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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8/02 12:00:19  김두호




프라하의 공인 관광안내사 김주영
“오늘도 내일도 걷는 게 나의 인생”


 

【인터뷰365 김두호】김주영(42)씨는 과거 TV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통해 고도(古都)의 아름다운 풍광이 소개된 유서 깊은 관광도시 체코의 프라하에서 15년째 살면서 전문 관광안내사로 활동하는 프라하의 여인이다. 7년 넘도록 KBS 통신원으로 동유럽 지역의 생활정보를 전해주는가 하면, 러시아어 영어 체코어에 능통해 직업 통역사로도 활동하는 열정적인 다방면의 커리어 우먼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의 재외동포가 175개국 700여만 명 시대로 접어든 지금은 세계 어느 국가를 방문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안정된 활동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김주영 씨는 러시아와 캐나다 유학생활을 거쳐 체코로 이주해 국가 면허가 필요한 프라하 관광안내사로 입지를 구축한 이 시대의 씩씩한 젊은 여성인 점에서 삶이 한층 돋보인다.

13세기부터 석조 건축물이 들어서고 길이 조성된 프라하의 도로망은 대부분 마차가 다니던 옛 그대로의 골목들로 연결되어 세계에서 운집한 도보 관광객들이 거리마다 북적거린다. 프라하를 찾는 연간 3천여만명(1억명으로도 추산) 관광객 중에 한국인도 10만 명에 이른다.
주로 한국 관광객을 안내하는 김주영 씨의 자기소개 첫마디는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어야 하는 도보 관광지 프라하의 여인”이었다.


88올림픽이 한국 알려


프라하에 사는 한국동포는 얼마나 되나?
1천7백여 명 정도로 알고 있다. 초기에는 기업체의 주재원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유학생이나 관광을 왔다가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성공한 동포도 있겠다.
체코는 유리공예를 하는 직업 아티스트들이 선망의 전통예술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왕궁이나 성당을 장식한 체코의 크리스탈 공예는 역사가 깊다. 우리 한국인 중에 김송미 씨가 체코에서 유리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시회도 자주 열어 유명하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서울서 출생해 아버지의 고향인 서울에서 성장했다. 지금은 부모님과 가족이 동두천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전공분야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1992년 러시아 노부고르드 국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러시아에서 5년 후 다시 캐나다로 옮겨 영어를 공부하고 15년 전 체코로 왔다.


결혼은?
남편이 있지만 아직 아이는 없다. 음악(지휘자)을 전공하는 남편(김창수 씨)은 러시아 유학 때 만나 결혼했다. 경희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먼저 러시아에 와 있던 남편을 만나면서 내 인생도 안정을 얻게 됐다. 말 그대로 꿈만 가지고 있을 뿐 의지할 곳 없는 유학생인 나에게 남편은 인생의 나침판이면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캐나다에도 함께 가 있었다. 프라하도 남편이 먼저 들어와 주거지를 마련해 두면서 안심하고 합류할 수 있었다. 음악인이지만 신심(개신교)이 깊다. 청년기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신앙생활을 해 아내에게도 주일학교 선생님같이 편안하게 해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기고 싶은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해 살고 있다.


부군은 프라하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가?
한동안 음악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사업가로 전업했다. 체코 관광지에서 펜션사업을 하고 있다.


프라하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을 인솔해 문화유적지 등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김주영씨.

 

아내에게 그처럼 좋은 남편으로 호감을 받고 사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행복해 보인다. 관광가이드는 좋아서 선택한 직업인가?
체코에 와서 처음에는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체코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덕분에 기네스북이 세계에서 가장 발음이 어렵다고 한 체코 언어를 원어민에게 어렵지 않게 배우는 기회가 됐다.
그러다가 관광안내사가 되기 위해 체코 국가기관의 연수과정을 이수하고 시험을 거쳐 자격을 획득했다. 이곳은 예술문화와 역사 등 관광안내와 해설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응시 자격을 준다. 그런데 관광안내를 시작한지 3년 만에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 비엔나도 길이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안내를 해도 되지만 프라하는 버스를 세워 두고 하루 20km 이상을 걷는 중노동을 해야 한다. 안내자는 연일 강행군이다.
새로 취직을 한 곳이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지사였다. 그곳은 편하고 좋은 직장이지만 사무실에 앉아서만 업무를 보게 되니 따분하고 답답한 게 더 힘들었다.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프라하 거리로 뛰쳐나갔다. 아, 이게 내 천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하하.


역사와 민족성 한국과 통해


프라하에 한국인 관광 안내사가 몇 사람이나 되는가?
협회에 등록된 사람이 25명이다. 관광 안내사는 관광업체에 소속이 되어 있지만 관광객 일정을 챙기면서 보통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자유롭게 활동하는 직업이다.


체코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지도나 지식은 어느 정도인가?
체코인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6.25 한국전쟁과 구소련연방 때 같은 공산체제였던 북한이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크게 부각되었고 1990년대 한국과 수교 후 우리 대기업들이 진출해 지금은 한국 기업의 광고판이 도처에 나부끼고 있다. 한국 관광객도 갈수록 늘어나 상인들 사회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싸요”는 기본으로 알고 있다. 어떤 체코 상인은 한국의 사투리까지 구사한다.
그런데 문화예술 부문의 한류(韓流)는 아직도 <강남스타일>의 싸이 정도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인천공항까지 11시간 걸리지만 KAL(대한항공)과 KAL이 대주주인 체코항공의 직항노선이 등장해 서울을 오가기가 아주 편리해졌다.


