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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03/10 21:58:44  김다인




[인터뷰] 혼자서 터벅터벅, 산티아고 길을 8번 걸은 도보여행자 김효선


스웨덴 쿵스레덴에서 김효선씨. 사진=김효선

 

【인터뷰365 김다인】산티아고 가는 길,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길이다. 그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 온갖 세상 잡사를 잊고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얻을 것 같고, 손안에 가득 쥐었던 허망한 것들을 길 위에 흩뿌리고 가볍게 돌아올 것만 같다. 걷기만 한다면...
김효선 씨는 그 길을 여덟 번이나 걸었다. 혼자서 세 번, 다른 동행들을 안내하며 다섯 번. 그 길에 처음 나섰을 때 그는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평범한 아줌마였다. 두 아이를 공부시키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스스로는 아이들 학습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이였다.
그에게는 열망이 있었다, 그 길을 걸어 보고자 하는. 저 길을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섰다. 여덟 차례 산티아고 길을 걸은 김효선 씨는 지금은 ‘산타아고 전문가’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그 길의 맛과 뜻을 전해주는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있다.
최근 ‘산티아고 가는 길’ 3부작 개정판을 낸 김효선 씨는 인터뷰 약속을 한 날 검은 재킷에 7부 통바지, 블랙 앤 레드 머플러, 모자, 선글라스에 붉은빛 옥스퍼드화를 신고 나타났다.

 

이렇게 멋지게 차려 입고 올 줄 알았으면 사진기자를 대동할 걸 그랬다.(사진이 평이할까봐,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골라 달라 하고 별도의 인터뷰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했었다.)
하하. 요즘은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물이 나서.

 

지금은 한국 체류 중인가.
일년에 4개월 정도는 한국에 있고 나머지는 두 아이가 있는 미국에 있거나 여행을 간다.

 

누구나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산티아고 길은 어떻게 가게 됐나.
브라질에 사는 언니의 친구가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왔는데 친구들이 그 일을 기념해 책을 한 권 만들어줬다. 나이 육십에 접어든 평범한 언니가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짤막하게 쓴 순례의 기록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 즉시 산티아고 길을 공부했다.
당시는 산티아고 관련 책이 많지 않아 미국에서 영어책을 펼쳐놓고 사전을 찾아가며 하루 12시간씩 공부했다. 아이들이 “그 정도로 공부했으면 사시 3개는 패스했겠다”고 놀릴 정도였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또 누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산티아고 길을 떠나기 전 여행을 많이 했나.
내 직업이 아이들 학습프로그래머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궁금한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 그걸 이유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상징인 조개 앞에서(사진 왼쪽), 마침내 산티아고 도심을 들어서며(오른쪽). 사진=김효선

 

산티아고 길을 처음 걸은 것은 언제였나.
2006년 봄이다. 스페인 북부와 동부를 가로지르는 프랑스 길을 걸었고 이어서 땅끝마을 피니스테레까지 완주했다. 산책 정도 다니다가 첫 먼길을 걸은 것은 산티아고가 처음이었다.

 

이후 일곱 번은 다른 루트를 걸은 것인가.
산티아고 길은 여러 지류가 모여들어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듯 유럽 각지에서 시작된다. 마드리드 로마 파리 암스테르담 등 도처에서 걷기 시작해 산티아고를 향한다. 프랑스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가는 프랑스 길, 스페인 세비아에서 출발하는 플라타 길, 그리고 리스보아에서 출발하는 포르투갈 길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프랑스 길을 처음 걸었다. 나폴레옹처럼 피레네산맥을 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루트로 피레네를 넘은 후 산티아고까지 약 800㎞를 걸었고 반도의 서쪽 끝 피니스테레까지 87㎞를 더 걸었다.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36일이 걸렸고 총 여행일수는 50일이었다.
2008년 봄에는 플라타 길을 걸었고, 가을에는 다시 프랑스 길을 걸었다. 2년새 세 번이나 산티아고 길을 걸은 것이다. 2009년에는 포르투갈 길을 걸었고, 이후 2011, 2012년 등 다른 분들의 가이드 역할로 다시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다.

