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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2/28 15:59:22  김두호




[인터뷰]문화경계인 시대 길잡이학자 김세원교수
소통은 스피드가 아니라 느림이 만든다


김세원 교수.

 

[인터뷰365 김두호] 세계는 점점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양한 문화를 서로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한 울타리 글로벌 문화권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외래문화를 생각없이 접하고 받아들이는 혼돈의 시대에 국제 문화를 비교 분석한 <문화로 세상읽기>란 책이 오피니언 리더층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 김세원 박사(54·가톨릭대 교수)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비교문화학자다.

 

다국적시대, 다문화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융화하기 위한 비교문화 연구분야가 21세기 지구촌의 과제로 부각되는 시기에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관점이 교합된 <문화로 세상읽기>는 저자 김세원 박사가 문화 현장을 들여다보며 쓴 체험적 기록과도 같아서 현장감의 흥미를 함께 접하게 한다. 20년 넘도록 동아일보사에 재직하는 동안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정치부 기자와 첫 여성특파원으로 활동하고 대학으로 옮긴 뒤 고려대를 거쳐 가톨릭대에서 ‘문화와 경영’, ‘국제문화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모교인 고려대에서 정치학, 뉴욕주립대에서 기술경영학 석사를 거쳐 다시 고려대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제가 ‘럭셔리 브랜드의 원산지 효과연구’였던 것도 생활문화 비교연구에 주안을 둔 내용이다.


신문사 파리특파원이 되고 비교문화학자가 된 김세원 박사는 천재성을 인정받은 문학소녀 출신이다.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시절까지 전국의 각종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동시와 산문으로 이름을 알리며 각종 상을 휩쓸었고 중앙일보가 발행한 학생중앙의 소설부문 최우수 문학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워킹맘이 되어서도 거침없이 전문직업인으로 해피하게 살아온 김세원 비교문화학 교수는 요즘 학술권 밖에서 비문화적인 분야로 밀려난 동서양의 역술과 명리학을 새로운 연구대상에 올려놓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인터뷰어인 기자는 김세원 교수의 이름을 1970년대 초부터 알고 있다. 육영수 여사가 창간해 전국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동지 <어깨동무>사 기자 시절, 초등학생인 김세원 어린이의 글을 작품 공모에서 빈번하게 우수작으로 뽑았고 그 중 <자벌레>라는 동시는 표현이 뛰어나 제목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때 작품 심사를 한 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은 김세원 어린이가 글짓기에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했다. 그런데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지 않고 기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뜻밖이다.
성장기에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이 소설가나 시인이 될 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6살 때 쓴 동시를 당시 생존해 계신 소설가 정비석 선생께서 보시고 극찬을 해 주신 일도 있다. 고등학생 때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 댁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당시 김 선생은 중앙대 예술대학장이셨는데 4년간 장학금을 줄 테니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라는 제안을 주셔서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사실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에밀 졸라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정말 훌륭한 작품을 쓰려면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동딸로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법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실현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희망대로 법대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대신 불어를 전공하면 프랑스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성당 신부님 말씀을 좇아 문과대학에 들어갔고 2학년 때 불문학과를 선택했다. 덕분에 특파원으로 유럽에 살게 되는 기회도 맞이했다. 그런데 그게 다 운명인 것 같다. 언젠가 사람의 전생을 들여다본다는 어느 도사가 그러더라. 내가 전생에 유럽 어느 왕국의 귀족이었다고. 하하하.

 

2012년 방한한 네덜란드 왕세자와 함께.

 

도사 얘기가 재미있다. 근래 명리학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이다. 기자는 눈에 보이는 실체와 사실만을 추적하는 직업인이다. 기자생활을 떠나 나이가 들면서부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남달리 많았다. 프랑스의 점성학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종말론에 호기심을 느껴 대학 4학년 때 그의 책 <제세기들> 번역작업에 참가한 적도 있다.

