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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1/21 00:00:00  조현진




행복한 독립군, 배우 금보라
걱정마라, 쫄지마라, 즐겨라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맥도널드 라고요?” 다시 물었다. “네.” “그런 곳에서 인터뷰하시기 괜찮으시겠어요?” “뭐 어때요? 거기가 따듯하고 좋아요. 주차하기도 편하고.” 그녀의 말에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서 금보라와 <인터뷰365>의 만남은 청담동에 있는 ‘맥도널드’ 2층에서 이루어졌다. 사람이 붐비는 오후 4시쯤이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금보라는 ‘인터뷰 스트레스’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만나자니까 나오긴 했는데 왜 날 인터뷰 하려는 건가? 난 인터뷰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왜?

방송은 내가 떠드는 대로 나가니까 상관없지만 글은 타인의 펜으로 쓰니 내 생각과 다르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다른 글이 나가는 거 좋아할 사람이 어딨나? 그래서 난 활자를 싫어한다. 온라인은 더 싫다. 신문이야 날짜 지나면 없어지지만, 인터넷에 오른 건 지워지지도 않는다.


하하. 뭔가 기사 때문에 아픔이 있나보다.

인터넷에 보니까 내 젊을 때의 루머까지 아직 있더라. 그게 뭔줄 아나? 옛날 80년대에 어떤 주간지가 흥미꺼리 기사로 만들어 쓴 거다. 그때 내가 분통이 터져서 언론중재위원회 뛰어다니고 그러면서 사과와 정정기사 까지 받아낸 건데 그런게 아직 인터넷에 떠 있으니 환장하지. 그니까 인터넷 이런 거 난 싫다. 조용히 좀 살게 해주라. 이 나이에 또 그런 스트레스 받음 안되잖나? 그런데 왜 만나자고 한건가? 나한테 원하는게 뭔가?


그냥 이런 이야기들 하려고 만난거다. 할 말 다하고 사는 것 처럼 보이며, 누구보다 당당한 당신 모습의 실제는 뭘까가 궁금했고. <인터뷰365>는 원칙적으로는 사건으로 인터뷰 하지 않는다. 뭔가의 광고나 홍보를 위한 건 다른 매체도 많이 하니까. 우린 늘 사람이 궁금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바른 내가 보여 질 수 있을까? 난 프로고 돈 받으니까 남들 볼 때 할 말 다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이 배우란 직업이 남과 차별되어야 되는 직업 아닌가? 그러니까 할 말 못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도 있고. 나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는거지.



예상대로 금보라는 만만치 않은 인터뷰이다. 일반적인 여배우에게서 보이는 가식이나 뒤로 빼는 모습이 그녀에겐 없다. 이건 남과 그냥 차별되어야 한다는 수준 정도가 아니다. ‘나 처럼’이란 말에 주목하기로 했다. 과연 그녀가 말한 ‘나처럼 = 금보라 처럼’이란 뭘까?



많이 바쁜가 요즘?

일은 뭐 규칙적이니까 별 문제 아닌데 개인적으로 바쁜 시기다. 필라델피아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둘째 아들이 방학이라 나와서 그 녀석이랑 시간을 써야 하니까. 오늘 아침에도 촬영 끝나고 같이 쇼핑하고 왔다. 어젯밤엔 아는 분이 한 분 돌아가셔서 영안실 다녀왔고. 나 좀 피곤해 보이지?

영안실에 가면 늘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건가를 알게 된다. 요즘은 죽으면 봉분을 하는 것도 아니라 ‘작은 단지’ 안으로 가는 거 아닌가? 겨우 그건데 왜 미워하고 고민하고 싸우고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지. 삶이란 게 뭔가? TV에서 왕년의 정치인들 인터뷰를 봤는데 다 인생무상이더라....결국 다 마지막에 감사해 하는 건 대통령도, 국민도 아니고 ‘마누라’ 더라고. 그 사람들을 보며 인생을 다시 생각한다. 그렇게 사는 거다. 오늘 즐거우면 되지., 내일 즐거움이 없을까 까지 걱정하면 어쩌자는 거야.


맞다. 문제는 보통사람들은 그런 중요한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거지. 그날  그날의 소소한 행복을 무시한 대가를 인생은 언젠가 반드시 돌려준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 행복은 그때 그때, 그날 그날 다른거 아닌가? 언제나 작은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큰 것이 행복하게 하는가? 그러니까 오늘이 제일 중요한 거다.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한다가 내 좌우명이다. 그렇게 오늘의 것을 오늘 다 쓰는 게 행복한 거겠지.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쌓아두면 안 된다. 그렇게 발산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친구도 많은가?

