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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12/04 14:41:19  이희승




[인터뷰] 왕따들의 역습,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적어도 시도는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터뷰365 이희승】도전과 패기, 그리고 꿈. 20대라면 당연히 떠올리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고단하다. 학비를 벌려면 아르바이트를 해도 빠듯하다. 그나마 학점을 유지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겨우 졸업을 했다 해도 제대된 스펙이 없으면 취업도 힘들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그런 모든 걸 거스르는 영화다. 20대 초반인 영화의 주인공들은 학교에서도 다들 피해(?)다녔고, 교수들도 서로의 어울림을 걱정했을 정도로 ‘루저’였다. 영화 관련 학교를 다녔지만 다들 한 가지씩(이호재-연출, 김휘-CG, 하승엽-애니메이션, 이현학-조명)의 재주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것은 친구들의 수준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스스로를 ‘잉여’라 칭하던 이들은 방학 중 학비를 벌려다 그나마 그것도 짤리(?)고 남는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 숙소의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숙식을 해결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는다.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들고 간 80만원은 한 달도 안돼 바닥났다. 노숙을 감행한지 3일째, 한국 민박집에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홍보영상을 부탁하는 대신 고생한다며 햄버거 하나씩을 사주고는 사라졌다. 모든 걸 포기하기로 한 순간 러브콜이 왔다. 텐트를 쳤던 쓰레기장에서 주운 락카를 이용해 ‘옐로우 호스텔’이란 PR영상이 그들의 첫 작품이 됐다.
그들은 곧 유럽에 위치한 수천 개의 숙소들이 탐내는 인재로 떠올랐고, 몇몇 뮤지션들은 홍보영상만 보고도 자신의 뮤직 비디오를 찍어 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리더격이자 맏형인 이호재(29)는 이런 과정을 찍은 테이프를 5개월이나 걸려 편집해 국내 배급사에 보냈다. 이것이 CGV무비 꼴라쥬를 통해 관객과 만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탄생기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돼 예매 오픈 1분 만에 전석이 매진된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유쾌해진다. 그 유쾌함의 한가운데 있는 이호재 감독을 만났다.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 때 이제는 군인이 된 다른 멤버들(김휘, 하승엽)이 참석했다. 영화 속 철없던 젊은이들이 바짝 군기든 모습이었다.

나도 곧 가야 한다.(웃음) 아마도 우리가 다시 뭉치는 해는 2015년이 되지 않을까. 영화는 2009년의 모습이니까 풋풋하다. 그 후로 정확히 1년 후 한국 땅을 밟았다.

 

멤버들이 혼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질투하지 않나.
오히려 자기들이 노출 안된다고 다 좋아하는 분위기다. 분량이나 노출을 따지는 친구들이 아니다.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화제인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영화 제목이다. 잉여란 무엇인가에 대한 게 가장 많다. 초반에는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부류라고 말해왔지만 지금은 더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세대는 해야 되는 게 점점 많아진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건 많고. 그렇기 위해선 경쟁을 해야 하고. 그래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2009년 고민도 비슷했다. 모두가 기대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개봉도 그런 맥락에서는 정반대다. 영화라는 게 연출부에 들어가 시나리오 쓰고, 데뷔하는 게 정석인데 일단 찍고 나서 운 좋게 개봉하게 된 거니까. 걱정인 것은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영화로 비춰지지 않나 하는 것이다. 잉여란 안 하겠다는 것보다는 못하는 부류다.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당시의 내가 그랬다.

 

전체 분량은 얼마나 됐나. 5개월이면 꽤 걸린 거다.
분량은 대략 60시간 정도 됐다. 365일을 여행 다닌 거에 비해선 적은 양 같지만 24시간 내내 찍을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꽤 많은 분량이다. 장편 편집을 하는 게 처음이고, 집에서 해야 하는데 컴퓨터 사양도 안 따라주니 늦을 수밖에.(웃음) 다들 오래 걸렸다고 하는데 나는 굉장히 빨리 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지 않았으니 좀 거친 맛은 있지만.


