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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8/23 11:27:55  김두호




KBS 스타 앵커출신 정미홍 극복의 삶
정의실현국민연대 창립해 NGO 리더로


 

【인터뷰365 김두호】정미홍 전 아나운서(55)의 삶은 꿈 그리고 도전과 극복의 시간들이 주류(主流)를 형성하고 있다. KBS <9시 뉴스>의 앵커로 명 콤비였던 ‘박성범 신은경’의 뒤를 이어 신은경이 빠지고 ‘박성범 정미홍’의 시대가 열렸던 게 1980년대 <9시 뉴스>의 전력이다. 돋보이는 미색에 영어를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하는 아나운서 정미홍은 88서울올림픽 때 올림픽 중계 주간 방송사인 KBS의 최고 스타로 국제적인 인기를 누렸다. 세계인의 안방으로 연결되는 국제 방송센터에서의 주요 행사 진행도 그녀의 재능 영역이었다.
그 젊고 꽃처럼 예쁜 정미홍 아나운서도 세월을 막지 못하고 어느 덧 지천명(知天命)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1993년 KBS를 떠나면서 시작된 그의 새로운 삶은 면역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난치성 희귀병인 루푸스(Lupus) 환자가 되면서 불행과 행운이 교차되는 특이한 인생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살게 됐다.


그 병으로 인해 이방인을 천생연분의 배우자로 만나게 되고, 스스로가 치유능력을 찾아내 병을 극복하면서 다른 환우를 돕는 봉사활동을 평생의 소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KBS를 떠난 뒤, 한동안 생사 고비를 넘나드는 투병기를 거치고서도, 조순 서울시장 선거 캠프의 대변인으로 모습을 달리 하여 등장한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여성 대변인 시대’의 문을 연 원조가 되기도 했다. 이어서 한국올림픽위원회 미디어 자문위원, 대한적십자사 홍보자문위원장,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을 설립하여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지금은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또 홍보회사인 J&A 대표이사이면서 리더십, 소통 등의 분야에서 자기 개발 교육 사업을 하는 ‘더 코칭그룹’(The Coaching Group)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정미홍은 새로운 도전의 삶을 시작했다. 2013년 8월 14일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정의실현 국민연대’(이하 약칭-정의연대)를 창립하고 사회 개혁 운동을 주창하고 나선 것이다. 그가 주축이 되어 창립된 정의연대는 다양한 분야의 각계 지도층과 기업인을 포함, 뜻을 함께 하는 시민들이 참여해 새로운 국민운동을 펼치게 될 비영리 시민단체(NGO)이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가냘픈 몸으로 거친 꿈을 향해 쉼없이 달려가고 있는 정미홍 아나운서가 선언문처럼 써 둔 ‘정의연대 창립에 붙이는 글’을 먼저 소개한다.


<이 사회가 길을 잃었습니다. 법은 힘을 상실했고 시민의식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정의는 모호해졌고 가치는 빛을 잃었습니다. 범죄는 급증하고 정치는 불안합니다. 명확한 사회지표가 없이 폭력과 이념적, 지역적 갈등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물질만능주의와 개인 이기주의, 소득의 차이로 인한 사회의 양극화 현상 등으로 이 사회는 바른 가치관을 상실한 체 나날이 병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 틈에 역사를 왜곡하고 국가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반국가 세력들은 폭력을 선동하고 사회적 분노를 부추기며 국민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은 정체되고 정신문화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안보는 위협받고 있는데 안보의식은 사라져갑니다. 역사를 모르는 청소년들, 지켜야할 윤리가 무엇이지 모르는 청년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물질적 가치를 더 숭상하는 문화, 더 이상은 안됩니다. 이젠 달라져야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잡에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법치를 확고히 하고 여가를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고귀한 문화와 정신적 가치를 공유해야합니다. 이 사회에 필요한 바른 가치를 정립하고 시민의식과 질서 지키기를 훈련해야합니다. 국가의 정체성이 모든 국민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라인지 깨달아야합니다.
대(大)한국인으로서의 긍지, 핵심가치를 다시 품어야합니다. 이 사회의 패러다임을 다시 바꾸어나갑시다. 그것은 긴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꼭 가야하는 길입니다. 이 사회가 선진화되기를 갈망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깨어 나 하나가 됩시다. 정의사회실현 국민연대는 이 사회에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기 위해 새롭게 출범합니다. 깨어 있겠습니다. 살아있겠습니다. 이 사회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인기 앵커 출신인 정미홍씨는 1995년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대변인 활동을 함으로써 첫 여성 대변인 시대를 열었다.


