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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8/29 13:04:42  김두호




보물선 돈스코이호 발견한 ‘보물섬’의 소년 유해수 박사(하)
제2의 타이타닉의 꿈을 현실로


 

러시아 전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를 울릉도 앞바다에서 찾아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부장 유해수 박사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돈스코이와 전율 속의 만남


돈스코이호 탐사에 동원된 관측 장비는 주로 어떤 것들인가?
1999년 첫 해양탐사에서는 해저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원의 탐사선 온누리호(1440톤)가 동원되었고, 이를 통해 각종 첨단 지구물리 탐사를 수행했다. 수중의 철재 성분을 파악하는 자력탐사부터 침물선에 100여 년 동안 쌓인 퇴적물 조사와 해류에 따라 이동 폭을 추정하는 각종 작업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타이타닉호가 해류에 의해 실제 침몰지점에서 3k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점을 고려했다.
이런 탐사와 조사를 위해 해저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다중빔 음향측심기를 동원했다. 이 장비는 111개의 음파를 해저로 동시에 발사 후 되돌아오는 반사파를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적으로 지형도를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병원의 초음파 진단기와 같은 원리를 지닌 장비다. 


울릉도 실제 해저지형의 종합 탐사 모식도(좌)와 탐사해역인 울릉도 죽도 앞에서 탐사중인 온누리호(우)

 

수심 얼마까지 해저 지형도를 파악할 수 있는가?
95킬로헤르츠에서 수심 1,000m까지 해저면을 삼차원 정밀지형을 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심해용 장비로서 해저 10,000m까지 물체를 탐사할 수 있다. 계절별 해류의 속도 및 방향을 확인하려고 6개월간 측정장비를 수중에 계류시키기도 하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해군중앙역사박물관의 돈스코이호 모형을 복사 후 우리도 같은 모형을 복제해 두고 그 형체를 머릿속에 수십 번씩 그려보며 탐사작업에 임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네바강변에 있는 해군중앙역사박물관(좌) 그 내부에 전시된 돈스코이호 모형 앞에 서 있는 유해수 박사(우)


발견 당시의 현장 이야기가 궁금하다.
유인잠수정을 타고 수심 640m까지 내려가 블랙홀 같은 해저 협곡 사이를 오르내리며 이물체를 모두 영상으로 기록한 후 분석 작업을 계속했다. 잠수 탐사 9일째였다. 의심이 가는 물체들이 발견된 곳을 좌표로 설정하고 모든 시스템을 가동시켜 잠수정을 다시 그곳으로 하강시켰다. 수심 520m, 해저면에서 조명을 켜고 사방을 관찰할 바로 그때 갑자기 시야가 캄캄해졌다. 불빛을 본 심해 새우떼가 새까맣게 몰려든 것이다. 기절 할 뻔했다. 잠시 조명을 끄고 새우떼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그런 뒤 의심 물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마스트로 추정되고 심하게 부식된 철구조물과 전선이 발견됐다. 잇달아 조타기와 전신기 잔해 같은 물체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기분, 느낌이 어떠할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잠수정을 상승시키자 해저 절벽 경사가 조금 완만한 지점에 거대한 배가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며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두렵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형체는 비록 많이 손상되었지만 100여년을 버텨온 함포는 당장이라도 포성을 울릴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는 내내 전율을 느꼈다. 잠수정 조종사는 후들후들 떨리는 가슴을 억누른 채 해상에 있는 모선의 탐사대원들에게 무선송신을 보냈다. “흑장미를 찾았다!” 그것은 돈스코이호의 발견을 알리는 역사적인 외침이었다. 흑장미는 우리 탐사팀이 돈스코이를 일컫는 암호였다.


돈스코이호 확인을 위해 1,500m 성능의 무인잠수정(LBV_1500)(좌)과 900m 성능의 유인잠수정(Pathfinder)(우)을 바다로 투입시키기 직전 모습이다.


일본의 독도 침탈 유래


상상이 간다. 극적인 순간이었겠다.
탐사 모선에선 순식간에 함성이 터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평소처럼 행동해야 했다. 멀리 육지에서 고성능 망원경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토커들 때문이었다. 돈스코이호가 발견된 정확한 지점은 울릉도 저동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해역의 약 50도 비탈진 심해계곡 중턱의 수심 400m 지점이었다.