80만원 들고 유럽으로 떠난 잉여들

 

영화에서 동생들이 감독인 당신의 뒷담화를 하더라. 영국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버틸 때다.
솔직히 처음엔 상처를 받았다. 그런 말을 한 걸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거든.(웃음) 하지만 지금도 고마운 게 당시엔 내색을 안했고 잘 버텼다는 거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알겠지만 당시 분위기가 미묘했다. 내가 팀에서 떨어진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넷이서 사용하는 공간도 달랐고 잘 마주치질 못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거의 노동 착취수준이더라.
맞다. 그때는 하비가 일을 안 해서 3명이 4명의 일을 해야 했다. 유럽 숙소계를 뒤집어 놓은 홍보영상에서 연기를 도맡은 하비는 원래 누워 있는 게 체질인 친구다.(웃음) 그때는 꽤 유명해진 상태에서 아르코의 홍보영상까지 찍어야 했기에 최대한 어려운 일을 도맡아 빨리 하고 남은 시간을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영화 중간에서 경비 0원에서 500만원으로 확 불어나던데. 비법이 뭔가.
숙식을 제공받아도 찾아봐서 수고했다면서 500유로를 주는 사람도 있었고, 차비 하라며 100유를 준 사장님도 있었다. 그걸 다 모은 거다. 일단 일이 들어오면 아이디어를 짜내 최대한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고 돈이 없는 가게들은 공짜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점을 좋게 본 것 같다.

 

유럽에서 히트친 홍보 동영상이 궁금하다. 몇 편이나 제작한 건가.
총 30편 정도? 그중 10편은 망했다. 망한 작품의 공통점은 하비 말고 다른 캐릭터를 넣어달라고 했을 때였다. 지금도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 지난달에도 로마에서 러브콜이 왔다. 런던의 한 숙소는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기도 했다. 하비랑 단둘이서 카메라만 들고 갔다. 그때 한 곳에서 차비하라고 400만원을 보내줬는데 비행기 표를 한 명당 50만원짜리를 구해서 경유 36시간짜리를 타고 날아갔다. 남은 돈은 현지에서 경비로 쓰고. 그런데 확실히 막 쓰게 되더라.(웃음) 아, 한국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도 있다. 흑마늘 엑기스 홍보 의뢰인데 어둡게 드라큘라를 등장시켰는데 안 좋아해서 결국 CF로 연결되진 못했다.

 

엔딩에 대해서 말해보자. 거의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 남은 일주일을 감독 혼자 떠나고, 나머지 동생들이 뒤따라가서 해변에서 마주친다)
정말 몰랐다. 분량이 훨씬 많았고 길었는데 다 잘라내야 했다. 여행 초반에 각자 팀을 이뤄 떠나서 일주일 후 어디서 보자는 식의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그렇게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애들이 찍어 온 분량을 봤더니 텐트치고 차도 타고 왔던데, 나는 나무에서 기대어 자고 자전거는 망가져 버린 상태였다. 너무 혼미한 상태애서 애들을 본 순간 바다에서 물귀신이 나온 줄 알았다. 나중에 따라 온 걸 안 순간 고맙고 감동해서, 포기했던 아르코의 뮤직 비디오를 완성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숙소 홍보영상 제작으로 여행비를 충당하려던 그들은 유럽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도대체 어떻게 만난 사이인가. 학교는 다 자퇴한 상태로 떠난 건가.
같은 학번으로 만났는데 파트는 다 달랐다. 넷 다 한 가지 전공만 할 줄 알아서 메인 작업을 못하는 부류였다. 동기들은 우리들을 보고 “짜친다”면서 상대해 주지도 않았다. 나는 동기들보다 네 살 형이어서 성실하게 공부는 하는 편이었다. 교수님들이 나머지 세 명과 어울리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어딜 끼지 못하고 편집실에서 있다 보니 친해졌다. 사실 게임만 하고 수업도 안 들어와서 나는 처음에 좀 싫어하긴 했었다.(웃음) 그런데 학기말 과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팀을 못 만드니 같이 뭉치게 된 거다. 돌아올 곳이 생기면 마음이 약해질까봐 다들 합의 하에 학교를 관뒀다. 여행 후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한국종합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간 친구도 있다.

 

자신을 무시했던 동기들이나 교수님들에게는 이번 영화의 개봉이 ‘왕따들의 역습’인 건가?
이 한 가지는 확실하다. ‘도대체 왜 우리 같은 애들한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히 ARCO의 뮤직비디오 사건은 지금도 현실로 안 느껴진다. 음악 외에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걸 싫어해 데뷔 후 뮤직비디오가 단 한 편인 세계적인 그룹이다. 공연도 안하고 한국에서 엄청난 돈을 준다고 해도 오지 않는 밴드인데 마지막 음반의 타이틀곡이라 특별히 뮤직비디오를 찍기로 결정난 상황에서 나에게 연락이 온 거다. 완성하긴 했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각 멤버들만의 장단점은 어떤 것 같나.
현학이는 긍정적이다. 그러다보니 좀 막무가내인 편이고, 쉽게 화를 내는 점? 승엽이는 비관적인데, 그게 굉장히 신중하다는 장점이 된다. 다들 매사에 비관적인 승엽이를 보며 힘을 얻을 정도로 아주 다크한 놈이다.(웃음) 휘는 명석한 두뇌가 정말 부럽다. 그런데 리액션이 전혀 없는 무표정이어서 몇 대 때릴 뻔했다. 왜 있지 않나. 뭘 물어보면 꼭 30초씩 있다 대답해서 답답하게 만드는.

