 뜻을 세워 지금껏 실천해 오고 있는 셈입니다.”

과묵하면서도 진솔한 이 화가는 평생을 배우는 자세로 살고 있다.
새 박사, 꽃 박사, 나무 박사들을 찾아가 생태계부터 배웠다. 숲과 산을 거쳐 마을을 화폭에 담고 전국의 명찰들을 화필로 기록해 나갔다.
“전국의 산하를 누리다 보니 큰 소나무, 수백 년 묵은 매화, 주름진 민초의 초상까지 그려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어요. 그래서 크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체계를 세워 긴 여정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카메라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진작가 동호인들이 전국을 누비는 세상에서 먹으로 사생하고 붓으로 완성하는 산수화 작업은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 비유할 만큼 고된 발품에 비해 예술적 감흥을 주기가 결코 쉽지 않다.
“철저히 현장 위주의 작업을 고수했습니다. 하나의 사찰도를 그리기 위해 주변의 봉우리를 모두 올라 부감을 잡고 가람의 배치와 창호 기둥에 이르기까지 디테일을 화첩에 스케치 한 후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완성하는 장인들의 수작업을 따랐어요. 그러려면 절에서 자고 먹고 마을에서 주민들과 생활하는 현지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직 마을 인심이 후하지만 사생을 위해 마을에 들어갔다가 사기꾼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고 책장사 취급도 여러 번 당했어요.”
이 화백이 집중해온 마을그림과 사찰그림의 특징은 부감법과 진경이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즐겨 사용한 부감법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대상을 화폭에 담는 기법이다.
진경산수는 관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경을 직접 보고 그리는 화법으로 조선시대 겸재 정선 등에 의해 창출된 독자적인 화픙이다.
“부감법은 제 스스로 솔개가 되어 높이 뜬 창공에서 본 장면들을 화폭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현장을 고집하는 것은 겸재 선생의 진경산수 정신을 따라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 포착한 실경을 보여주자는 의도입니다.”
이 화백이 여기서 그쳤다면 전통의 계승이나 복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법고창신(法鼓創新), 근본을 잃지 않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신념에 따라 매진했다.
지난 수십년 간의 답사와 현장 사생을 통해 그가 독자적으로 연마해 이름붙인 화풍이 ‘생활산수’다.
“생활산수란 역사와 삶과 문화를 하나의 화폭에 담는 것입니다. 전국의 고찰들은 천년 전에 지어졌지만 지금도 중생들이 위안을 얻는 생활공간이잖아요.
고목 한그루, 마을의 돌담과 초가의 곡선, 그곳에 민초들의 숨결이 스며있잖아요. 저는 생활산수를 하면서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남긴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라는 이치를 깨닫곤 합니다. 자연 속에 인간이 있고 삶이 이어져온 것이니까요.“

 

지리산에 심취해 거처까지 옮겨 지리산 진경 순례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이호신 화백의 작품들. 자신만의 화풍으로 지리산의 숨결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호신 화백이 자신만의 화풍으로 무장하고 본격적인 도전에 나선 첫 프로젝트가 지리산 순례다.   
“지리산은 너무 방대해서 어떻게 접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20여년 전부터 지리산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리산으로 향했지만 그림의 방향을 잡지 못하다가 ‘산청에서 띄우는 그림편지’를 잡지에 연재하고 책을 낸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2009년 당시 지리산 국립공원 나공주 소장으로부터 지리산 그림 제작을 권유 받았어요. 차량지원과 숙식 등 편의를 제공받아 지리산 5개 권역(하동, 구례, 남원, 함양, 산청)을 새롭게 돌아보는 그림 순례가 시작된 것이지요.”
지리산에 의지해온 문화의 숨결과 삶을 그리는 방향으로 이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 화백은 서울의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리산 자락(산청 남사예담촌)에 거처를 마련해 수도승처럼 작업에 매달렸다. 지리산 어머니의 땅에 둥지를 튼 것이다.
4개 층에 나눠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지리산 진경 순례는 하동에서 시작 된다. 야생 차밭과 십리 벚꽃의 섬진강 숨결이 녹아 있는 주요 작품으로는 팸플릿 표지에 나오는 ‘지리산 삼산봉에서’(169x272cm), ‘삼신산 쌍계사’(168x270cm) 등을 꼽을 수 있다.
섹션 2는 구례, 산수유 마을에서 그윽한 산사로의 여정이 펼쳐진다. ‘지리산 화엄사’가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피아골의 봄’에는 아련한 전설이 묻어나는 듯하다.
섹션 3은 남원, 판소리와 솔바람이 어우러진 국악의 본향이 화폭에 담겨졌다. 주요작은 ‘지리산 남원 정령치에서’와 ‘뱀사골 계곡’ 등이다.
섹션 4는 함양, 화림계곡의 풍류와 상림의 얼굴들이다. ‘광한루도’ ‘운봉 삼산마을 솔밭의 겨울’ 등 대작들이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섹션 5는 산청. 약초와 매향, 선비정신과 천왕봉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지리산 최고봉을 비오는 날 현장에서 사생해 그렸다는 ‘우중 천왕봉’과 눈 덮인 ‘지리산 천왕봉’ 등 대작 2점이 쌍벽을 이루고 있다.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얼굴이지요. 이 산 아래에서   역사의 바람이 불고 문화의 꽃이 피어났어요. 유난히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산이지요, 온갖 삶을 다 받아주고 아픔을 삭여주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입니다.”      
이 화백은 지리산의 외양뿐 아닐 그 안에 담긴 우리네 정서와 삶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그의 수묵산수가 ‘생활산수’로 불릴 수 있는 것도 인문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이 품어낸 인문사상, 문화생활, 지리환경의 조건을 어떻게 화폭에 심화시키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지리산에 의지해온 우리네 문화와 삶의 숨결을 전해보려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지리산권 문화연구원의 최원석 경상대 교수는 “이호신 화백의 그림은 지리산의 미학을 빚어낸 예술이자 지리산의 생활사를 담은 인문학”이라고 했다.
전시회 평을 쓴 동덕여대 김상철 교수도 “그의 산수를 생활산수로 일컫는 것은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채집하고 해석해 냈기에 정신으로서 문화산수라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배움과 자기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는 작가