여성 대변인시대 길을 열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정미홍 대신 ‘naya'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영문 이름인가?
산스크리트어로 ‘늘 새롭게’를 의미한다. 나의 애칭이다.


최근에 창립한 ‘정의연대’부터 어떤 성격의 단체인지 설명해 달라.
이름그대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데 목적을 둔 3세대 국민운동 단체이다. 1세대 국민운동이 가난을 극복하는 ‘잘 살아보세’의 새마을운동이었다면 2세대 국민운동은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재.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갈등과 혼란, 무질서와 폭력, 국민 품격을 가늠하는 문화와 사회의식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세번째 국민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야한다.  새나라 만들기 운동, 바르게 살기 운동이다.  정의연대는 말 그대로 정의를 실현하자는 단체이다.  정의는 엄격한 법치가 확립될 때 실현된다.  정의를 논하려면, 법부터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실현해야 할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의 시민운동을 펼 계획인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청년과 청소년층이 확고한 국가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갖고, 선진 시민의식과 법질서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또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모르고 있는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든 사안의 핵심과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청소년과 청년 및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 어린이들에게 대한민국을 바르게 가르치는 방법이 어떤 것이지를 연구하고 실천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세미나 포럼 강연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 정책연구와 출판도 병행할 생각이다.  정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알고,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위해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 또 국가관이 투철하고, 헌신적인 공직자들을 늘려 나가기 위한 지원 감시 활동도 주요 사업에 포함되어 있다.


어떤 분들이 참여하는가?
조순 전 서울시장, 박근 전 유엔대사, 서경석 목사, 조남풍 예비역 육군대장, 성대석 언론인 협회장 등 각계 많은 원로들께서 고문으로 참여하셨고, 사회 운동의 경험이 많은 교수나 활동가들로부터 전혀 경험이 없는 기업인, 교수, 학생 등도 다수 참여해 그야말로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애국 시민들의 단체가 되고 있다.


단체가 우익성향의 보수적인 인상을 준다.
좌우를 떠나,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함께 나아가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이념이나 정치성에 매몰되지 않고 순수하게 사회정의라는 원칙, 자유 민주국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법과 질서를 지키며 선진 문화의식을 확산해 나가는, 나라 사랑 운동의 범위와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우려할 정도로 혼탁하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사회의 청렴도나 국민의 행복도에 대한 국가 간의 비교 조사는 많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의 관련 조사에서 하위권에 맴돌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진국일수록 연줄이나 인맥이 중요한 인간관계와 인사정책의 중심이 되는 통치가 이루어진다.  선진국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법질서가 가장 존중되는 법치사회라는 것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공공의 질서를 존중하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선진국의 필요조건이다. 부정과 부패만이 혼탁이 아니라 폭력이 난무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국가관이 없고, 청소년들이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미래의 좌표나 꿈을 잃고 있는 것 등 드러나는 모든 것들이 이 사회의 후진성, 혼탁성을 나타내주는 지표이다. 건강한 국민정신이 밑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리 부(富)가 쌓이고 풍요의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다. 사회에는 법과 질서를 지키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문제는 그 소수의 위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시대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법이 처리하지 못하고 선량한 국민들이 자기 일과 무관하다고 외면하는 가운데 불법 비리의 소수가 큰 저수지의 둑을 무너뜨릴 위험한 구멍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규모가 큰 선거인데 당신은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 당시 조순 후보의 민주당 캠프에서 여성으로 처음 대변인 활동을 했고 당선 후 홍보담당관을 역임했다. 그로부터 정당이나 청와대에서 여성 대변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정미홍 아나운서는 여성 대변인 시대의 길을 연 효시로 볼 수 있다.
나는 정치와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대변인을 맡은 것도 조순 시장의 개인적인 인품을 존경했고, 지자체 선거가 시민들의 축제와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맡은 것이지 정당은 관심이 없었다. 당시 대변인을 맡기면서 이해찬 씨가 정당 입당하라 했을 때, 입당해야 한다면 돕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혔고, 결국 비당원 대변인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선거후 자서전을 쓰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당선자께서 취임 한 달 뒤 나에게 좀 도와 달라 하셨다. 망설였지만 당선에 기여한 만큼 좋은 시장님이 되시는 걸 돕는 일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받아들였다.


