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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2/05 00:00:00  소혁조




건반위의 '사자왕', 박하우스
소혁조의 인터미션


 



[인터뷰365 소혁조] 일본 순정만화의 대표주자인 이케다 리요코(池田 理代子)의 걸작 올훼이스의 창. 아마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이 작가의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함께 올훼이스의 창을 읽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국내 순정만화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감을 주며 순정만화 작가로서의 꿈을 꾸게 하였던 작품이니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만화엔 20세기 초반 전 유럽에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실존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 만화에서의 캐릭터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설정이 되어있다. 이처럼 만화에까지 등장할 정도면 과연 빌헬름 박하우스란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카리스마로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 건반의 사자왕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독일산 사자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독일 피아니즘의 자존심



20세기를 살았던 수많은 피아노의 명인들 중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그들을 국적별로 한 번 구분해 본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고 이 글을 쓰는 나의 의견만 반영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러시아: 호로비츠, 리히터, 길렐스, 아쉬케나지, 유디나, 니콜라예바, 가브릴로프, 포고렐리치, 부닌, 키신, 베레초프스키



폴란드: 슈나벨, 루빈스타인, 고도브스키, 치머만



프랑스: 코르토, 프랑소와, 기제킹



이탈리아: 베네딧트 미켈란젤리, 폴리니



독일: 박하우스, 켐프, 피셔



대략 이 정도이다. 여기에 더 많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 20세기 피아니스트의 주도권은 러시아가 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의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활개치고 다녔던 그 시절. 음악예술의 본령인 독일에선 과연 어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있어 독일의 자존심을 지켰는지 의문이 생길법하다.


다른 나라도 아닌 바흐, 베토벤, 바그너, 슈만, 브람스, 스트라우스를 배출한 음악예술의 최고봉인 독일. 만일 독일 출신이 아닌 다른 나라의 피아니스트가 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연주하여 세계적 호평을 받았을 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중국인이 판소리 춘향가를 너무 잘 불러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계공연을 다닌다면? 우리 문화가 널리 알려진다는 사실에 그저 넋 놓고 웃으며 좋아할 일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자국출신 작곡가의 연주를 잘 연주하는 연주자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야말로 다른 작곡가들의 곡보다 베토벤과 브람스를 주로 연주하며 독일 음악의 위대함을 널리 알렸고 20세기 독일 피아니즘의 자존심을 세운 몇 안 되는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이었다.



건반의 사자왕의 등장



박하우스는 정통 독일인의 혈통을 물려받았고 정통 독일식의 교육을 받았다. 무려 85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노익장의 대명사였고 사망하기 일주일 전까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가졌던 참으로 멋있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다.



박하우스는 1884년 라이프치히 태생이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리스트의 제자로 유명한 달베르를 사사하였다. 박하우스는 그의 스승인 달베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기교를 중시하는 것 보다는 예술적인 통찰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스케일이 큰 연주를 구사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에 런던에서 데뷔한 그는 이때부터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1905년엔 루빈스타인 콩쿨에서 우승하였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 남미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연주여행을 다니며 그 명성을 확고히 하였다. 참고로 1905년 루빈스타인 콩쿨에선 우승자인 박하우스 외에 또 하나의 유명한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작곡가인 벨라 바르톡이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20세기 최고의 천재 작곡가 중의 하나인 바르톡이 바로 박하우스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바르톡 역시 박하우스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첫 데뷔는 1912년 뉴욕에서였다. 이때의 레퍼토리는 그가 평생동안 가장 많이 연주한 곡 중의 하나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였다. 뉴욕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후 그의 명성은 다시금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동구권 출신의 피아니스트들이 살인적인 기교를 중심으로 연주를 한 반면 박하우스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교에 더해 예술적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거장다운 연주를 구사하였다.



그 나이에 참 대단한 사람



박하우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생동안 끊임없는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노익장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음반을 발매한 레코딩 양도 그렇고 사망하기 일주일 전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려 4000회에 걸친 연주회를 열었다. 박하우스 본인이 했던 이야기가 있다. 80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고 빈 필과의 공연이 끝나고 청중과 악단 모두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을 때 했던 말이다.



"난 지금 내 인생의 출발점에 다시 돌아왔다. 12세 때 난 처음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그때 사람들은 내게 그 나이에 참 대단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가 이처럼 끊이지 않은 정력을 발산하며 죽기 직전까지도 연주회를 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물론 음악에 대한 사랑,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한 끝없는 자기 성찰과 연습이었다. 그는 연주 외엔 달리 관심을 두는 일도 없었고 오로지 피아노에만 정열을 쏟아 부었다. 교육자로도 잠깐 활동하긴 하였지만 그가 키워낸 제자도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연주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1차대전 때엔 군복무를 하였고 2차 대전 이후엔 스위스로 망명하여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 외엔 그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굴곡 많았던 그 시절을 살았던 예술가,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고 있던 독일의 상징적인 예술가로선 참 이례적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 수 있다면 낙천적인 사고방식과 유머 감각을 들 수 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그의 나이 83세에 빈 필을 이끌던 칼 뵘과 함께 생애 마지막 협주곡 녹음을 하게 된다. 데카(Decca)에서 나온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의 커플링 음반인데 이 곡을 녹음하면서 박하우스는 뵘을 가리키며 이런 이야길 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젊은 친구가 브람스를 꽤 잘 연주한다."



젊은 친구. 그때 뵘의 나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려 73이었다. 이 말을 듣고 당시 녹음에 참가했던 빈 필의 단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박하우스는 그 나이에 대단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무려 85세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던 그는 그의 마지막까지도 그답게 마무리하게 된다.


마지막 연주회



12세에 데뷔하여 85세까지 무려 4000여 회가 넘는 연주여행을 다녔고 정통 독일인으로 베토벤, 브람스를 가장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던 박하우스. 젊은 시절엔 엄청난 힘과 기교를 바탕으로 건반의 사자왕이란 별명으로 세상을 경악케 하였으나 음악적 완숙미가 더해진 말년엔 서정적이고 빈틈없는 연주로 탈바꿈하는데 훌륭히 성공하였다.



4000여 회라는 셀 수 없이 많은 연주회의 마지막 종점은 그의 나이 85세 때였다. 알프스의 Ossiach에서 열린 이 연주회에서 박하우스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환상곡, 슈만의 환상 소품집을 프로그램으로 준비하여 청중들 앞에서 연주하게 된다.



아무리 젊은 시절엔 건반의 사자왕으로 군림했고 평생토록 노익장을 과시했던 거장인 그였지만 결국 마지막은 찾아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8번을 연주하던 중 갑작스런 심장발작을 일으켜 연주를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고 그 대신 슈만의 환상 소품집과 슈베르트의 환상곡을 치던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급히 후송된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오스트리아 빌라흐의 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게 된다.


위에 소개한 음반에선 박하우스가 공연 도중 청중들을 향해 힘들다며 잠깐 쉬었다가 하겠다는 멘트와 청중들이 격려의 박수를 치는 소리까지 모두 녹음이 되어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의 멘트도 모두 녹음되어 있으니 박하우스의 팬이라면 꼭 하나 소장할 가치가 있다.



평생동안 피아노를 사랑하며 피아노에 파묻혀 살았던 사람. 그렇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85세의 나이까지도, 그것도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도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던 그는 틀림없이 복 받은 사람이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삶의 전형, 지표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가 박하우스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그는 모두에게 존경 받는 삶을 살았던 진정한 예술인,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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