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즐겨찾기  l  시작페이지  l  2017.10.22 (일)
 http://interview365.mk.co.kr/news/73147
발행일: 2015/11/06 21:08:25  김두호




[인터뷰] 자연으로 돌아가 췌장암 극복한 자연인 피형준
병원 치료 포기 후 8년째 산속 독거생활


강원도 횡성 주봉산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피형준씨.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상에는 기적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도 많다. 피형준 씨(63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유동리 애고지 마을)는 위암 수술 후 다시 말기암이 췌장으로 전이 되어 병원에서 수술을 포기한 시한부 생명으로 판정받았으나 그길로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산야초를 채취한 초식생활로 8년째 건강하게 살고 있다.

치병(治病)도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몸부림치면 오히려 명이 짧다는 말을 증거해 주는 인물이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대관령이 멀지 않은 둔내 인터체인지에서 횡성의 주봉산 산골로 깊숙이 들어가면 계곡 끝자락에 희한하게 지은 목조 집 한 채가 있다. 주인 피형준 씨가 혼자서 직접 지어올린 2층집이다. 태극기가 꽂혀 있고 대문이 없는 처마 밑에 ‘바보’라는 작은 간판이 달려 있다. 한쪽 외벽은 레코드판을 붙여 놓았다. 공예품에 가까운 외관 장식이나 건축구조를 보면 무슨 발명가의 집과 같아서 그 집 앞을 지나던 기자가 목공 일을 하고 있는 주인을 보고 “발명가의 집이냐”고 말을 걸었던 것이 인터뷰의 계기가 됐다.

방안에도 온갖 모양의 공작물이 가득 차 있고 뜰에는 야생화 꽃과 열매, 무말랭이를 늘어놓은 채반이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은둔의 도사 같기도 하고 기인 같기도 한 그는 불치의 병으로 삶을 포기하고 산골로 들어오기 전 좋은 직장에 다녔고 아주 멀쩡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았다. 지금은 자연인 자유인으로 혼자 살면서 건강한 체력을 회복해 가끔 산을 내려가 막노동 일로 생활비를 벌어 쓰기도 한다.
그는 말했다. “더도 말고 딱 3년만 살기를 바라며 마지막 인생을 보내려고 왔는데 8년이 됐다” 면서 얼굴에 한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이 깊은 산속에 혼자 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보이는 그대로 자연인이고 자유인이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병에 걸려 세상을 등지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이렇게 무병장수 하고 있다.

 

어떤 병이었나?
2002년 내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서울S병원에서 협심증으로 심장수술을 받고 이어서 한 달 후 위암 말기로 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서 췌장암으로 전이되어 수술을 해도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수술울 해준 병원의 원장으로 내과전문의인 친구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소연했다. 친구야, 오래도 아니고 딱 3년만 더 살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시선을 돌리며 묵묵부답이더라. 삶을 포기하고 정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눈치로 생각했다. 이제 한두 달 살다가 세상 떠는구나 생각하니 서울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인생을 공기 좋은 곳에서 살다가 가고 싶어서 혼자 먼 산골로 떠날 결심을 실천에 옮겼다.

 

많은 산골 중에 이곳을 찾은 데는 어떤 연고가 있는가?
잘 아는 친구가 소유한 땅의 쓸모없는 자투리 하천변을 헐값으로 인수해 집을 지었다. 그런데 몇 해 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은 집이다. 그때 내가 수집한 음반 2만장과 카메라, 우표 등 평생 아끼던 재산을 모두 재로 날렸다. 타지 않고 남은 음반은 버리기 아까워 2층 한쪽에 붙여 벽을 만들었다.