서울올림픽 때 당신의 활약은 돋보였다. 미국 NBC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영어로 인터뷰 하는 장면도 멋져 보였다.
그때 앵커로 활약한 덕분에 이듬해 1989년 시카고대 윌리엄 벤튼 펠로십에 응시하여 아시아 최초로 펠로우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하버드대학교 니만 펠로우로도 선정되었었는데 방송인만을 위한 펠로우십이라 시카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카고대 부총장을 역임한 브래테니커사의 창립자 윌리엄 벤튼의 기부금으로 창설된 펠로십은 학비를 제외하고 연간 3만달러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총 15만 달러의 혜택을 받아 시카고 사회과학대학원 단기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해 방송국에 복귀했다.


인기 연예인 못지않게 화려하게 시선을 모았던 KBS를 왜 떠났는지 알고 싶다.
부산 지사 근무 발령이 났는데, 병(루푸스)을 감추고 회사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또 막 결혼한 터라 서울로 병원 다니며 이중 살림하기가 어려워서 생각 끝에 퇴직을 결심했다.  루푸스란 라틴어로 늑대란 말인데 처음 발견된, 피부 루푸스 증상이 늑대가 물어 뜯은 상처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자기 몸의 항체가 자기 몸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질환의 하나로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이다. 퇴직 얼마 후, 염려했던 대로 병이 재발하여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다. 지금은 완전히 건강해졌고, 어떤 증상도 없어 약을 끊은 지 10년 정도 되었다.  병을 극복한 경험을 다른 환우들과 나누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담이지만 사실 모든 루푸스 환우들의 롤 모델이고 희망이라 다시 아플 수도 없다.  


루푸스가 맺어준 기적의 인연


난치병인 루푸스병을 앓았던 정미홍씨는 그 병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당신은 이화여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 하게 되었는가?
원래 어학에는 자신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재미있어 했고 잘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외국 회사에 다녔고, 방송사에 입사해서는 매일 새벽에 연수원에 나갔다.  내가 다닐 순서가 아닌데도 나갔는데 봐주더라. 밤에 근무할 때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갔었다. 방송인으로서의 꿈이 세계적인 인터뷰어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나운서가 된 건 우연인가? 일찍 꿈꾸던 직업인가?
대학 졸업 후 쓰리엠이라는 외국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친구가 KBS 아나운서 공채 시험에 응시한 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응시한 했는데 친구는 탈락하고 나는 뽑혔다. 면접시험 때 월급이 내가 다니던 외국계 회사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생이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고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기꺼이 다니던 회사를 떠나 방송국으로 갔다. 나는 어떤 큰 결정을 할 때, 실수 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스스로 묻는 버릇이 있다. 내가 70살 쯤, 세상을 많이 살고 난 다음, 지금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 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하면 후회가 적다.


