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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03/30 10:05:17  육홍타




[인터뷰] 달이 뜬 달동네를 그리는 화가 엄경근


달동네를 그리는 화가 엄경근.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육홍타】‘그림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너무 거창한 질문이 되겠지만, 적어도 치유해 줄 수는 있는 것 같다.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31일까지 개인전을 열고 있는 엄경근(35)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달동네에서 자란 그가 소재로 삼고 있는 달동네의 모습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다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아늑하다. 그의 그림엔 공간을 장악하는 힘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힘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동네 파출소며 경찰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문제아로 학창시절을 보내셨다고 하는데...(그는 2013년 KBS ‘아침마당’의 스승의 날 특집에 출연해서 자신의 스승과 교사로서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선원이시라 한달에 한번 집에 오셔서 나흘 묵고 떠나시고, 어머니는 새벽에 일하러 나가셨다가 밤에 돌아오시는 상황이다보니 통제가 안 되었던 거죠. 그때는 중학생이 담배 피우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들켜서 라이터를 빼앗기는 대사건을 겪었어요. 중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각반 단체사진에 제가 다 출연합니다. 뒤에 꿇어앉아 있는 모습으로요. 오토바이도 중학교 때부터 탔고...
공고로 진학을 했는데, 가보니 웬만큼 논다는 꼴통들이 다 모였더라구요. 저는 기계치라 기계를 싫어하는데, 맨날 납땜질만 하고 하니까 더 학업에 취미를 못 붙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시 공고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지 못했어요. 그 교복을 입는 순간 낙인이 찍히는 거죠. 미래도 없고, 대학은 꿈도 못 꾸었구요. 그러니 계속 사고나 치고 했지요.

 

그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그렸는데 인기가 있었어요. 중학교 때는 누가 수업시간에 제 만화를 보다가 적발되는 바람에 되게 맞은 적도 있구요. 건전한 내용이었는데도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조폭만화를 그렸더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겁니다. 야간반도 있는 학교였는데, 제가 서랍에 만화를 넣어놓고 가니 야간반 애들이 빨리 다음편 그려달라고 리플도 남기고 그랬어요. 만화가 다른 반도 돌아다녔는데 문제는 얘들이 쉬는 시간에 안 보고 수업시간에 보다가 빼앗긴 거죠. 결국 미술교사인 담임선생님한테 넘어갔어요. 담임선생님이 지하에 있는 미술실로 오라고 해서 잔뜩 겁먹고 갔습니다.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선 이목도 있고 하니까 심하게 때리진 않는데, 지하실은 분위기가 다르거든요. 오토바이 타다 걸려서 엄청 맞은 기억이 있는지라 도망가고 싶더라구요.
미술실에 가니까 선생님이 제 만화를 보고 계시더라구요. 저를 보시고 미술학원 다닌 적이 있냐고 물으시고, 아니라니까 볼펜과 A4 종이를 주고 석고상을 그려보라고 하셨어요. 안 맞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그렸지요. 그랬더니 “미술 한 번 안 해볼래?” 하시더군요.
제가 암말도 못하니까 “네가 미술하면 4년제 대학도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미술 하고 싶다는 야망은 있었지만 4년제 대학 이런 건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미술교사가 되어 칠판을 뒤에 두고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더라구요.
제가 하겠다고 하니 매일 일곱시까지 학교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학교 마치고는 당구장 가지 말고 밤 10시까지 남아서 그림 그릴 수 있겠냐고 하셨습니다. 평소에 9시 10분에, 교문 단속 끝나고 조례 직전에 담 넘어 등교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결석도 안 하고, 술도 안 먹고 말씀하신 대로 그림만 그렸어요.
기초공부를 하면서 석달쯤 지나니까 입시미술로는 한계가 있어서 미술학원을 가야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학원비가 30만 원쯤 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동안 부모님한테 미술 얘기 안 하고 있었는데, 30만 원 내고 미술학원 가야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어 하셨습니다. 엄마가 식당에서 70만 원 받으실 때였으니까요. 뻔한 가정형편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내 주제에 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허락 안 해주신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도 암말 안 하시더군요. 그후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가서, 사고 많이 치면서 살았습니다. 제 별명이 3초였으니까요. 경근이랑 3초 이상 눈 마주치면 무조건 선빵이라고 해서요. 그저 다 시비 걸고 싶고, 부수고 싶고 그러던 시절이었습니다. 뭐, 맞기도 많이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고교 3년간 같은 분이셨는데, 고3 되니 저를 불러서 수강증을 주셨습니다. 아는 미술학원인데 석달치 회비를 냈으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때려치우라고.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석달이 지나고, 회비를 내야 하는데, 마침 아버지가 집에 와 계셨어요. 얼굴 보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밖에서 전화로 “내 미술 시켜주면 안 되나? 미대 말고 사범대 가서 선생님 될게” 했지요.
결국 아버지가 미술 시켜주겠다고 하셔서 학원에 계속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근데 그림만이 아니라 수능도 문제였어요. 수능 보러 가서야 시험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걸 알았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우리 공고에서 최고 득점을 했고, 원했던 경남대 사범대에 운 좋게 합격을 했지요.