 

국경일도 아닌데 태극기를 왜 내걸었나? 왜 처마 밑에 문패 대신 ‘바보’를 써 걸었나?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집 앞에 태극기를 사시장철 걸어 놓으셨다. 아버지도 유언으로 너의 집에 태극기를 달아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고교 2학년 때인 1986년 별세하신 아버지(피문성)는 잠수침투 훈련을 받은 광복군 출신인데 현충원에 잠들고 계신다. 할아버지(피영준)도 독립군의 자금지원을 맡았던 독립운동가였다. 어른들의 고향은 평북 대동군이다. 원래는 증조할머니께서 독립군 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상하이에 살다가 해방 후 귀국한 아버지는 해방이 3개월만 늦어도 고국으로 침투해 우리 손으로 독립의 한을 풀 수 있었다고 애석해 하셨다.

바보 문패?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은 보이는 그대로 바보 같으니 지나가는 사람이 묻기도 전에 머리를 끄덕이도록 바보 문패를 달아두었다.

 

‘바보’가 되기 전에는 어디서 어떤 일을 했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시절 여의도 경제인연합회 빌딩 건설공사를 주관하던 건설본부에서 건축 자재담당 일을 하던 때가 내 인생의 절정기였다. 정주영 회장에게 혼난 일도 있지만 정 회장도 반말을 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하던 건설 감독관 겸 고문이 나를 인정해주어서 대형 건설사업에 참여해 평탄한 월급쟁이로 살았다. 그러다가 건축자재 사업, 화공약품 제조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어려운 때도 있었다. 다시 개인 기업체에 다니다가 암수술 무렵 정리했다.

 

원래 전공이 건설 쪽인가? 
건설현장의 자재담당을 했지만 건설 분야는 관계가 없다. 서울에 있는 보성중고교를 졸업하고 건국대에서 발효공학을 전공했다. 

 

피씨가 자신이 직접 지은 2층집을 둘러보고 있다.

 

이제 당신이 췌장암을 극복한 병 치유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자. 먼저 어떻게 해서 건강을 회복했다고 생각하는가?
약물이 아닌 잡다한 주변의 들풀과 산속의 잎사귀, 꽃, 열매, 뿌리 등을 건조하고 숙성시켜 먹고 살아서 어떤 산야초가 효능을 발휘했는지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자연 치유과정이었지만 몸에 유익한 식물 이름을 한두 가지로 내세울 수 없다.

 

구체적으로 즐겨 먹은 식물의 이름을 밝혀달라.
알고 보면 산속에서 꽃피고 열매 맺는 초목은 대다수 약초와 같다. 저기 밭둑에 수북한 돼지감자며 민들레, 씀바귀, 칡의 꽃과 새순과 뿌리, 구절초꽃송이, 뽕잎과 오디 등에서 보통 식용으로 이용하는 각종 채소와 냉이, 참나물 등 각종 산나물, 산도라지와 더덕, 달래와 야생 버섯들이 철에 따라 지천으로 피고진다. 그것들을 된장에 찍어 먹고 기름에 튀겨 먹거나  차로 끓여서 먹는다. 새순일 경우는 생식도 한다.

 

그 중에 특별히 몸에 좋은 것으로 느낀 식물이 있을 것이다. 채취 식물을  식용으로 만드는 건조, 숙성, 가공과정을 알고 싶다.
한때 친구가 율금 가공공장을 운영해 그걸 많이 보내주었다. 장기 복용한 것이 몸에 좋았다. 그러나 내 스스로 발견한 명약이라면 무말랭이를 위장 장애의 보약으로 권하고 싶다. 공기 좋은 산속에 잘게 썰어서 말린 무말랭이를 가끔 식사 대신 먹어두면 속이 편안해진다. 아마도 속에서 퉁퉁 불어올라 위장의 독소를 세척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매연으로 가득 찬 도시의 탁한 공기 속에서 건조하지 말고 시골에서 이슬 서리와 눈을 맞아가며 건조하는 과정에 숙성이 된다. 잘못 건조되면 곰팡이가 피기도 하지만 깨끗한 공기 속에서 잘 건조하면 향기가 난다. 우리 집 뜰에 각종 가을 열매와 꽃송이를 건조하는데 그 중에 무말랭이가 가장 많다.

