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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7/17 17:21:34  육홍타




[인터뷰 상] 신무협의 시작, 기념비적 무협소설 ‘태극문’ 작가 용대운
“난 무협소설 1세대의 막내이자 2세대의 선배”


용대운 작가.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육홍타】한국 무협소설은 흔히 구무협과 신무협으로 대별된다. 그 구별점이 바로 용대운(본명 최승룡·53)의 <태극문>이다. <태극문>이 출간된 지 올해로 20년. 이 기념비적인 작품의 20주년을 맞아 그를 따르는 후배작가들은 이를 기리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연재중인 대작 <군림천하>가 안 풀려 일년 넘게 연재를 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우선 <태극문> 20주년을 맞는 소감부터.
<태극문>이 출간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저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동료 작가인 좌백이 말해주는 바람에 비로소 생각이 났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이 물처럼 흘러간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심정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별다른 성과도 없는 것 같고 작품 활동도 지지부진해서 덧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국내 무협계의 상황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태극문>이 출간될 당시에는 국내에서 무협소설을 쓰는 사람은 제가 있던 뫼출판사의 습작생들 몇과 저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작가들 수도 많이 늘었고 작품 환경도 엄청나게 달라졌지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서적 출판뿐이었던 시장이 인터넷 이북 시장을 거쳐 현재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앱 소설과 인터넷 유료연재가 대세가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무협의 저변이 넓어진 것은 정말 기쁘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쉽게 등단하고 쉽게 출판해서인지 작품의 질적인 수준과 작가의 역량이 그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듭니다. 그러한 조류에 선배작가로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왜 무협을 쓰시나요? ‘왜’ 무협을 쓰는가와 왜 ‘무협’을 쓰는가 하는 두 개의 질문입니다.
좌백이 처녀작인 ‘대도오’의 서문에서 말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더 이상 읽을 무협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무협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아마도 대다수 작가들의 심정이나 상황도 이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무협소설을 좋아하고 탐독하던 애독자로서 읽을 만한 무협이 거의 없어지자 마음속으로 조금씩 구상했던 생각들을 제대로 풀어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었지요. 단순히 읽기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상하고 꿈꿔왔던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 ‘이런 주인공이 있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다른 작품들은 늘 이런 식의 전개가 되는데, 좀 더 신선하고 내 입맛에 맞는 내용전개는 없을까?’라는 마음속의 크고 작은 욕구들을 자기 손으로 하나씩 해결해가는 재미는 정말 각별합니다.
특히 중국 번역무협이나 1세대 창작무협에서 느꼈던 어떤 아쉬움과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면 하고 많은 장르 중에서 하필이면 왜 ‘무협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그 점에 대해서는 무협소설이 다른 어떤 장르보다 더 재미있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소싯적에 추리소설과 SF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당시에 국내에 출간되었던 대부분의 추리소설과 SF를 섭렵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무협소설을 접하게 되었지요. 추리소설이나 SF도 물론 좋았지만, 생각의 무한대를 경험할 수 있고 짜릿한 말초적 욕구까지 해결해주는 무협소설은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특히 한 권이나 두 권에서 끝나는 추리물과는 달리 무협은 장편 서사적인 면이 있다는 것도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만큼 활동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이 넓어졌다는 뜻이니까요.
특히 내가 할 수 없고 해보지 못한 일들을 주인공을 통해 마음껏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현대와는 달리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원초적인 면도 있고, 일부일처가 아닌 수많은 미녀들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흡족했습니다.
무엇보다 추리물이나 SF와는 달리 동양적인 세계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 있지만 지금은 가볼 수 없는 고대의 중국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좁은 한반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우리와는 달리 드넓은 중원과 변황, 광활한 초원을 무대로 마음껏 움직이고 활동하는 공간적 배경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간략하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무협’을 쓰게 되었냐고요? 무협소설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원초적인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왜’ 무협을 쓰게 되었냐고요? 그 욕망을 제 마음에 들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쓰시는지도 알려 주시지요.
저의 소설작법은 별다른 게 없습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문학을 배웠던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건축과 출신이라 무협을 쓰기 전에는 전혀 글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많이 했지요.
습작 시절 몇 번의 방황 끝에 제가 생각한 방법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에 드는 문장을 흉내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레이몬드 챈들러, 더쉴 해미트 같은 하드보일드 작가들의 문장을 여러 번 옮겨 적어보고, 고룡의 문장도 몇 번이나 흉내 냈습니다. 몇 년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조금씩 저만의 문장이 만들어지더군요. 대신에 그 때문에 그들의 아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태극문>을 쓰면서부터 그들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 노력했고, <독보건곤>을 쓰면서 그들의 냄새를 많이 지웠습니다. <군림천하>에서는 이제 그들의 영향을 상당부분 벗어났다고 스스로도 말할 수 있겠군요.

