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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11/17 11:18:30  김두호




[그때 그인터뷰] '공주는 못말려' 김자옥 부녀가 고백한 은밀한 추억들
무대 위의 천부적 요정


 


배우 김자옥이 향년 63세로 16일 세상을 떠났다. 자그마한 몸집이지만 한국배우사에 큰 자취를 남긴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인터뷰365에서는 고인을 기리며 예전 게재했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싣는다. 기사 속에서 여전히 밝고 건강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김자옥을 만난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김두호] 탤런트 김자옥은 미모사 같이 아주 섬세한 감성의 연기파다. 좀 더 수식을 하면 연기로 드러내는 언어와 동작의 표현 파장이 다른 연기자보다 치밀하고 예민해 살짝 닿아도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풀잎의 이슬 같이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내이름은 김삼순> <굳세어라 금순아> 등 TV드라마에서 김자옥은 이제 주역자리를 젊은 후배들에게 내놓고 조연 연기자가 되었지만 공백없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SBS <일지매> 후속으로 7월 30일부터 방송될 새드라마 <워킹맘 친정맘>에서도 염정아의 새엄마 역으로 출연한다. 언젠가 김자옥은 오락 예능프로에 출연해 공주 캐릭터로 시청자를 웃기면서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태진아의 권유로 <공주는 외로워>를 부르며 고통을 잊었다고 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사랑의 신과 같았다.


 명연기자로 꼽히는 김자옥의 예민하고 부드러운 감수성은 아버지를 닮았다. 필자는 고인이 된 김자옥의 아버지 김상화 시인을 잘 알고 있다. 기자 시절 충무로로 가는 길에 중앙극장의 임원으로 재직하던 그를 만나면 화제는 주로 딸의 이야기였다. 그가 딸 자옥이를 키우며 자장가처럼 들려 준 자작시가 있다.


 


콩알만한 우리 자옥이

쪼그마한 내 딸 자옥이

바람이 불면 어쩌나

굴다가 구르다가 다칠라

자옥이 가는 길에 아픔이 없어라

사뿐사뿐 꿈을 밟고 가거라....


김 시인은 무명시인이었지만 평생 시를 쓰며 자신이 시인인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김자옥은 피난을 갔던 부산에서 아버지가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있던 1950년에 셋째 딸로 출생했다.


아버지가 잊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자옥은 아장아장 걷고부터 재롱을 피워 집안의 인기를 독점했다. 아마도 공주병은 유년기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유난히 빨간 사과를 좋아해 사과를 입에 물고 자랐고 진흙탕에서 아이들과 뒹굴다가 들어오면 아버지가 “콩알만한 자옥이 기침하면 어떡하나”라는 말을 노래처럼 들려주며 세숫대야에 집어넣어 목욕을 시켜주었다. 백일해를 위험할 정도로 치루고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서울로 이주했다.


이쯤에서 필자에게 들려준 딸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김자옥은 “우리 아빤 운명론자”라고 말했다. 인간의 행, 불행을 운명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그녀도 곧잘 운명론에 빠지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외로울 때 딸의 손목을 잡고 자주 영화관을 찾았다. 연기를 보고 음악을 듣고 자라면서 조숙한 아이가 된 김자옥은 서울교대부속초등학교 시절에 기독교방송의 어린이 성우로 뽑혀 연예인 소질을 스스로 확인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사춘기적 증세도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찾아와 여고 시절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고백했었다.


 


“소외감 속에 혼자 있는 고독을 즐기고 비오는 날 이유 없이 비옷을 걸치고 빗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허무감과 우울증에 빠질 때가 많았다. 나뭇잎 지는 가을 숲만 봐도 눈물이 핑도는 시기도 있었다. 그런 방황기에 위안을 준 사람이 배우나 가수들이었다.”


이미자의 <황포돗대>가 한창 유행일 때 그 노래를 부르고 배우 이민자가 좋아서 사진을 신주처럼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녀의 별난 사춘기병을 추억하는 특이한 사례가 있다. 배화여고 시절 자옥은 죽음을 생각하는 염세성 사춘기를 맞았다. 그 무렵 학교 뒷산(인왕산)에서 여학생에게 실연한 남학생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리를 전해 들었다. 비가 구성지게 내리는 여름날 하오 교실을 빠져나간 자옥은 무턱대고 한 시간을 산속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가마니로 덮인 시신을 확인했다.


“내가 그 남자를 버린 여자일지 모른다는 착각 속에 죽은 남자에 대한 연민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두 다리만 보였고 머리 쪽에 한 쌍의 목각인형이 뒹굴고 있었다. 유서 같은 쪽지도 있었던 것 같지만 접근하지 못하고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한테 그 학생을 버려두면 어떡하느냐고 매달렸다. 한동안 그것이 악몽처럼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때 자옥은 그렇게 지옥같은 사춘기 열병을 앓았다.

세상에서 김자옥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아버지는 딸을 “연기무대의 천부적인 요정이면서 운명적인 사랑의 여자”로 평했다. 이제 그녀는 가수 오승근의 행복한 아내로 살고 있다. 모두가 그녀의 기억 속에 지워져 가는 젊은 날의 이야기들이다.

그러고 보니 김자옥은 올해 58세로 필자가 만나던 시절의 아버지 나이또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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