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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4/10 15:08:52  김두호




[인터뷰] 내 차 몰고 지구 두 바퀴, 세계일주 자동차여행가 조용필
“인생은 짧고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 지금 떠나라”


자신의 차를 몰고 세계일주를 다닌 조용필씨.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한국인에게 여행은 이제 취미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여행은 대다수가 관광회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을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묘미를 즐기며 모험에 가까운 각종 자유여행에 도전한다.


‘자동차 여행가’ 조용필(57)씨는 아내와 아들을 동반, 차를 몰고 서울을 출발해 15개월 동안 세계일주 드라이브 여행을 하고 귀국해 다시 2차 장정(長程)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자동차로 세계일주를 시도한 것은 아직도 전인미답(前人未踏)에 가까운 사례로 볼 수 있다. 강원도 동해항에서 평소 타고 다니던 랜드로바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행 여객선에 싣고 여행길에 올라 바이칼호수와 몽골을 돌아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일주하고 남미로 이동해 다시 미주대륙까지 9만km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자동차 여행가’의 길을 열었다. 한글로 된 차량의 번호판을 달고 면허증도 국내에서 발급한 국제운전면허증으로 당당하게 지구를 누빈 조용필 씨는 가수 조용필씨와 한글 이름이 같아서 일찍부터 가수의 유명세에 얹혀 기억하기 좋은 이름으로 덕을 보기도 하고 또 놀림감이 되는 일도 많았다는 사람이다.

 

그의 여행을 향한 로망은 어릴 때 싹이 텄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흙수저로 바뀐 중학시절, 김찬삼 여행가의 무전여행기를 읽고부터 세계여행을 꿈꾸며 세계지리나 여행관련 서적을 필독서로 끼고 살았다. 안정된 15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정리하고 퇴직금과 전 재산을 빚보증으로 날려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순에 가까운 나이에 전세금까지 빼내 맺힌 일생의 꿈을 실현한 사연이 궁금하다.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라는 것, 인생은 짧고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 지금 넓은 세상으로 떠나라고 하는 것이 조용필 여행가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그의 달려온 길, 세상의 끝을 향해 49개국을 돌며 소원풀이를 한 용기 있는 여행담을 들었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
나는 은행원이었다. 대구에서 학업을 마치고 대구은행에 들어가 15년 넘게 근무했다. 순탄하게 살다가 은행 퇴직 후 대리점 사업을 준비 중 빚보증을 서준 친구의 부도로 퇴직금을 포함해 있는 재산 모두 잃었고 보증 빚을 죄다 떠안았다. 꿈꾸어온 여행은 아예 묻어버리고, 식구들 끼니를 걱정하며 매일 늘어나는 이자를 갚기 위해 몸부림 쳤다. 파지도 주워 팔아보고, 낮에는 체증 심한 길거리에서 생수도 팔았고,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도 하면서 버텼지만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17년 전인 2000년에 50만원을 들고 혼자 서울로 왔다. 서울시내를 방황하다 렌터카 회사에 일당제로 고용되어 일본 관광객을 태우고 시내 관광안내를 하다가 우연히 나를 지켜본 일본인과 연결이 되어 무역중개업을 하게 됐고, 십여 년 동안 죽을 고생 끝에 빚을 다 정리하고 자유로워졌다.
서울에 새로 보금자리를 마련해 식구들과도 다시 모이고, 생활이 안정을 찾게 된 어느날 내 나이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40년 동안 덮어둔 내 꿈, 여행을 향한 필생의 숙원을 풀기로 했고, 이 꿈에 아내와 막내가 동참하여 모든 걸 내려두고 떠나기로 했다. 세 식구가 움직이려면 직접 내 차를 몰고 세계일주를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편하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유라시아 일주에 도전한 가족은 있었지만 자기 차로 세계일주에 도전한 가족은 없었다는 사실에 더욱 고무되어 가슴속에 담아둔 꿈을 실천에 옮겼다.