 

요즘 미술시장에서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의 인기가 별로 없다고 한다. 화상들의 무관심도 크지만 무엇보다 감동을 줄만한 작품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와 닿는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등은 독창적 화풍과 필력으로 역사에 남는 명작을 남겼다. 그후 청전, 소정, 이당 등 근대 6대가까지만 해도 그 전통이 이어졌고 월전, 운보 등 동양화에 새로은 기운을 불어넣은 화가들이 있었으나 최근 들어 동양화단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화가들이 실력을 연마하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이나 법고창신(法鼓創新)의 뼈를 깎는 노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옛 것을 이으면서 새 것을 창조하려면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역량을 키우지 못하다 보니 궁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호신 화백은 배움과 자기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는 드문 작가다.
서예를 배워 화제(畵題)를 지을 뿐 아니라 산수, 화조(花鳥), 초충(草蟲), 사군자(四君子),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폭넓게 섭렵하고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화풍을 보이고 있다.
이번 출품작들 중 지리산진경과 가람진경 외에도 소재나 기법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이고 있다.
“용유담 같은 작품은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겸재와 단원 등 선인들은 정말 우리 국토를 사랑했어요. 저도 화가의 길에 들어선 이상 그림으로 제 소명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미시적인 생태그림도 그리고, 현대인에게 자연으로 치유할 수 있게 별과 달과 사색이 깃든 그림도 그리고 싶습니다.”

 

이 화백은 현장 위주의 작업을 고수한다. 사찰도를 그릴 때면 주변 봉우리에 올라 부감으로 스케치 한 후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완성하는 장인들의 수작업을 따르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사진 왼쪽), 삼선봉(사진 오른쪽)에 올라 스케치를 하고 있는 이 화백.

 

이 화백의 호는 현석(玄石․검은 돌)이다. 이 호는 작고한 월전 장우성 화백이 직접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생전에 동방예술연구원을 차려 후학을 키운 월전은 정규 미술수업을 받지 않은 이호신을 1기생으로 뽑았고 호를 주는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화단의 아웃사이더를 실력으로 평가해 준 것이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스승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화가들은 무리짓기보다는 좋은 스승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며 자기만의 역량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리산 산청에서 혼자 거처하다 보니 별도 보고 달도 보고 혼자 사색할 시간이 많아요. 앞으로 큰 스케일의 작품 못지않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디테일 하게 그리는 작업도 할 계획입니다.”
이 화백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한지에 먹과 채색으로 그린다. 닥종이, 장지로 불리는 한지는 천년을 견딜 만큼 질이 좋다고 한다. 수묵화지만 먹만 고집하지 않고 채색과 접목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 토양의 물과 우리 장인이 만든 한지에 한국의 문화를 그리는 것이지요. 지금은 옛 풍류와 서정, 묵객의 정신문화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위안이 되고 감동을 주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호신 화백은 이번에 두 권의 화첩형식 화집을 출간했다. 하나가 <지리산 진경>이고 또 하나는 <가람진경>(다빈치 펴냄)이다.
<가람진경>은 제목 그대로 전국의 사찰을 답사해 그린 실경들이다. 1992년 경주 용당산 감은사지로부터 2012년 양산 통도사와 사천 봉명산 다솔사까지 83개 사찰 130점이 각 도별로 수록되어 있다.
이 화집의 서문은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이 써주었다. 그만큼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담한 필묵법으로 주변 경관을 사생하고 사찰 건물들을 섬세한 필치로 현상을 묘사하되 상호 조화와 균형이 계산되고 있었다”고 본 최 실장은 “이 사찰 그림 순례집은 단순한 이 시대 명찰의 진경화보가 아니라 자연과 역사, 건축과 조각, 회화가 한데 어우러져 숨 쉬는 이 시대의 문화 총화(總和)라고 할 수 있겠다”고 평가했다.
지리산은 제주도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추진 중이다. 지리산을 찍는 사진작가들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 화백처럼 지리산을 집중적으로 그린 지리산 화가는 드물다. 따라서 이번 서울에서 선보인 이 화백의 지리산 진경들은 지리산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알리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이 화백의 역량은 지리산의 각종 축제와 행사에 활용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시인과 사진작가와 함께 지리산 순례를 3년 예정으로 지금도 하고 있어요.”
지리산 화가 이호신.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인도를 답사하며 우리 국토에 더욱 애착을 보이고 있다.
화단의 아웃사이더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이 화백이야말로 지나온 시간 못지않게 미래가 기대되는 이 시대 예술인이다.



[인터뷰이 나우] 한국화가 중 ‘진경화법의 교본’이라 일컬어지는 이호신(56) 화백이 지난 4월 '어머니의 땅, 지리산 진경 순례' 전시회를 열었다.

 

경남 산청군 남사리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화백의 이번 전시에는 수묵화로 그려진 지리산의 사계절 절경 100여 점이 선보였다.

 

지리산의 산맥, 봉우리, 폭포줄기 등이 담겨 있으며 200호의 대형 화폭에 웅장하게 숨쉬고 있는 지리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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