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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3/05 00:00:00  소혁조




첼로의 메시아, 파블로 카잘스
소혁조의 인터미션


 


[인터뷰365 소혁조]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각종 CF를 비롯한 영상매체에서 BGM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휴대폰의 벨소리로도 사용되는 그 친숙한 16음표의 연속되는 sequence.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prelude 1번이다.


첼리스트에게 있어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야말로 성서, bible인 곡이다. 피아니스트에게 있어 구약성서가 바흐의 평균율이고 신약성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로 나뉘어져 있다면 첼리스트에겐 첼로를 처음 접해 배우고 첼리스트가 되기 위한 걸음마로 필요한 단 하나의 곡이 바로 이 곡이다. 또한 이 곡은 전 세계의 첼리스트들이 모두 한 번 이상씩은 도전, 정복하기 위해 불철주야 연습하고 연주하는 곡이며 곡에서 표현하는 깊은 예술적 경지를 자신의 연주를 통해 인정받길 원한다.


파블로 카잘스, 첼로의 태양, 첼로의 유일신(唯一神)


20세기를 빛낸 수많은 음악가들이 있다.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처럼 그들은 음악예술의 구현을 위해 자신을 불태워 반짝반짝 그 이름을 빛냈다. 많은 이들이 명멸해갔고 또 어떤 이는 사후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도 그 이름이 잊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 위대한 업적이 언제까지나 빛을 잃지 않고 빛날 것이다. 이렇게 20세기를 빛낸 수많은 예술가들 중 어떤 분야에선 누가 원톱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예를 들어 지휘자 중 가장 위대한 지휘자는 누구인가? 라고 물었을 때 어떤 이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또 어떤 이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이름을 댈 수 있다. 피아니스트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은? 이란 물음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외에 몇몇 인물들이 언급될 수 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여러 갈래로 분류되는 특정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인가를 따져볼 땐 복수(複數)의 이름이 거론되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첼리스트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인가? 란 질문엔 복수(複數)의 이름이 거론될 여지가 없다. 그냥 딱 한 사람의 이름만이 우뚝 서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첼로뿐만이 아니라 20세기의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을 딱 한 사람만 언급한다고 했을 때 바로 이 사람이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정답일 것이다. 그 이름. 바로 너무도 유명한 파블로 카잘스이다.




첼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창조주(創造主)


카잘스가 태양, 유일신(唯一神)인 이유. 수많은 별들은 그 생명을 다했을 때 소멸한다. 하지만 태양은 언제까지나 강렬한 그 빛을 잃지 않고 수많은 생명을 관장하는 제1의 에너지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카잘스에게 황제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부적합하다. 황제의 즉위기간 또한 유한하고 물러나는 황제도 있고 새로 즉위하는 황제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일신은 언제까지나 무한한 생명력을 갖기 때문이다.


카잘스가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 받아야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딱 두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 그가 있었기에 첼로라는 악기가 오케스트라, 실내악의 마이너에서 웅웅거리는 저음을 내는 악기로만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독주 악기로 전면 배치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둘째, 그가 있었기에 첼로의 연주법에 혁신을 가져와 현대 첼로주법의 근간을 이룰 수 잇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업적들을 이루기까진 13세 소년 파블로 카잘스가 한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악보가 있었다.

오늘날 첼로의 성서, 첼리스트의 자존심을 건 운명의 곡이라 불리는 명곡인 무반주 첼로 조곡은 카잘스가 그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무려 12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예술적 성과를 이룩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어딘지 모를 헌책방에서 지금껏 썩고 있을지 모른다. 카잘스 시대 이전에도 가끔 연주되긴 했으나 첼리스트들은 이 곡이 기교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하며 기피하였고 이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13세 소년 카잘스가 이 곡의 악보를 발견하며 카잘스에게도, 이 명곡에게도 운명이 바뀌었던 것이다. 카잘스는 이 곡을 12년 동안 연구하였고 이 곡에 무한대의 예술과 철학, 종교성까지 불어넣으며 첼로의 성서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첼로가 비로소 독주 악기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파블로 카잘스에게 첼로의 유일신(唯一神)이란 극존의 칭호를 어찌 붙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대한 예술가로 점지된 인생


카잘스는 1876년에 출생하여 1973년까지 97년을 살았다. 그토록 장수하는 동안 그는 어린시절부터 빼어난 재주를 보이며 이미 위대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고 처음엔 피아노, 오르간을 배웠으나 12세 때부터 첼로의 세계에 눈을 떠 첼리스트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실내악, 협주곡 연주를 하면서 전 세계에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렸고 첼로=카잘스란 등식을 성립하게 하였다. 첼리스트의 활약만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나이부터 지휘자로도 활동하여 여러 분야에 걸쳐 그의 독보적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카잘스가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예술적 재능, 통찰력만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가 진정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보여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손길, 그리고 강자 앞에서 비굴하게 굽히지 않는 강단 있는 행동 때문이다. ‘Workingmen's Concert Association’ 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공연도 많이 했고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섰을 땐 프랑스로 망명하여 프랑코 정권이 존재하는 한 고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연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그 대가로 10년간 첼로 연주를 못하기도 하였다.


파블로 카잘스는 97세까지 장수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공로상을 받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연주회를 열었으며 그 업적은 동시대를 살았던 그 어떤 예술가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카잘스에 대한 수많은 업적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사실 논문 한 편의 분량이 될 것이다. 그만큼 그는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고 영원토록 그 빛을 잃지 않을 무한한 생명을 가진 가장 큰 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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