동구권에서 구소련연방 체제에 반발한 프라하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화 운동을 상징해온 것이 ‘프라하의 봄’이다. 지식인들의 파워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정신이 강한 민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 프라하 시민으로 살면서 느낀 체코 사람들은 어떤 특색의 민족인가?
체코는 15세기 중엽부터 수백 년 간 다른 나라 왕조의 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차대전 후 잠깐 독립의 기회가 왔지만 2차대전 때 다시 독일, 이어서 구소련연방 체제에 들어갔다가 개혁물결을 타고 사회주의 체제를 밀어내고 시민혁명으로 현재의 민주정부를 세웠다. 또 슬로바키아와 분리 되는 등 수난과 굴곡의 역사를 쉼 없이 겪어온 민족이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과 연대감이 강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 침착하고 인내심도 많고 순박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시골사람들은 정말 인정이 많고 순진하다. 그리고 체코인들은 우리 인사로 ‘안녕하세요?’와 같은 ‘도브리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학구적이며 완벽주의자가 많다. 체코 학생 사회에 ‘왕따’ 같은 게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차를 탈 때 자리를 양보하는 등 경노사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점은 우리나라 예절문화와 비슷해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면 체코는 ‘서방예의지국’으로 부를 수 있다. 또 다른 민족을 대하는 것도 호의적이어서 이곳에 살며 차별대우를 받은 기억이 없다.


프라하를 유럽 중세기의 건축박물관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유리공예와 조각예술의 전시장 같은 왕궁 성당 등 유적지가 많아 영화 촬영을 위해 세계의 영화인들이 모여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프라하에서 현지 촬영으로 방영하면서 아름다운 도시의 풍물이 처음으로 한국인들에게 많이 소개되었다. 당시 로케이션 때 남긴 일화가 있는가?
많은 프라하 한국교민들이 그 드라마를 촬영할 때 단역으로 출연했다. 나도 카메라 앞에 서지는 않았지만 코디네이터의 몫을 해냈다. 평소에도 한국에서 온 매체들의 화보 촬영이나 광고 제작 작업에 수시로 참여하고 있다. 체코는 영화산업도 유럽권에서 작품 수준이 높은 국가로 꼽힌다.


하루 20km를 걷는 강행군이지만 김씨는 관광안내사를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해외 도전, 홀로서기 정신 필요해


모차르트의 음악과 생애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도 프라하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초연한 스타보브스케 디바들로극장이 프라하의 관광 주요 명소로 되어있다. <아마데우스>의 촬영 장소가 된 뒤 관광코스로 인기가 더 상승했다.


매일 한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을 안내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나 보람을 느낀 일들을 얘기해 달라.
한국인이라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사람들이다. 언젠가 언니뻘 되는 분이 나를 만나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나에게 꼭 전해 달라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해왔다. 웃어넘길 말이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부탁받았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진 건 직업생활 중 체험한 내 인생의 큰 사건이었다. 나는 그분을 처음 만났지만 내 마음 속의 고뇌들이 모두 그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도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나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가끔 강연활동도 하고 우리 교민들의 고민을 함께 해소하는 모임과 새로운 생활 설계의 인생 컨설턴트로도 힘을 보태고 있다. 얼마 전에는 탈북자와 관련된 북한 수용소 그림 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었는데 KBS 통신원 자격이면서 방송 통역으로 참여한 것이 보람 있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 서울 다녀올 시간도 없겠다.
시간 내기가 갈수록 힘들다. 그래도 시댁과 친가의 부모님과 가족들이 계셔서 수시로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이제 프라하의 볼 만한 문화유산을 몇 가지만 소개해 달라.
프라하는 199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됐다. 신구 시가지의 유적 문화재를 대충 설명해도 몇 시간이 걸린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민주시민 운동의 역사를 상징하고 희생자의 기념물이 서 있는 프라하의 중심가 바츨라프 광장,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박물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던 시민회관, 구시가를 드나드는 13개 탑문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화약탑, 프라하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구시청사와 그 한쪽 벽에 있는 천문시계, 대통령 공관으로 바뀐 프라하 성, 고딕양식의 구시가 광장의 틴성당과 600년에 걸쳐 축조됐다는 성 비투스 성당 등 수많은 궁전과 박물관 성당 등이 즐비하다. 그중 1490년에 만들어져 숱한 전설을 안고 전래된 천문시계는 프라하의 명물 중의 명물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해외로 떠나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다. 여행이 아니라 당신처럼 좋아하는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새로운 꿈을 펴고 계획을 실천하려면 우선 초기 정착과정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의욕과 꿈만 가지고 외국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체험적 인생 가이드를 부탁한다.
유학이든 취업에 목적을 두든 해외로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이 나처럼 자력 자립을 염두에 두고 의욕과 꿈만 앞세워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절대다수가 빈손으로 도전했고 지금은 여유 있는 가정의 젊은이도 많지만 그러나 해외에서 성공한 교민들의 과거를 보면 대개 빈손으로 떠나와 자수성가한 분들이다.
꿈이 있으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지금은 말 그대로 국경이 없는 글로벌 시대로 볼 수 있다. 어딜 가든지 이동 유통 소통이 쉽고 인간관계도 빠르게 이어지고 열려있어서 너무 고민하고 두려워할 필요 없다. 또 어디든지 먼저 개척한 교민들이 있다. 해외생활을 동경하는 사람은 생각만 하지 말고 가고 싶은 나라와 살고 싶은 곳을 찾아가 직접 길을 열어가 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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