아니. 난 원래 독립군이다. 하지만 친구라면야 요즘은 남편이 친구지. 같이 운동하고 집 앞의 산책로에서 산책하고 그런다.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너무 평범하고 선비같은 사람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하는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난 잘 체감하지 못하는데 일반인들이 우리 같은 배우를 보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단다. 그런가? 아무튼 그렇다. 사업가이고.


부자인가?

부자라는 것이 상대적이니까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런지 알 수 없지만 남편도 나도 부자라고 요즘은 생각한다. 실리콘벨리에서 수천만불 씩 벌며 사는 사람들 중에 자기를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마음이 가난한건 말할 나위도 없고. 돈? 마누라 필요할 때 주고, 아이들 학비주고 살면 잘 버는 거 아닌가?


다행이다. 첫 결혼에선 힘들었었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사실 난 너무 어릴 때 데뷔해서 볼꼴 못 볼꼴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처음 결혼하면서 절대로 연예인으론 다시 안 돌아오겠다고 결심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혼자 몸이면 상관없지만, 내 자식들은 키워야 하니까... 이혼은 했지만 엄마로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땐 참 초조해지더라. 그러니까 다시 일한 거다. 전 남편에게 위자료 10원도 청구해본 적 없다.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다. 그때가 행복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생긴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젠 더 낳고 싶어도 못 낳으니까. 힘들었어도 그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생긴 거고.



이때 그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살갑게 통화할 줄 알았더니 마치 <대장금>에서 장금이를 사랑하면서도 쏘아 부치는 한 나주댁(羅州宅)의 모습 그대로다.



아이들한테 무서운 엄마로 평가받을 것 같다.

맞다. 아이들이 날 싫어한다. (웃음) 그래도 별 수 있어? 아직은 엄마가 벌어서 먹이고 공부시키는 보호잔데. 그리고 평가? 아직 지들이 엄마를 평가할 나이가 아니다.


확실히 강하다.

내가 못할 말이 뭐 있나? 내가 말한다고 자식이건 시청자들이건 그대로 따르나? 그걸 아니까 하고 싶은 말 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건 뭘 반드시 설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니까.


그런데도 안티(Anti)가 별로 없다.

진짜 없나? 난 인터넷을 모르니까 안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별 관심도 없고. 젊었을 땐 안티가 뭔지도 몰랐고 그때는 그냥 좋다고 쫓아다니고 팬레터 보내는 사람들만 있었지. 나랑 인터뷰 재미없지?



거침없다. 빼는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은대로 이야기를 한다. 재미가 없다니. 설마. 이런 당당한 인터뷰이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건데. 사실 금보라라는 배우를 말할 때는 2가지 단계로 나눌 수 밖에 없다. 20대에 영화와 방송을 종횡무진 누빈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 말이다. 사실 지금 세대들은 금보라의 20대가 어느 정도 였는지를 짐작하기 어려울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20대의 그녀는 최고였고, 스타로써 정점에 섰던 배우다.






일찍 데뷔 한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 내가 78년 영화진흥공사 공채배우 1기다. 그런데 이 1기가 끝이었다. 그 다음엔 영화진흥공사에서 배우를 뽑지 않았으니까. 강석우씨랑 나랑 같이 뽑혔다.


그때가 그럼 안양예고 다닐땐가?

고1때다.


와. 정말 빠르군. 그럼 그때부터 바로 활동을 시작한건가?

아니다. 고1때 뽑혔는데, 한 2년간은 아무것도 못했고, 3학년 때인 80년 <물보라>로 데뷔했다.


김수용 감독의 영화였지. 그때부터 금보라라는 예명이 생긴거고.

맞다. 손미자가 금보라가 된 거지. 하용수씨하고 같이 주연했다.



<물보라>는 단번에 금보라를 스타로 만든다. 대종상 신인상을 그녀에게 안겨줬을뿐 아니라 당대의 명감독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원세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김수용의 <도시로 간 처녀>같은 한국영화사에 남는 작품에 그녀의 이름이 오른다.



분명히 이전의 여배우들과는 다른 캐릭터가 당신에겐 있었다. 그것이 그 명감독들이 당신을 사랑한 이유 일 것 같은데.