 

결국 그의 예언은 빗나간 것 아닌가?
지구 종말 예언 시기로 알려진 1999년 7월이 막 지난 1999년 8월 11일에 유럽은 잠시 그의 말이 적중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개기일식(皆旣日蝕)이 일어난 것이다. 해석에 따라 내용도 달라지는데 미국의 천문학자는 종말의 시기가 3076년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중 맞는 부문도 많았다. 그중 하나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이 등장해 질병이 창궐할 거라는 대목은 동성애와 에이즈의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점성술이나 동양의 역술이 모두 과학이나 학문 밖의 저급문화로 불신을 받았던 것은 정확성이 없었던 탓이 아닌가?
나는 동양 인문학의 뿌리가 음양오행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음양오행에 기본을 두고 우주만물의 움직임을 논한 주역이나 천체 관찰에 토대를 둔 서양의 점성학은 서로 통하는 게 많다. 유럽에서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라틴 유럽 쪽은 신비주의 적 전통이 강한 편이다.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은 미녀 점성술사를 공식적인 자리에 두고 자문을 받았다.
특히 파리5대학 미셸 마페졸리 교수는 자신의 제자인 여성 점성술사가 쓴 9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점성학 연구 논문을 최우수 박사 학위 논문으로 선정해 학계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17세기까지는 점성학이 천문학 사회학과 나란히 학문의 주류에 포함되었으나 프랑스에서 역사상 명재상으로 꼽는 리셜리외가 ‘점성학은 학문이 아니다’고 선언하면서부터 학문적 가치가 추락됐다. 파리 특파원 시절 미셸 마페졸리 교수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는데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세계의 재주술화(再呪術化)’라고 본다. 모더니즘의 이성만능주의가 세상에서 신비주의와 비합리성을 몰아냈다면 인터넷과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고대의 전통과 첨단기술을 결합하고 동서양의 신비주의가 교차하고 소통하면서 인류가 다시 마법에 걸려들었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사회학자로 한국에도 그의 제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는 일상생활을 학문의 영역에 끌어들여 파리 5대학에 일상성 연구소를 설립했다. 파리 대학가에 있는 그의 작은 아파트는 책의 창고였다. 사방 벽에 책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물건이 있었다. 인간의 진짜 해골이 책상위에 놓여 있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항상 상기하기 위해서라는데 인간의 존재가 헛된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겸손하게 살게 하는 깨달음을 준다고 설명했다.

 

요르단 알카즈네에서.
  

 

이제 비교문화학이라는 전공분야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선택배경이나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현재 대학에서 문화, 경영, 비교문화경영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가톨릭대로 옮겨오기 전 고려대와 건국대, 성균관대 등에서는 유럽문화의 이해, 아시아문화의 이해, 유럽음식문화와 축제, 럭셔리 마케팅, 국제조직관리 등을 강의했다. 모두 비교문화적  접근과 관련된 학문이다.
동아일보 파리주재 유럽 특파원 시절에 유럽 문화를 체험하고 취재하며 기사를 썼지만 모교인 고려대에서 불문학, 정치학, 비교문화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주립대에서도 기술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는 등 한국과 미국, 유럽 지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동안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시각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두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이 익숙한 일과가 됐다. 박사 논문도 ‘럭셔리 브랜드의 원산지 효과연구’라는 제목인데 비교문화의 시각에서 다룬 연구물이다. 내가 틈틈이 발표한 책 중에 최근에 내놓은 <문화로 세상읽기>외에도 <지도로 만나는 세계친구들> <80일간의 세계일주-한 가지 이야기, 백가지 상식> 등 다문화 체험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신문사에서 대학으로 온 뒤 10여 년간 문화비교 칼럼을 동아닷컴 등 매체에 게재해왔다.

 