침몰선에서 실제로 돈스코이호로 표기된 이름도 확인된 것인가?
침전물질과 수중생물로 덮인 채 100여년 만에 발견된 해저 유물에서 철판 글씨가 명료하게 남았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타이타닉 발견 시 그 어디에도 선명을 확인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실제 돈스코이호의 길이는 93.4m, 폭은 17.7m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사한 영상이미지는 주변 바위와 함께 나타나는 바람에 길이가 약 110m, 폭이 30m의 형태로 보였다. 바로 옆은 수심 2,000m나 되는 천 길 낭떠러지였다.
비디오로 촬영한 침몰선체와 사실 모형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돈스코이호의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기록을 종합해 볼 때, 그 지역엔 다른 군함이 침몰한 역사적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도 이것이 돈스코이호란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게 했다.


발견 후 아직까지 인양작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거기엔 우여곡절도 적지 않다. 파산한 참여기업을 어느 그룹이 인수했다. 그때 그 그룹 회장도 돈스코이 가치를 인정하여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기업 인수와 관련해 4년간 법정소송에 휘말렸다. 그 후 잇달아 회사 경영위기 같은 내부사정으로 탐사사업 계약들이 끝까지 이행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아쉽고도 힘든 시절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침몰 군함의 소유권 문제가 국제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UNESCO 수중문화유산보호협약에 따라 지구적 차원의 규범을 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자침한 군함은 해양법협약상의 군함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권리의 묵시적 포기로 간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관할권 하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현재 가장 급박한 것은 수중 유물이 산소가 없는 퇴적물 속에 묻혀 있을 경우엔 오랜 보존이 가능하지만 돈스코이호처럼 완전히 바닷물에 노출된 상태로는 수년 내로 부식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중문화유산 보호 차원에서라도 하루빨리 인양해서 복원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들은 가능한 한·러 우호관계의 증진을 위한 협정 체결을 통해 처리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특히, 한러 관계는 침략국가인 일본과 달리 고종황제 때 아관파천 등 끈끈한 역사적 유대관계가 있으며, 일제시대 우리의 지식인들도 러시아로부터 적지 않은 지적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인들이 민족의 수호신처럼 생각하는 돈스코이호의 인양은 한국과 러시아를 새로운 윈-윈 관계로 격상시킬 수 있다. 비록 돈스코이호에 보물이 실려 있지 않다고 해도 이 일은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며, 각종 귀중한 과학적 실험 자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일이다. 제2의 타이타닉 같은 영화 소재가 될 수도 있으며, 울릉도를 관광명소로 만드는 전시물로도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타닉호 인양 유물도 세계적인 순회전시를 통해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가. 


최근 토픽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80km 떨어진 해안에서 1869년에 침몰한 프리깃함 올레그(Oleg)의 잔해를 찾는 심해 잠수정을 타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침몰선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1년 11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한러 정상회담 때 돈스코이호 공동탐사의제 발표가 있었다. 돈스코이는 러시아의 독립 영웅의 이름으로 러시아인들의 존경의 대상이다. 얼마 전 주한러시아대사 초청 국제회의에서 나를 돈스코이호 탐사 발견자로 소개하자 당시 러시아대사는 깜짝 놀라며 정중하게 다가와 명함까지 건네는 등 매우 호의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돈스코이호는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된 전함이란 점이다.


2011.11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랜드유럽호텔의 한러 정상회담에서 돈스코이 의제 발표(좌) 2012.09 아태연구센터 국제회의에 참석한 러시아 한국주재대사 및 경제부 총수들과 자리를 함께 한 유해수 박사(우)


돈스코이호와 일본의 독도 침탈은 역사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가?
세계 최강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인 돈스코이호가 제2태평양함대로 재편되어 남아프리카를 돌아 마다가스카르 섬에 정박한 것은 1905년 2월경이었다. 일본은 이 함대들이 우리나라 동해로 통과할 것을 예상하고 군사적으로 가장 전략적 요충지인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명칭하고 2월 22일 시마네현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이후 울릉도에 감시용 망루를 설치하고 독도에도 설치가능성을 조사함으로써 독도를 군사전략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침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함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일본의 방해로 항해 중 식량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고, 서울-부산 간 거리의 80배인 무려 34,000km를 항해한 탓이었다. 이런 상태로 동해에 다다랐을 때 일본이 공격했다. 당시 돈스코이호 함장에겐 치욕스런 함대사령관의 항복명령이 떨어졌다. 더욱이 다른 침몰선에서 구조한 200명의 해군들이 일본의 독가스 전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항복하자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함장은 모든 것을 거부한 채 결사항전의 정신으로 끝까지 싸웠다. 하지만 일본 연합함대의 포위망 속에서 극심한 공격을 받은 돈스코이호는 더 이상의 운항이 어려워지자, 어두운 밤에 570명 모두를 울릉도로 상륙하라고 명령했다. 그런 후 돈스코이호를 일본군 손에 넘기지 않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자폭과 다름없는 자침을 선택했다. 러시아인들에게 돈스코이호는 우리의 거북선처럼 민족혼이 깃든 영웅적인 존재로 러시아 해군 최고의 명예로 추앙되고 있다.


