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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1/26 00:00:00  김우성




[연극 살인놀이] 내재된 <미궁>에 관한 근원적 물음
벌거벗겨진 우리들의 슬픈 모습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1975년 작곡가 황병기에 의해 발표된 ‘미궁’이라는 곡이 있다. 쇳소리에 가까운 기괴한 연주 위에 울음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일상대화들이 감정이 배제된 채 덧입혀진 그 곡을 듣고 있자면 환한 대낮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어질 정도이다. 군정시절 금지곡으로 묶여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이 곡이 한참이 지나서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누구라도 공포를 느낄만한 곡의 분위기 때문인지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와 함께 인터넷을 통해 퍼진 것이다. 얼마 전 한 언론에서 작곡자인 이화여대 황병기 명예교수가 ‘미궁’을 둘러싼 세인들의 궁금증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우리가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면 놀라듯이 인간은 문화 이전의 인간을 보면 큰 충격을 받는다. 문화적 동물인 인간은 문화를 한 꺼풀만 벗겨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하며 <미궁>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소리를 표현함으로써 인간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려 했다고 한다.



갑자기 왜 ‘미궁’이냐고? 바로 미궁에서 느껴지던 문화 이전의 인간,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이 연극 <살인놀이>에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살인놀이의 배경은 페스트가 절정에 이르던 중세 유럽의 한 도시이다. 페스트는 40도를 넘나드는 고열과 피하출혈로 인해 얼굴이 검은빛으로 변한다하여 흑사병(Black death)이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유럽 전체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연극 <살인놀이>에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자연재해나 다름없던 페스트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을 무대로 끌어내고 있다.


막이 열리고 사방에서 등장했다가 분주히 사라지는 그들은 만담에 가까운 수다를 나누며 관객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문득문득 검은 옷을 두른 사자가 잔상처럼 스쳐 가는가 싶더니 곧이어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페스트)가 마을에 엄습한다. 첫 희생자가 발생한 후 그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전염되던 병의 특성상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감염자가 사는 집은 군인들의 철통같은 경계 속에 고립이 된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방제에 여념이 없지만 음식에도 살충제를 뿌려대는 그들 역시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다. 정치가들은 원인 모를 대재앙의 해결책을 두고 의견이 상충하며 각자 군중들을 선동해간다. 의사들은 난상토론에서 온갖 이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결국 그들도 한명씩 쓰려져간다.



연극 <살인놀이>는 거스를 수 없는 진리 앞에 인간이 얼마만큼 나약해 지는지, 감당할 수 없는 공포 앞에 어떻게 사악해 지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죽음을 몰고 온 사자를 마을을 지켜주기 위한 수도사라고 믿으며 오로지 신을 찾는다. 또한 위정자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이제껏 속아왔음에도 또 다시 광적으로 기뻐 날뛴다. 생필품이 바닥난 사람들은 약탈을 하고 배가 고픈 사람들은 시체에까지 눈독을 들인다. 죽음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점점 그렇게 죽음을 즐기게 된다.


무서운 것은, 그 광기어린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집중해야 할 장면에서도 특별한 하이라이트 없이 객석까지 밝게 비추던 조명은 관객들을 자연스레 그들과 합류시킨다. 극중 페스트가 덮친 두 가정의 모습이 분할된 무대로 보여 지는데 같은 대사를 동시에 내뱉는 두 가정의 모습은 공포 앞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 군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연극 <살인놀이>를 관람하러 가면서 행여 게임처럼 풀려가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이야기 전개는 무척 진지하다. 연기도 진지하다. 커튼콜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진지함에 부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필수다. 2월 17일까지. 대학로극장. 문의 (02)764.6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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