언제 결혼을 한 건가?
1992년 KBS를 떠나기 한 해 전이다. 남편은 미국인이고 지금 국내 1,2위를 다투는 대형 로펌의 국제팀 대표 변호사다. 더 이상의 소개는 하지 않겠다. 남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 본인도 나로 인해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지는 게 일에 방해된다며 싫어한다. 부부 인터뷰 요청이 많았지만, 함께 방송이나 언론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부로 인연이 된 일화도 들려줄 수 없는가?
글쎄, 결혼의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쓰러졌을 때, 날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원래 국제단체의 회원으로 서로 인사정도 나눈 사이였다. 유학할 때, 우연히 그가 안부 전화를 했는데 마침, 내가 위중한 상태로 쓰러져 있을 때였고, 간신히 기어가 전화를 받고 날 좀 구해달라고 했다. 그는 두 시간 넘게 눈길을 달려와 나를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고,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게 의사의 말이었다. 가족이 없이 혼자 미국에서 아픈 내게 그는 헌신적으로 문병을 오고 돌봐주었다. 난 그의 성실하고 순수한 모습에 감동했고, 1년 후 그가 청혼했을 때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지금도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20 여년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내게 미안할 만큼 헌신적이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항상 고맙고 미안해서 나도 잘 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특별한 인연이다.
남편은 나를 만난 것이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세계적인  대형 로펌에서 활동하다가 나를 생각해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린 서로의 국적을 존중하며 국적을 바꿀 것을 강요하지 않고 산다. 간혹 한미간의 문제점이 생기면 논쟁을 하는 정도가 있지만 부부 싸움은 하지 않는다. 가끔 느끼지만, 우린 참 쿨하게 살고 있다.


자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하나가 있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입양한 딸은 아버지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다. 예쁘고, 건강하며, 마음이 아름다운 아이다. 예술에 소질이 있고, 성격이 쿨하다. 난 교육이란 건강하고 독립적인 사회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딸이 시집 어른들의 훌륭한 삶을 본받아 주기를 늘 부탁하고 있다.


어떤 분인가?
시아버지는 보험회사를 운영하셨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바이올린을 연주하시고, 예술 페스티벌은 꼭 찾아다니신 낭만파셨다. 시립 도서관에 기부를 많이 하셔서 돌아가신 다음 시에서 도서관 앞에 이 분을 기리는 큰 조각 기념비를 세웠다. 시어머님은 7남매의 자녀를 훌륭하게 뒷바라지한 전업 주부셨는데, 대학 1학년 마치고 결혼하면서 대학을 중퇴하셨다. 그런데, 7남매가 모두 대학에 들어간 후에, 못다 한 공부를 하기 위해 복학해 대학원까지 올 에이(All A)의 성적으로 졸업하신 분이다. 그 이후엔 가장 가난한 지역의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월급을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데 다 쓰시며 봉사하셨다. 남편에게 부모님은 롤 모델이자 가장 친한 친구셨다.


자신의 병은 자신이 고칠 수 있다


이제 스스로 난치성 질환인 루푸스를 극복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루푸스로 15년간 3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여러 번 병원에 입원도 했었다. 많은 기도와 함께 스스로 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대체의학이나 체질 의학 등을 공부하기도 했다.  약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피부 관리사 자격도 취득했다. 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오래 동안 체질에 맞는 음식만 섭취하는 다이어트, 운동, 명상 등 나름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그런데 지금의 결론은 병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을 가진 사람의 마음 자세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 부정적 감정, 즉 스트레스, 분노 등을 다스리는 것 등이 치유에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환우들을 위한 루푸스 재단을 창립하고 지금까지 17년간 운영하고 있는데, 6,500 여 회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도 바로 환우들의 마음 관리이다.  생각이 바뀌면 병을 이길 수 있다. 내면으로부터의 변화가 육체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삶을 바꾸는 것이다.  사실 루푸스뿐 아니라 모든 병이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이 시대의 젊은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달라.
1948년 옥스포드 대학에서 전 수상 윈스턴 처칠을 초청해 강연을 가졌다고 한다. <성공의 비결>이란 주제였고, 처칠 수상이 말하는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한 청중들이 강연장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처칠은 단 15초 만에 겨우 세 마디 하고는 강연을 끝내 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강연이 된 그의 말은 이랬다.  
"나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둘째,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셋째,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옳은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또 꼭 달성하고 싶은 일이라면 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가 새롭게 시작하는 정의실현 국민연대의 새나라 만들기 운동도 그런 일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며,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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