돈스코이가 울릉도에 남긴 비화


돈스코이호의 울릉도에 남긴 기록 중에 특기할 만한 비화라면?
울릉도에 상륙한 돈스코이호 승조원들 중 상당수 부상당한 군인들을 주민들이 정성껏 간호해 주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일본군 장교 나이또 중위 일행은 울릉도에 상륙한 러시아 해군을 체포하러 갔다. 그런데 그 일본군 장교가 돈스코이 함장에게 “위대한 함장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경례를 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러시아 함장과 승조원들은 조국의 명예를 걸고 죽음을 각오하며 용감하게 싸웠다. 
레베데프 돈스코이호 함장은 일본으로 끌려간 다음날 심한 대퇴부 부상으로 사망했다. 포로수용소의 돈스코이 장병들은 일본에 요구하여 영웅의 마지막 길을 위한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했다. 전쟁포로 사망자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온 것으로 보아 평소 얼마나 신망이 두터웠던 함장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함장의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 러시아인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종전 후 러시아로 송환되었다. 또 다른 일화로 울릉도에 하선한 러시아의 한 군인이 울릉도에 계속해 상주하다가 울릉도 주민과 결혼해서 딸까지 낳았고, 그 딸이 최근 서울로 이사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지고 있다. 


돈스코이호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와 인양비용은?
한마디로 돈스코이호는 우리 민족의 국권을 강탈당한 대한제국 말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타임캡슐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거북선과 같은 영웅적인 배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시 세계의 해양강국인 러시아를 격퇴한 역사적인 증거이다. 하지만 돈스코이호는 누가 뭐래도 러시아의 역사이자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와도 연관성이 깊다. 비록 100여 년 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지만 돈스코이호는 한반도를 지키려 했던 러시아의 마지막 전함이다. 이처럼 돈스코이호가 지닌 숭고한 역사와 인류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로 인양할 경우 우리로선 잃어버린 100년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양 비용은 인양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800억 원 정도로 추산한다.


심한 부상을 입고 울릉도 민가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돈스코이호 함장에게 체포하러 온 나이또 중위가 경의를 표하는 장면(좌), 레베데프 돈스코이 함장(중), 일본 나가사키에 묻혔던 레베데프 함장의 묘비(우)


돈스코이와 운명적 만남


유해수 박사와 돈스코이호의 만남은 운명적 조우(遭遇)처럼 느껴진다.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유년시절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은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이었다.  돈스코이호는 나에게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보물선이다. IMF 경제위기와 영화 타이타닉을 계기로 돈스코이호가 더욱 절실히 다가왔다. 돈스코이호 탐사계획에 들어가면서 그 침몰선은 나에게 100년 전의 과거와 지난날의 동심을 싣고 미래로 가는 희망의 배가 되었다. 나의 고향은 천안이고 유관순 열사 집안의 후손이다. 해양과학자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가 민족정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이런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공동탐사나 탐사기술 지원 제안을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돈스코이호는 나의 동심을 일깨우며 지금까지 희망적인 삶의 길잡이 구실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우리 역사에도 불행한 전조가 됐지만 항로 정보를 미리 예측한 일본해군의 교활한 기습 공격을 받아 궤멸된 러시아 함대에 대한 동병상련의 감정을 감출 수 없다. 나의 전공은 해저자원 탐사지만 침몰선의 발견과 분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내겐 어렵지만 즐거운 일이다.