스토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짧은 단상들을 조금씩 키워가는 식으로 구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구상에 어울리는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일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무협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상의 고대 중국’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중원을 비롯한 천하’라는 공간적 배경은 무한히 넓은 것 같지만 수십 년간 수많은 무협소설이 등장하면서 그 안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는 모두 나온 상태입니다. 아무리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스토리라도 기존에 나왔던 소설의 변주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말이지요.
무협 독자들이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는 무협 작가들이 이미 대부분 끄집어냈습니다. 누군가가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정말 참신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입니다. 자신이 쓰는 모든 이야기들을 그런 식의 전인미답의 이야기로 점철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무협소설의 스토리란 누군가가 끄집어내었던 것을 자신만의 색깔로 새롭게 포장해서 내놓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차별을 주고 자기만의 형식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사람들의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 스토리를 짜면 그 스토리에 가장 어울릴 만한 인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기본을 중시하는 <태극문> 같은 경우에는 진중하고 약간은 고지식한 조자건이라는 인물을, 처절한 복수극과 실전무예를 표방하는 <독보건곤> 같은 경우에는 살기 짙고 냉혹한 노독행을, 그리고 무너진 문파를 일으켜 세우는 <군림천하>에는 인내심 많고 생각이 깊은 진산월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갖추어진 다음에는 그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글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태극문>의 시작은 친구를 위해 결투에 나서는 조자건의 모습을, <독보건곤>에서는 아버지의 생일선물을 위해 맹수를 사냥하는 노독행의 모습을, <군림천하>에서는 장례식을 끝내고 사제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잔치를 벌이는 진산월을 각각 작품의 시작으로 집어넣은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일단 시작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짜여진 스토리에 따라 각각의 캐릭터들이 알아서 움직입니다.
간혹 캐릭터와 스토리가 상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예외 없이 스토리를 고칩니다. 한번이라도 캐릭터를 수정하거나 바꾸게 되면 그 캐릭터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품 내용이 굴러가면 어느새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간혹 너무 높은 턱을 만나거나 깊은 수렁에 빠지면 오랫동안 헤매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하하하.

 

2004년 뫼출판사 시절 동료작가들과 운남 여행중 대리의 삼탑사 앞에서.

 

무협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위에 언급했던 “왜 ‘무협’을 쓰느냐”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가상의 고대 중국’이라는, 기계문명을 철저히 배제한 특정한 시대에 ‘구주팔황과 사해오호를 아우르는 강호’라는 거대한 공간을 무대로 현대의 법과 인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성, 그로 인해 맛볼 수 있는 극한의 대리만족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고, 많은 걸 누릴 수 있으며,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할 수 있는 거지요. 가보지도 못하고 지금은 갈수도 없지만, 반면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예측도 가능한 세계라는 것이 더욱 그러한 점을 강하게 한다고 봅니다.

 

작가로서 소명의식 같은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가 작가로서 처음 제대로 된 소명의식을 느낀 것은 <태극문>을 쓰면서였습니다. 그전에 <마검패검>부터 ‘왕’ 시리즈(<도왕> <권왕> <검왕>)까지는 솔직히 제가 작가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의 시선이나 상황도 그렇고, 무협소설은 결국 잠깐 쓰고 마는 것이지 이걸로 평생을 먹고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왕’ 시리즈 이후 3년의 공백기간을 가졌다가 다시 돌아와 <태극문>을 쓰면서 저 자신의 그러한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과, 무너진 무협계를 내가 일으켜 보겠다는 작은 욕심이 머리를 들었던 거죠. 그런 생각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태극문 2부>에서부터였습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썼던 문장도 내 나름의 맛을 내기 위해 좀 더 신경을 썼고, 표현방식도 저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독자들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예전 작품들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던 <태극문 1부>에 비해 <태극문 2부>에서는 여러 가지 저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이나 구성전개가 등장을 합니다. 그러한 의식 하에 이후에 집필한 <강호무뢰한>과 <독보건곤>에서는 더욱 그러한 색채가 강하게 일어나지요.