 

더 강조하고 싶은 자연 치유 비결은 없는가?
나는 지하수를 마시지 않는다. 흐르는 자연수만큼 좋은 물이 없다. 이 골짜기 물도 사람들이 놀러와 오염되어 우리 집에서 200미터 쯤 떨어진 산중턱 작은 계곡까지 호스를 연결해 그 물을 식수로 활용하고 있다. 나는 주변의 환자들이 건강 회복에 실패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그들이 지하수를 수도꼭지로 끌어올려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밥은 현미밥이 좋다고 한다. 육식도 하는가?
나는 꼭 현미밥을 고집하지 않는다. 쌀을 가리지 않고 밥을 한다. 산 에 사는 사람들이 생식이나 선식을 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게을러서 편하게 먹는 방법일지 모른다. 음식 맛을 느끼려면 불을 이용하는 요리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나는 고기를 10년째 먹지 않고 살았다. 지금은 냉장고를 두었지만 5년 전까지 냉장고도 없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취미로 카메라와 우표, 레코드를 수집했다는데.
초창기 옛날 유성기 레코드판부터 LP음반까지 2만여 장을 모아 이곳으로 가져왔다가 화재로 태워버렸다. 카메라와 우표도 젊을 때부터 모은 것인데 모두 재가 되었으니 지금 몇 점이라고 밝히는 것이 우습다.

 

최근 SNS에 떠도는 건강 얘기 중에 미국의 의료보험가입자를 대상으로 병원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내용은 병원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진, 병원 치료의 만족도가 높은 그룹이 병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즉 병원에 잘 가지 않는 불신 그룹에 비해 사망률이 26% 높게 나타났다는 얘기다. 40년간 의사로 활동해온 저명한 닥터는 암 오진률이 12%이고 암 검진을 받으면 불필요한 치료를 받거나 맹독성 항암제 후유증으로 빨리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주장도 있다.

나도 그런 주장에 의미를 달고 싶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모든 암을 수술이나 항암치료로 고칠 수 있다고들 하지만 말기암, 담도암이나 췌장암 같은 암 치료는 수술을 해도 장기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부문이다. 나처럼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순리적으로 살면 정신 건강부터 좋아지고 몸도 덩달아 기적 같은 회복과정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는가? 가족 얘기도 듣고 싶다.
며칠 후 건축 공사장에서 인테리어 관련 일을 좀 해주기로 해서 경주로 간다. 두세 달 돈을 벌어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그렇게 산다. 아내와 자식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아들은 대학 나와 회사 과장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딸은 어릴 때 의료사고로 잃었다. 화장을 하고 저 산에서 풍장을 하던 아픔을 간직하고 산다. 아내가 찾아오지만 집안 살림살이를 하기 때문에 함께 이 적막한 곳에서 오래 머물 환경이 아니다.


850고지라는 주봉산 골짜기에 현대식 오두막집 같은 이상한 모양의 집을 짓고 혼자서 사는 피형준 씨는 갑자기 나타난 길손을 위해 따뜻한 쑥차를 끓여주며 잠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을 나누고 싶어도 풀벌레와 산짐승의 울음소리, 졸졸졸 흐르는 냇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모처럼  말 상대를 만나 눈동자를 반짝이며 흥겹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디서 가져온 지 알 수 없는 온갖 형태의 철제와 플라스틱, 목각 등 중고품 고물로 만든 조형물들이 가득 찬 방안에는 노트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인터뷰365’를 소개하기 위해 전원을 연결하자 ‘작은 일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삶’이라는 큼직한 자막이 떠오른다. 자연과 더불어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맑은 공기 맑은 물, 달과 별과 꽃을 벗해 살지만 그는 작은 일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삶을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었다..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interview365@naver.com

 

- Copyrights ⓒ 인터뷰365,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terview365.com 발행인 김두호 ㅣ 편집인 겸 청소년보호책임 김두호
인터넷 신문 등록 서울아00737ㅣ등록일 2009. 1. 8 / 창간일 2007. 2. 20
발행소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콜카빌 801호 l TEL: 02-6082-2221 ㅣ FAX: 02-2272-2130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 Allrights reserved press@interview365.com ㅣ shinyoung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