글쎄. 그런 작품들을 다시 평가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흥행은 다 안 된 작품이다. 그땐 <애마부인>같은 에로영화만 흥행이 될 때다. 그런 장르를 따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감독님을 만난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사실 난 생긴거나 분위기가 에로랑은 거리가 머니까 늘 그 분들이 생각하는 사회 참여적 캐릭터나 미친 여자 같은 역할을 맡은 거다. 어쩌면 난 한국 최초의 성격파 여 주인공 일런지도.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배우로써는 저평가 된 건지도 모른다. 억울하지 않나?

그런 걸로 억울하면 세상 어떻게 사냐? 나를 재평가 해주는 것을 감사한 일이지만 그땐 어쨌든 안 된 거 아니었나? 어릴 땐 흥행 안 되면 속도 상하고 약도 오르고 그랬지만, 그런 거 생각하면서 어떻게 일을 하나? 그냥 난 내 길을 가는 것 뿐이다. 어떤 작품이라도, 단순한 오락프로라도 내 에너지를 다 쓰려고 노력한다.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받는 만큼 최선을 다 하는 거다. 연기가 내겐 직장생활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에겐 모두 자신의 목표나, 이루고 싶은 지향점이 있는 거 아닌가? 특히나 당신은 20살도 안됐을 때, 그것도 영화진흥공사 배우공모를 통해 당당히 인정받으며 배우가 된 경우인데.

나는 그런 생각과는 좀 다르다. 단언컨대 난 목표 같은 거 없었다. 지금이랑 그때 생각이 크게 바뀐 것도 없다. 어쩌면 내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무슨 일에 집착한다거나, 크게 출세를 해야 한다거나  그러기 위해 어떤 라인에 서야지...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 난 그냥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안한 것 뿐 이다. 그러니까 사실 어릴 때부터 꼴통소리를 많이 들었고.


하하. 꼴통?

정말이다. 난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출연정지도 많이 당했다. 타협도 모른다.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니까. 그 분들 볼 때는 꼴 뵈기 싫은 짓도 많이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배우가 돼서 세상을 보기 시작하니까 비뚤어진 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일들도 너무 많았고. 반복 적이만 나에게 일은 그저 노동 일 뿐이었다. 잘 해서 대가를 받기 위한 노력이지. 요행 피우지 않고 내 능력을 팔아서 내 돈 벌면 되는건데 그 외의 일들로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참을 수 없었던 거지.


그래도, 그건 스타에겐 어쩔 수 없는 짐 같은 거 아닐까?

너무 어릴 때 데뷔했으니까. 그리고 난 기자들에게 너무 상처받았다. 하도 이상한 기사들을 만들어 내는데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기자들한테 ‘쓰기만 해봐. 가만 놔두나!’ 이랬는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무 살 때부터 내가 언론중재위원회 뛰어 다닌 거다. 주간지, 잡지 같은데서 결국 사과문도 받아냈지만 그런데도 아무도 그 사실은 알려고 하지 않고 스캔들만 말하니까 힘이 들었다. ‘아! 이게 내 힘으로 안 되는 거구나.’를 안거다. 아주 절망스러웠지. 세상이 악한 것만 기억하니까. 그러다가 알게 됐지. ‘억울하다고 느껴봤자... 황폐해 지는 건 나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그러니까 확 결혼해 버린 거다. 배우 안 하려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럼 어느 시대가 배우로 살기 어려울까? 당신 젊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언제나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닐까?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상황 속에서 즐기고 있는 건가, 아니면 고통 받고 있는 건가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겠지. 분명히 어릴 땐 고통 받았으니까. 그리고 내 경우엔 내가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든 거니까 하기 싫었던 거고. 하지만 그런 고통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감수하려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런 고민속의 후배들을 많이 볼 텐데. 좋은 조언자가 되겠다.