 

어떤 사람들과 동행했나.
함께 다녀온 분들 중에는 사진작가 배병우 교수, 김훈 작가 등이 있다. 김훈 작가와는 사이클선수들이 포함된 자전거 여행이었는데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차로 이동했다. 대신 그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리드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처음 걸은 프랑스 길 이야기를 해달라.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해 몽파르나스역에서 테제베를 타고 비욘에 도착했다. 비욘에 가면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만났는데, 마치 수학여행 온 듯 들떠서 초면인데도 서로 금세 친해졌다. 비욘에서 기차를 타고 생장 피드 포르에 도착하면 좁은 골목길 끝에 순례자협회 사무실이 있다. 그곳에서 순례자증명서를 발급받는데, 이 증명서는 산티아고 가는 길 내내 요긴하게 쓰이는 일종의 신분증이다.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에도 이 증명서가 있어야 묵을 수 있고, 걷는 곳곳마다 여기에 스탬프를 받아야 걸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당시 산티아고 길을 걸은 한국인은 몇 명이나 됐나.
협회 사무실 게시판을 보니 2005년 산티아고 길을 걸은 한국인은 14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본인은 약 200명, 독일 프랑스인이 가장 많았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인들이 많았다.

 

길을 걸을 때 무슨 생각을 하나.
처음에는 생각이 많다가 차츰 생각이 없어지고 걷는 데만 집중하게 된다. 끝이 안 보이게 이어진 길을 보면 마치 스타킹 신은 여자가 안갯속에서 유혹하는 것 같다. 걸으면서는 내 자신이 점점 온화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첫 여행이 아주 좋았다.

 

걷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날 텐데,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면.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헤니와 얀이 기억에 남는다. 남매인데 60대인 헤니는 유방암 환자였다. 헤니가 산티아고 길을 가고 싶다고 하자 얀이 휴가를 내고 동행한 것이다. 아쉽게도, 같은 병으로 투병하던 헤니 친구의 사망 소식에 이들 남매는 중간에 돌아갔다. 또 뇌졸중을 앓은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도 기억에 남는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줄곧 보살피며 걸었다. 내가 그 할머니 마사지도 해드렸다.
중간중간 알베르게에서 묵을 때면 저마다 몸 관리를 하고 빨래도 한다. 발에 물집이 잡혀 있거나 하면 다음날 걷기 힘들다. 나는 가지고 간 실과 바늘로 다른 순례자들의 물집을 따고 곪지 않도록 연고도 발라줬다. 그래서 ‘물집 닥터’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다행히도 난 물집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다.

 

산티아고 길 완주증명서를 받고 기뻐하는 김효선 씨. 사진=김효선

 

주부로서 여행 경비 마련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두 딸이 미국 유학을 했던 상황이라면.
여태껏 여행 경비는 내 스스로 만든 비자금으로 해결했다. 아, 이런 사실을 딸들이나 남편이 알면 배신감 느낄 텐데,,,(웃음) 비자금을 만든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결혼 후 아버지께서 “복은 만드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그날 바로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그후 3만원 5만원 때로는 10만원씩 15년 동안 꾸준히 적금을 들었다. 난 적금의 달인이다.
때로는 돈이 급히 필요할 때도 있었다. 아이 둘이 미국 유학생활을 해서 더 그랬다. 하지만 IMF 때도 적금을 깨지 않았다. 가족이 들으면 배신감 느낄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결국 그 적금 덕에 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을 갈 수 있었다.