 

그렇다면 자신의 장단점은 뭔가.
장점은 일을 크게 만드는 거다. 단점은 크게 만들어 놓은 걸 잘 대처하지 못하는 것.(웃음)

 

2% 부족한 리더로 그걸 채우는 긍정 마인드가 정이 간다. 어떤 가정에서 자랐나.
외동이었고,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가서 부모님이 굉장히 미안해 하시는 가풍이었다. 일년에 두세 번 이사를 가니까 친구들 사귀는 걸 힘들어 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뭘 해도 왕따인 타입이었다. 이 프로젝트도 당연히 부모님께 구체적인 계획을 말 안했다. 학교를 관두는 것조차 갔다 온 뒤에야 아셨다. 하지만 해외에서 유명해진 걸 아시고는 좋아하시더라.  두 분 모두 부산에 계신다.

 

멤버 중 일부는 군 입대를 하고, 이호재 감독은 다시 사고(?)칠 준비를 하고 있다.

 

여행 출발을 하게 된 동기가 아이러니 하게도 홍보동영상에서 잘렸기 때문으로 들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걸로 스타가 돼서 돌아왔다. 
군대 영상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다. 훈련한 내용을 편집해서 달라는 거였는데 꽤 큰 액수였다. 다 받으면 멤버들의 한 학기 등록금은 돼서 흔쾌히 뛰어들었다. 두 편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한 편 하고서는 만족을 못하셨는지 연락이 없더라. 당연한 얘기지만 받은 돈으로는 네 명 다 학교를 갈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등록금 내고 남은 돈으로 여행을 가는 거였는데, 학비도 못 내고 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됐다.  다들 싫어하는 건 하지 말자, 주어진 대로 살자 주의였으니 그걸로 차라리 유럽을 가자는 걸로 결론이 난거다. 각자 받은 돈으로 100만원짜리 항공권을 끊고, 캠코더와 중고로 구입한 DSER카메라를 샀다. 그걸로 이번 영화를 찍게 됐다. 지금도 하기 싫은 건 안하자는 주의다.

 

그 점이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고, 여행이 사치인 또래들에게는 배부른 자의 철학으로 들릴지 모른다.
(잠시 생각 후)외국에서 스타가 됐다지만 한국에 들어와서는 막상 일이 없었다. 고졸이었으니까. 그래서 다양한 작업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포트폴리오를 짜서 일을 받았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번 만큼의 수준에서 불만 없이 생활을 하는 게 창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적어도 시도는 해 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번쯤은 시도해 보고, 그러고나서 포기해도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여기저기 러브콜이 들어와 풍족하게 살 것 같은 외모와 분위기다.
올해 초부터는 일을 못해서 작년에 모아놨던 걸로 버티는 중이다.(웃음) 그리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어디서 뭘 먹고 어떻게 사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자는 공간만 있으면 괜찮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분수에 맞게 사는 게 옳다고 본다. 지금도 조그마한 자취방에서 사는데 방값 빼고는 한 달에 지출하는 돈이 30만원 안쪽이다.

 

영어 수준도 되는 편이라 유학파인 줄 알았다.
대학 때 전공이 국제통상학부였다. 모든 강의와 리포트를 영어로 해야 했다. 그 덕에 이번 여행이 좀 수월했다. 유창한건 아니지만 각종 이메일교환과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었거든. 원하던 전공이 아니어서 학교는 안가고 영화만 보러 다녔다. 스물두 살 때 단골로 다니던 극장의 영사실에 취직을 하게 됐다. 부산의 국도극장이다.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영사실에 취직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고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다. 너무 감격스러운 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그 극장에 걸린다는 거다.

 

이제 막 감독 데뷔를 마친 셈인데, 장편 데뷔도 준비 중인가.
나에게 영화란 어렵고 복잡하기보다는 한 시간 안에 음악과 그림, 이야기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편한 존재였던 것 같다. 이후의 일은 공익근무를 마친 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일단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팀을 꾸려 전 세계를 돌면서 문화가 필요한 사람들과 문화 교류를 하는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요리사나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여러 장르의 사람들을 모아 버스를 타고서. 우리가 받은 ARCO의 메일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는 프로젝트를 쭉 이어나가고 싶다. 그나저나 버스를 섭외하려면 또 어떤 사고(?)를 쳐야 하나.(웃음)

 

이희승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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