문화는 인간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변화시키고 이끌어가는 배경이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문화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하는 사례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인터넷 검색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구글이야말로 국경개념 없이 세계인을 한곳으로 불러모으고 이끌어 가는, 21세기의 대표적인 문화권력이라고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구글의 성공배경에는 ‘버닝맨 페스티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절을 앞두고 매년 8월말 네바다주 사막에서 일주일 동안 전 세계 6만 9000명이 몰려들어 자유롭게 온갖 퍼포먼스를 벌이는 축제다. 이 행사는 상업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창조, 자유, 무소유’라는 이상적인 주제를 내걸고 국경을 잊은 문화의 경계인들이 신나게 자신들이 가져온 문화를 나누고 느끼는 열정의 잔치로 진행된다. 구글의 기업문화가 축제를 토대로 하고 있고 그 축제문화가 인터넷으로 이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서 <문화로 세상읽기>를 보면 각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개념의 문화 메타포(Metaphor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나라와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사업도 쉽게 풀어가려면 그 나라의 문화 메타포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메릴랜드대 마틴 개논 교수가 제시한 개념인데 경영학 이론이라고 하기엔 지극히 일반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문화 메타포는 포도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투우, 한국은 김치, 브라질은 삼바, 미국은 미식축구, 이스라엘은 키부츠와 모샤브, 독일은 심포니, 이탈리아는 오페라, 역국은 벽돌집, 태국은 왕실, 중국은 집안에 모신 제단, 러시아는 발레, 인도는 시바춤, 일본은 정원, 터키는 커피하우스, 아일랜드는 고유 언어인 게일어이다.

 

미국은 카우보이나 야구가 문화의 상징 같은데, 미식축구인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의 경기인데 그중 여론조사나 TV시청률을 통해서 보면 단연 미식축구가 최고 인기종목으로 꼽힌다.


인터넷시대가 만든 문화가 소통과 참여, 공존 공유문화다. 그야말로 온라인으로 실시간의 정보교류가 지구촌을 한마당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물론이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진보하고 정보통신 기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점점 더 소통은 힘들어지고 있다. 정보를 교환하면 할수록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이 더 현저하게 드러나고 협상의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정보공유는 빛의 속도로 빨라졌는데 그만큼 빠른 속도로 오해도 증가하고 있다. 소통을 하면 할수록 불통이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정보와 소통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 소통했다고 볼 수 없다. 수신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보는 사회적 문화적 계층간이나 인종간에 오해와 불신, 증오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도 소통의 시대가 불통이 되어 일어난 사태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도미니크 볼통의 주장이다.

 

대안을 생각해 본다면?
정보의 세계화와 소통의 세계화는 다른 문제이다. 더 많은 정보가 쏟아질수록 쏟아지는 정보를 가려내는 역할이 중요하다. 정보를 분류하고 서열화하고 검증, 해석, 정당화, 비판 등에 관련해 미디어를 움직이는 시스템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대표적인 감시 기능을 가져야한다. 정보의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그 정보를 이해시키면서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필요한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느림이다. 빠름은 기술의 시간이고 느림은 인간의 시간이다. 소통은 곧 공존이다.

 

윤동주기념관을 방문한 김세원 교수.

 

기자활동과 유학 등으로 많은 나라를 방문하고 머무는 동안 인습의 차이로 겪은 문화 충격이나 에피소드가 많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프랑스의 인사법인 비즈(bise)와 마주쳤던 일이다. 1990년대 초 로이터 장학생으로 프랑스 보르드에 1년간 연수를 가게 됐을 때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외간남자가 바짝 다가와 태연하게 내 양쪽 뺨에 번갈아 몇차례 뽀뽀를 해와 기절할 뻔했다. 지역에 따라 네 번까지 뽀뽀 인사를 나누는 프랑스의 인사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 뒤 영국으로 MBA유학을 갔을 때는 내가 먼저 처음 만난 남자에게 프랑스식 인사를 하려다가 상대 남자가 뒤로 물러서면서 악수를 청해 당황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인사 뿐 아니라 지하철을 타도 신체 접촉에 관대한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최대한 접촉을 피하게 하는 공간 구성부터 프랑스와 다른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정치부 기자와 유럽 특파원으로 활동할 때 보람을 느낀 순간도 많았겠다.
매년 1월말부터 2월초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 경제포럼 연차총회에 3년 연속으로 참석했던 일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1999년 1월은 취리히에서 다보스행 셔틀버스를 탔는데 도중에 폭설에 갇혀 좁은 차안에서 7시간 동안 세계적인 명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 노벨문학상의 작가인 나이지리아 작가 올레 소잉카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발행인, 뉴스위크 사장 등 국제적 명사들과 긴 시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건 서곡이었다. 회담장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미국을 움직이는 CNN설립자 테드 터너, 조지 소로스와 빌 게이츠,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등 만나기 힘든 당대의 명사들을 한 장소에서 고루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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