그렇지 않다. 그 친구들이 나보다 다 똑똑한데 뭐. 요즘 바보 같은 애들 없다. 괜히 조언합네 하고 귀찮게 물어보면 짜증 날 것 아닌가? 나는 살갑게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라 차갑다는 소리 많이 듣는 사람이기도 하고. 조언이 아니라 걔들 보면 부럽지. 왜 저 나이 때 난 누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고. 그냥 부럽기만 해. 젊음이 예쁜 거니까.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금보라에게 젊은 시절의 연예계는 고통스러운 기억 뿐이었다. 그 시절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인기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에 도통 관심이 없었으니 그녀를 둘러싼 소문이 반가울리 없었을 것이다. 금보라는 아직도 자장면, 설렁탕, 김밥을 안 먹는다고 말했다. 어릴 때 촬영장에서 하도 그것만 먹어서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그저 그녀는 연기가 일이기에 한 것이고, 그 결과로 차가 생기고, 집이 생기는 모습을 보고 - 내가 일을 못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고 한다. 이혼 후, 금보라는 인기가 아닌 바로 이 ‘일’이 필요했다. 자기가 잘 하는 일. 인기나 명예가 아닌 먹고 살아야 하기에 다시 그녀는 방송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쩌면 시간이 그녀에게 고통과 잘 싸우는 법을 학습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당신은 그런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온 것이 보인다.

난 현실적이다. 없는데 가식적으로 비싼데 가서 뭐 먹어본 적도 없다. 없으면 라면 먹고 있으면 고기 먹는다. 그래서인지 난 잘 분배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남들과 똑같은 건 죽어도 싫고.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만들어 진 것 같다. 뒤로 빼는 성격 아니고, 문제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푼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풀려고 한다. 난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써, 마릴린 먼로가 될 수도 없으며, 역사에 남을 만한 훌륭한 연예인이 될 만한 재능이나 노력이 부족한 것을 잘 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낼 능력 있는 타입도 아니다. 그냥 나를 보이고, 내 안에 있는 것을 굴리면서 산다는 마음으로 사는 거다. 가능한 아무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서 말이다. 난 봉사단체가서 일할 재주도 없고. 우리 애들한테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애들 도운 다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을 보면서 자꾸 드라마의 캐릭터처럼 생각하고  스스로도 그 캐릭터에 메여 살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제일 바보스러운 거다. 난 드라마의 캐릭터가 아니다. 난 나다. 어릴 때부터 타협이 안 되던 것이 이제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가 된 거다. 물론 나이 더 먹으면 또 바뀌겠지만 스무 살의 모습도 나고 지금도 나 인거다.


그럼 이젠 배우가 되어서 좋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겠군.

당연히. 내가 배우가 아니라면 어디 갔을 때 날 알아보고 누가 밥 한끼 주겠나? 다들 TV에서 보고 반가워하고 친근감을 느끼니까 이젠 고맙지. 요즘은 이만큼 좋은 직업이 어딨나 하는 생각도 한다. 남 괴롭히는 일도 아니고, 내 능력을 발휘하면  대가가 잘 나오는데. 내가 꼭대기까지 안 가본 것도 아니고, 갔다가 내려온 사람이니까. 이제 난 그 꼭대기가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평지를 접하면서 거기에 내 자리, 내 집을 만드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난 이게 좋다. 그래서 난 지금 제일 행복하다. 개런티도 그렇다. 분당으로 따져봐야 한다니까. 50분 드라마에 주연배우는 45분 나오고, 난 2분 나오는 걸로 따져봐라. 내가 훨씬 많이 받는 거다.


 
그 말 재밌다... 하하.

난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도 많고, 결혼도 두 번이나 했고(웃음) 이젠 행복 뒤에 감사가 붙는다. 게다가 이제 나 같은 스타일을 나 말고 없지 않나? 행복한 거다. 일찍 데뷔해서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이제 돌이켜 보면 하루  아침에가 아니라, 투쟁으로 여기까지 온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래서 얼마 전에 신랑에게 죽어도 좋다고 말했다. 물론 본심은 이 상황에서 더 오래 살면서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거지만.



10대 소녀에게 느닷없어 주어진 배우라는 무거운 짐, 그 무게를 솔직하게 힘들고 아파하던 20대, 그리고 이제 그 무게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된 나이에 선 배우 금보라. 그녀를 만나며 ‘여배우의 일생’을 생각한다. 여자의 일생, 배우의 일생 모두 만만치 않은 무게인데 여배우의 일생은 오죽할까? 하지만 금보라는 도망치지 않았다. 멀리 돌아가지도 않았다. 순간과 투쟁했고 그 순간과 싸우면서 오늘까지 왔다. 그리고 결국 그 무게에게서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그녀 말대로 오랫동안 이 즐거움을 누리면 좋겠다. 강한 여자 금보라. 박수 받을 만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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