 

혼자서 길 떠날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에 '걱정 트랩'을 먼저 설치해 놓을 필요도 없다. 가서 당하지 않고 걱정만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첫 걸음을 뗐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려면 행장을 어떻게 꾸려야 하나.
가볍게 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저것 배낭에 잔뜩 넣어온 사람들은 걷는 중간에 버리기도 한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살 수 있으니 돈만 가져가면 된다. 꼭 필요한 것은 침낭이다. 알베르게에서 묵을 때도 개인 침낭이 필요하다. 거기에 발에 익숙한 신발, 슬리퍼, 그리고 땀 배출이 잘되는 기능성 양말이 필요하다. 옷은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가 숙소에 묵을 때 빨아 널면 된다. 기후가 좋아 금방 마른다.

 

먹을거리는 어떻게 하나.
사 먹으면 된다. 샌드위치가 6유로(약 3만 원)인데 정말 맛있다. 청담동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심지어 최근에는 컵라면 파는 곳도 생겼다. 여담인데, 클럽도 있다. 난 음악 듣고 간단히 여흥을 즐기는 곳인 줄 알았는데, 공식 매춘도 이뤄진다고 하더라. 놀랍지 않은가, 하하.

 

말을 들으니 관광지화 된 느낌도 든다.
어디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10년 전 처음 갔을 때와 최근은 많이 다르다. 앞사람 뒤통수 보고 걷는다 할 정도로 북적북적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길은 더 이상 가고 싶지 않고, 포르투갈 길을 가고 싶다.
개중에는 산티아고 중독자들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름 자신을 추슬러서 다시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가지만, 그곳에 아예 머무르며 현실 도피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내 생각에는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은퇴한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지만.

 

하루종일 걷고 또 걷는 일에 중독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곳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나.
생각보다 많이 걷지 않는다. 하루 20㎞, 8시간 정도? 새벽 일찍 길을 떠나면 오전이면 숙소에 도착해 쉴 수 있다. 보통 알베리게가 오후 2시쯤 여는데 12시 정도면 배낭이 줄지어 서있다. 일단 짐을 풀면 그 다음부터 뭘 하든 자유다. 길도 걷고 싶으면 걷고 힘들면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된다. 자신이 선택하는 슬로우 라이프다.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 많이 달라져 있다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산티아고 길은 좋다. 혼자서도 놀 수 있는 시간이고 걸으면서 많은 것들이 충족된다. 많지 않은 돈(비행기삯 포함 500만원 정도)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사람들의 온기, 맛있는 음식이 있지 않나. 난 은퇴 후에는 스페인에서 살고 싶다.

 

산티아고 길을 걷기 가장 좋을 때는 언제인가.
가을이다. 봄에는 일기가 고르지 않아 특히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 길을 잃어 죽을 수도 있다.

 

김효선 씨가 혼자 걸은 산티아고 길. 사진=김효선

 

올해 여행 계획은 세웠나.
5월쯤 외국인 친구들과 프랑스 도보여행을 가기로 했다.

 

가족과 함께 갈 계획은 없나.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 두 딸과는 따로 자전거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은 겨울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다.

 

국내에서 산티아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여러 곳에서 강연 섭외도 들어오고 여행 자문을 구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일이 즐거운가.
메일 등을 통해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답변을 다 해준다. 내 책을 보고 산티아고 길을 걷고 왔다는 사람들이 있어 보람도 느낀다. 강연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만만해 보이는 아줌마가 산티아고 길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 체력이 된다면 70세까지 걷고 싶다.

 

김효선 씨는 산티아고 길을 걸은 경험을 사진과 함께 세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리고 일본 도보여행도 책으로 냈다.
그에게서 받은 것은 첫인상의 자유로움, 그리고 마지막 인상은 넉넉함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김효선 씨는 크루즈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노르웨이 입양 한국 여성이 생전 처음 한국에 오기로 했다며 그의 일주일 일정을 자신이 다 책임진다고 했다. 엄마 나라에 절대 가기 싫다던 그 여성이 자신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며,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 노릇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인터뷰365 편집국장,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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