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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2/28 00:00:00  정욱




코코샤넬의 영원한 사랑, 아서 케이플
[무대 뒤의 주인공] No.5 보다도 진했던 그들의 사랑 / 정욱


 


[인터뷰365 정욱] 인류 역사를 통틀어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표현해주고 그 아름다움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준 최고의 이름은 바로 ‘샤넬’일 것이다. 숨도 못 쉬게 허리를 바짝 조인 코르셋을 과감하게 벗어내고 예쁜 몸매가 드러나는 좁은 치마와 편안한 자켓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맵시를 뽐내게 해준 그녀의 패션은 그 어떤 혁명보다 강렬하였고 또 아름다웠다.



가브리엘 샤넬. 아름다움의 대명사 샤넬의 화려함과는 달리 어린시절 그녀의 삶은 슬픔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1883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소뮈르 Saumur’ 에서 태어난 샤넬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어려움 속에서 어머니가 죽자 수녀원에 동생들과 함께 버려진다. 물론 이곳에서의 생활은 훗날 샤넬 패션의 기본이 되는 흑백의 조화와 심플한 라인으로 나타나지만 단조롭고 지루한 수녀원에서 생활을 견디다 못한 샤넬은 결국 그곳을 나와 ‘물랭 Moulins’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비로소 세상과 조우한다.



물랭에서 특별한 직업을 갖지 못하던 샤넬은 어린 시절부터 닦아온 노래실력을 무기로 ‘라 로통드 La Rotunde’ 이라는 조그마한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그녀가 자주 부르던 ‘코코가 르로카데로에서 만난 사람 Qui qu’a vu Coco’ 이라는 노래를 통해 샤넬은 ‘코코’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하루하루 뮤직홀에서 삼류가수로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가던 샤넬은 어느 날 부르조아 집안의 아들 ‘에티엔트 발상’ 이라는 첫번째 후원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기회를 갖게 된다. 발상을 통해 프랑스 상류사회를 접하게 된 샤넬은 자신감 있는 옷차림과 개성으로 당시 최고의 미술작가와 소설가, 시인, 배우, 스타일리스트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샤넬의 아름다움과 개성에 매료된 상류사회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주변에 모였으며, 샤넬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꿈꿔온 패션사업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한편 잘나가던 사업가이자 폴로선수였던 ‘아서 케이플’은 어느 날 친구의 초대로 참석한 파티에서 이제 막 상류사회에 첫발을 디딘 샤넬을 만나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는데, 미남에 능력까지 갖춘 케이플을 만난 샤넬도 첫눈에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뛰어난 사업적 능력과 안목을 가진 케이플은 자신의 연인으로 감각적이고 세련된 샤넬의 모습에서 잠재되어있는 능력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적극적으로 그녀의 패션업계 진출을 돕는데, 모자와 의상 디자인 샵으로 처음 패션사업을 시작한 샤넬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고 그녀의 시작을 이끌어 준것도 바로 아서 케이플이었다.



1914년 노르망디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도빌(Deauville)에 문을 연 샤넬의 의상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그녀만의 패션 감각과 뛰어난 센스를 통해 만들어진 모자와 의상을 통해 샤넬의 의상실은 도빌에서 최고의 판매를 올리는 가게가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샤넬에게 위기가 찾아오는데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도빌에 있던 모든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샤넬사업은 아무도 남지 않은 도빌에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케이플은 샤넬의 귀향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곳에 남아 계속 패션사업을 이어가라고 조언한다. 결국 샤넬은 도빌에서 사업을 이어나가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최고급 의상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구매로 샤넬의 사업을 더욱 큰 성공을 얻게 된다. 

        


이렇듯 샤넬은 처음 시작한 패션사업에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그런 그녀에게 케이플은 비아리츠(Biarritz)에서의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며 그녀에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케이플의 도움으로 유럽의 신흥 패션리조트였던 비아리츠에 새로운 의상실을 오픈한 샤넬은 케이플의 예상대로 시작부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고, 당시에 이곳에서 드레스 한 벌을 구입하려면 3000프랑(약 60만원)을 지불해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성공도 샤넬의 야망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아리츠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샤넬은 이듬해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리에 머물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였다. 1914년 처음 6명으로 시작해 이제 3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며 탄탄한 성장을 한 샤넬은 드디어 파리에 자신의 샵을 오픈하고 샤넬이란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되는데, 그 당시 이미 미국을 포함한 많은 곳에서 샤넬의 패션을 카피한 의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으며,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에서도 샤넬을 최고의 디자이너로 소개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샤넬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그런 그녀의 앞길을 가로 막을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언제까지나 그녀의 곁에 머물지 않았다. 1차 대전이 끝나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1919년 12월 21일, 샤넬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자동차광이었던 케이플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깐느로 가다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고로 샤넬은 자신의 영원한 사랑 케이플을 잃게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준 사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 사람을 신뢰하기보다는 의심하고 경계하던 자신을 이해해주고 새로운 삶을 갖게 해준 사람. 이렇게 소중했던 케이플은 한없는 사랑과 신뢰를 전해주고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된다. 여성이 사업가로 회사를 경영하는것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샤넬은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켰으며,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물론 그 모든 성공 뒤에는 그녀의 영원한 사랑 아서 케이플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이후 샤넬은 평생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그들의 성공을 도왔는데, 세계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스트라빈스키, 장 콕토우, 디아길레프 등 당대의 예술가가 그녀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으며 그녀는 항상 그들의 후원자이며 친구로 함께했다. 아서 케이플이 자신에게 주었던 신뢰와 후원을 보답하듯이.



훗날, 샤넬은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패션아이템 <샤넬 No.5>향수를 아서 케이플에게 헌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케이플과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그녀에게 있어 최고의 기쁨이기도 했다. 1971년 1월 10일,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그녀의 새로운 컬렉션 발표를 며칠 앞두고 파리 리츠호텔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녀에게는 케이플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담은 샤넬 No.5가 함께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하고 싶은 그녀의 바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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