돈스코이호가 갖는 해저 유물사적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 최초의 심해 발굴조사의 성과물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드문 일이다. 아시아 최초의 심해 발굴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탐사성과는 정확한 침몰 위치를 기반으로 한다. 평탄한 해저에 놓인 것을 찾아낸 타이타닉호 탐사와 비교해 볼 때, 돈스코이호 탐사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실제로 전쟁 중에 기록된 불확실한 자료에 근거한 것도 그렇거니와 험준한 심해 계곡에서 발견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부족한 자료와 탐사 과정의 난제를 고려하면, 돈스코이 탐사성과는 타이타닉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해양과학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인 동시에 심해탐사기술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자 기회라 할 수 있다. 


당신은 과학자이지만 지금은 ‘돈스코이학’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러일 해전 역사에 접근하면서 당시 막강 러시아함대가 왜 무참히 일본의 해군에게 패했다고 보는가?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전쟁은 과학기술의 종합이다. 최신 병기를 얼마나 동원하고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린다. 당시 독가스가 내장된 일본의 신형 시모세탄 함포의 성능과 정보력에서 러시아를 크게 앞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과학기술이 없으면 해전에서의 승리는 더 더욱 장담하기 어렵다. 패전 이후 러시아 함대의 해군력 증강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돈스코이호가 전쟁이라는 과거를 돌이켜 보게 하면서 한편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유산으로서의 가치로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돈스코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침몰선 인양 프로젝트가 아니다. 돈스코이호 침몰과 함께 한반도의 자주독립 희망도 동시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끝나고 울릉도에서 양국이 만나 서로 화해하는 등 평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평화의 섬 울릉도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동북아시아 평화의 징검다리가 만들어지고 남북통일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또한 이를 계기로 역사적, 학술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새로운 문화콘텐츠도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돈스코이 프로젝트’가 한·러 우호관계로 증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 박사가 누구보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돈스코이 프로젝트’는 해양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과 미디어산업 및 문화산업을 연계하는 창의적 능력이 요구됨에 따라 양국의 역사와 경제,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중요한 발전을 이끌어낼 것이다. 특히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그동안 더디게 진행해왔던 극동지역의 경제적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우리나라와 함께 성취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한국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등한시 했던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고 울릉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여 러시아 해군의 추모비를 건립하고 테마파크를 조성함으로써 한국과 러시아, 동북아시아가 함께 하는 평화의 축제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데는 지난 108년 전 돈스코이호 침몰 당시의 한국과 러시아는 같은 우방국이었고, 전쟁에 광분하던 당시의 일본에 맞서 함께 대응했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올해 11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이때 돈스코이호 프로젝트가 새롭게 양국의 관심사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깊은 동해바다 속에 100년 이상 잠들어 있는 돈스코이호를 깨워 한·러 상생발전을 위한 ‘윈-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한다면, 양국의 우호증진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향한 역사적인 첫 항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3.5.10. 돈스코이호의 학술적 조명을 통한 한-러 우호협력 방안 협의
참석기관: 외교부, 기획재정부, 국방부, 한러대화(KRD), 한국주재 러시아 정무 대사, 전 러시아대사, 전 우크라이나대사, 독도박물관 동북아역사재단, 고려대, 연세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바닷물을 뜻하는 ‘유해수’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어느 신문사가 국가기관과 어울리는 종사자 이름을 조사했는데 이상적인 이름 가운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바닷물을 뜻하는 ‘해수(海洙)’라는 이름을 가진 나를 거론하며 대표적 이름으로 꼽았던 적도 있다. 문제는 이 이름이 운명이라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 이름을 바다에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 관계는 어떤가?
아내와 딸, 아들을 두고 있다. 돈스코이호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아내는 의사이고, 사진 작품 만들기를 좋아하는 딸은 숙대 화학과에, 영국의 록그룹 뮤즈를 좋아하는 아들은 KAIST 전기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이다. 취미는 각기 다르지만, 자식들이 나처럼 이·공학을 공부하겠다고 해서 내심 고맙고 기쁘다.


‘돈스코이 박사’가 된 유 박사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16년간 돈스코이호에 파묻혀 살다보니 이젠 꿈도 돈스코이호 꿈을 자주 꾼다. 대체로 돈스코이호 덕분에 일어나는 좋은 꿈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꿈이 구체적인 현실이 되길 원한다. 나만의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꿈일 수 있기를 바란다. 누가 그랬지 않은가! 혼자서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돈스코이호를 통해 “과학기술력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100년 전 교훈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며, 하루속히 잃어버린 우리 역사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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