소명의식이란 게 특별히 대단하거나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 중국무협을 흉내 내거나 제가 좋아했고 재미있게 읽었던 기존 작품들의 변주에 불과했던 무협소설을 좀 더 개성적이고 독창적으로 써보자고 마음먹은 겁니다. 특히 ‘중국 색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컸습니다. 무협소설이 비록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인이 쓰고 한국인이 읽는다면 굳이 중국적인 사고방식대로 이야기가 전개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지요. 무대는 비록 ‘고대의 중국’이고 등장하는 사람도 ‘고대의 중국인’들이지만, 그들의 행동양식과 대화, 생각은 철저히 ‘현대의 한국’적입니다. 결국 우리가 쓰는 무협의 무대란 ‘가상’의 중국이고 등장인물들 또한 ‘가상’의 중국인이니 ‘현실’의 중국과 ‘현실’의 중국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행동양식과 생각은 ‘현대’의 한국인들과 아주 유사하거나 상당부분 똑같지요.
당시 국내무협의 시장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이를 부흥시켜야 할 책임감과 목표의식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태극문> 출간 이후 제가 뫼출판사의 무협팀장을 맡게 되었는데, 제 밑으로 많은 습작생들이 모여들자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저만의 색깔을 가진 무협을 쓰되, 그것으로 무너진 무협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과 어쩔 수 없는 주변 상황이 그러한 소명의식의 주체가 된 겁니다.
저는 1세대 작가들의 제일 막내격이고, 2세대 작가들의 가장 선배격입니다. 그러한 저의 입지가 무거운 책임감이 되어 오랫동안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1세대와 2세대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그러한 소명의식마저 없었다면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를 믿고 따라준 뫼 시절의 동료작가들에게 지금도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2005년 구채구의 낙일랑 폭포 앞에서

 

대학 시절에 이미 습작 사무실에 몸담았던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무협소설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읽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대본소에서 무협소설을 읽다가 책 뒤에 ‘무협작가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79년이었는데, 당시에 금룡출판사에서 나온 무협소설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마달, 금강, 유랑, 홍련자 등의 작가들이 막 등장하여 무협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작가모집 문구에 홀린 사람처럼 전화를 했고, 신촌의 뒷골목에 있는 작가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한 달 정도 하다가 “너는 정말 글을 못 쓰는구나. 내 생각에 너는 작가란 직업과 안 맞는 것 같다.”라는 습작 동료의 진지한 충고에 결국 사무실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설계사무실을 몇 달 다니다가 일도 적성에 안 맞고 무엇보다 너무나 박봉이라 때려치우고 다시 습작사무실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 청운하씨와 해천인씨가 실장으로 있던 사무실에서 6개월 정도 습작을 했는데, 당시의 동료가 “당신은 문장이 너무 형편없으니 정 글이 쓰고 싶으면 스토리작가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아서 엉망인 문장실력을 키우기 위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서 좋은 문장을 옮겨 적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문장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대신 오랫동안 특정작가의 아류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사무실에서 습작으로 썼던 작품이 두 개가 있었는데, 첫 작품은 40만원에 팔았고, 두 번째 작품은 28만원을 받았습니다. 도저히 생활이 안 될 정도로 고료가 떨어져서 결국 사무실을 그만두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 40만원을 받았던 작품은 <낙성무제>라는 제목에 중국인 작가의 작품으로 출간이 되었더군요. 28만원짜리 작품은 아직도 제목을 모릅니다. 듣기로는 작품이 너무 엉망이라 절반 이상을 뜯어고치고 제목도 바꿔서 출간되었다고 하더군요.

 

‘용대운 프로’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1997년에 뫼출판사와의 계약이 끝나 프리가 되었을 때, 대명종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에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울 때라 돈도 좀 궁했고, 마음 놓고 창작활동과 신인작가 육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대명종출판사와 장기 계약을 했는데, 제가 워낙 과작이라서 출판사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제 이름으로 좀 더 많은 작품을 출간하길 원했습니다.
또 당시 시장 상황이 썩 좋지 않아 신인의 고료와 저의 고료가 몇 배나 차이가 나서 제 사무실에서 습작을 하는 후배작가들의 진로나 생계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대차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용대운 프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제가 지도했던 습작품들에 대해 공저 형식으로 출간을 하고 최대한의 고료를 보장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시 사무실에 열 명에 가까운 신인들이 습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공저 형식을 원하지 않는 작가들은 자기 필명으로 출간을 하고, 좀 더 많은 고료를 원하는 작가들은 공저 형식으로 출간을 했습니다. 대략 십여 개의 작품을 공저 형식으로 출간한 것 같은데,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공저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게 되고, 판매부수도 많이 떨어져서 원하는 만큼의 고료를 맞추기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또 습작생들의 작업이 지지부진해서 작품 수도 현격히 떨어져서 출판사 입장에서도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몇 년 만에 양자 합의하에 ‘용대운 프로’라는 브랜드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이름을 걸고 만든 브랜드라서 애착이 많았지만 능력 부족과 여러 가지 시행착오로 인해 제대로 성과를 보지 못하고 끝을 맺게 되어 지금도 상당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울러 당시에 함께 사무실에서 동고동락을 했던 신인작가들에게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와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계속>


육홍타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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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홍타

전문 인터뷰어.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했다.
다양한 장르와 대중문화 개화기 이전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천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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