 

그림도 그리고 교사의 꿈도 이루셨는데...
임용고시 준비를 했지만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공부 많이 한 게 처음일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채용공고가 나올 때마다 원서를 냈는데, 한군데에서 “공고 내는 거 다 내정자 있는 거니 헛수고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시더라구요. 그 무렵 우울증이 왔어요. 중3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도 했는데,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이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부산자유학교에서 면접 보라고 연락이 온 겁니다. 별 기대 없이 가서, 고등학교 때 사고를 많이 쳤다, 나만큼 그 애들 이해해주고 품어 줄 수 있는 사람 없을 거다, 그렇게 말했더니 교장선생님이 뽑아주셨습니다. 5년간 근무했는데, 그 제자들이 다들 잘 삽니다. 그때 품어주지 못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계신데...
점차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2년에 사표를 내고 나왔어요. 우리집이랑 처갓집이랑 다 발칵 뒤집혔지요. 학교 그만두고 뭐할 거냐고 해서 학교 만들 거라고 했어요. 아내가 힘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만두고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밀어줬거든요.
생계 차원에서 학원 강의를 하다가 새로 내는 학원의 원장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아서 학원을 오픈했습니다. 이제 3년차인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거 같네요. 대안학교인 경남미술학교를 만들려고 개교발표회까지 했는데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습니다. 문제행동 하는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교육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아직도 대안학교 장소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달동네 네번째 이야기' 서울 전시회 팜플렛에 실린 엄 작가의 작품들.
  

 

이제 작품 얘기를 해보죠.
서른 살이 되면 개인전을 하고 싶다고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2011년에 창원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됐습니다. ‘달동네 첫 번째 이야기’라는 제목이었지요. 그후로 매년 개인전이든 2인전이든, 전시회를 했어요. 이번이 ‘달동네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달 위에 달동네 집들을 얹은 것은 언제 착안했는지...
미술교육과를 다녀서 세부전공은 조소였지만 서양화나 한국화도 다 배웠거든요. 3학년 때 보니 내 그림엔 꼭 달이 있더라구요. 초생달 아니면 보름달... 아버지가 음력 보름이면 귀가하셨기 때문에 아버지 얘기를 할 때는 보름달을 그려요. 달 올려다보고 달이 차가고 있으면 아빠 올 때가 가까이 왔다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달동네를 소재로 하니까 달 위에 집을 올려보자고 생각하고 그려보니 처음엔 집들이 입체적이 아니었어요. 차츰 발전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첫 개인전 때는 딱 두 작품만 달위의 집이었지요.

 

2013년 전시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똘이네 창가’에서 창틀에 앉아 있던 태권V가 이번에 일어섰는데...
태권V는 몇 안되는 제 장난감이었습니다. 골목에서 엄마 기다리면서 가로등 밑에서 로봇을 갖고 놀면 든든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태권V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페이크예요. 중앙에 조그맣게 그려진 아버지와 불 켜진 창문의 아이 실루엣을 봐주세요.

 

입체작품들이 늘었는데... (조각 작품과 부조 작품, 내부에 조명을 설치해서 불빛이 흘러나오게 한 작품들이 출품됐다.)
전공인 조소는 답이 안 나오더군요. 너무 손이 가고 재료에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좋은 재료를 찾게 됐어요. 장인어른이 도배일을 하시는데, 기존에 있던 장판을 뜯어내 가져온 거 정리하는 걸 보니 달동네와 딱 매치되는 소재인 겁니다. 본드로 붙여보니 잘 어울리더라구요. 달동네 작품을 브론즈로 하면 의미가 안 살겠지요. 처음엔 폐장판을 사용하다가, 장인어른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셔서 요즘은 새 장판재를 씁니다.

 

유독 푸른색이 많은데...
달동네니까 달을 그려야 하니 밤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파란 바탕이 많습니다. 제가 가로등불에 감성이 폭주하게 돼요. 그런 풍경들 보면, 작은 창문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을 보면 따뜻한 느낌이 들거든요.
푸른색만큼 깊은 색이 없어요. 바다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하고... 부모님들 출근 혹은 퇴근하시는 새벽이기도 하고 밤이기도 하고.

 

서울 전시회에 선보인 엄 작가의 달동네 그림들. 사진=인터뷰365
  

 

정태춘의 ‘서울의 달’과 인연이 깊은 거 같은데...
2013년 부산전시회에서 정태춘의 ‘서울의 달’을 틀어놓고 드로잉 퍼포먼스를 했어요. 제가 제대 후 복학 전에 6개월간 노동일을 했습니다. 봉고차를 타고 이리저리 실려 다녔는데, 현장일을 하시는 연세 있는 분들하고 아버지 같은 정도 느끼고 했지요. 그 봉고차 안에서 ‘서울의 달’을 많이 들었어요. 그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나더군요.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면 이미지들이 막 떠올라요. 비디오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을 정도로요. 그런데 정태춘 노래에도 달이 많이 나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은 분이지요.


‘달동네 네번째 이야기’의 부산전시회가 5월 8일-24일 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초대전으로 열린다. 서울전에 나오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추가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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