 

여행을 떠난 것이 언제쯤인가?
미지의 땅을 향해 흥분된 기분으로 떠나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서울 집에서 내 차를 몰고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해 블라디보스토크행 페리호에 차를 싣고 부두를 떠난 날이 2015년 4월 19일이다. 우연이었지만 4.19의거 기념일이었다.

 

가족을 동반했다는데.
나는 아들 3형제를 두고 있다. 그 가운데 동거가족인 막내 아들(조훈 21·대학생)과 동갑내기 아내(이명선)가 함께 갔다. 주로 내가 핸들을 잡았지만 피곤할 때는 셋이 교대로 운전석에 앉았다. 꿈꾸던 여행을 갑자기 결행한 데는 동기가 있다. 어느 날 식탁 위에 놓여진 막내아들의 입영 신체검사 통지서를 보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모험 여행인 자동차 세계일주를 이순에 가까운 부부 두 사람이 다니는 것보다 아들과 셋이 다니는 것이 든든하고 이상적일 것 같았다. 아들도 입영을 앞둔 시기에 여행이 멋진 기념앨범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몽골에서 타이어 펑크가 나서 수리 중인 조용필씨와 아들(위),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숙소를 묻고 있는 중(아래). 사진=조용필

 

15개월 간 지구 두 바퀴 반에 가까운 9만km를 일주했다. 그동안 마주친 세계 도처의 드라이브 관광 여행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명승지부터 알려 달라.
남미의 파타고니아(Patagonia)를 꼽겠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에 걸쳐 있는 환상의 절경지였다. 안데스산맥의 끝자락에 ‘바람의 대지’라고 일컫는 파타고니아 지역은 들판의 나무들이 바람에 시달리고 눌려 대부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고 있다. 유럽 쪽을 대표하는 노르웨이의 절경지보다 훨씬 신비하고 거대한 규모의 피오르드(fiord) 해안과 빙하들이 꿈속의 풍경처럼 시야를 황홀하게 스친다. 기묘하고 험준한 지형과 수많은 호수로 인해 도로 조차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땅이다. 역사적인 풍물과 자연을 고루 인상적으로 보고 느낀 나라라면 이란부터 떠오른다.

 

동해항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선박을 이용하고 또 대륙 간의 이동도 선박편을 이용했을 텐데 자동차 여행은 그게 불편할 것 같다.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하루면 도착한다. 고생한 것은 유럽여행을 끝내고 남미로 이동할 때였다. 유럽에서 브라질로 이동할 때 차만 컨테이너 화물선으로 보내고 사람은 항공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리오 데 자네이루로 차를 보낸 것이 큰 실수였다. 그곳은 전통적으로 세관 통관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렷다. 더구나 관세를 비롯한 여러 부대비용으로 자그마치 1200만원 이상을 지불했다. 상파울루로 보내면 훨씬 쉽게 통관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사전 정보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거쳐 간 곳을 요약해서 얘기해 달라. 아마도 자세하게 들으려면 몇 시간 몇 날도 부족할 것이다.
러시아라면 끝없고 황량한 시베리아부터 떠오른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거슬러 올라가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를 돌아보고 남쪽으로 내려와 몽골을 거쳐 중앙아시아의 여러 스탄 국가들을 다녀 보았다. 한국인 최초로 내 차를 몰고 파미르고원을 올랐으며,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으로 들어가 북유럽, 동유럽, 서유럽 여러 국가를 돌아 영국 스코틀랜드까지 내달렸다. 런던에서 남미로 건너가 이구아수폭포 등을 보고 대륙의 끝 우수아이야까지 내려갔다. 칠레의 푼타아레나스 항의 한국인 식당에서 한국 라면 맛을 보며 향수와 여독을 풀기도 했다. 다시 안데스산맥을 타고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페루의 마추픽추 등 남미의 수많은 국립공원과 명승지를 고루 둘러보고 파나마를 비롯한 중미의 여러 나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 남부로 입국해  워싱턴의 백악관도 스쳐 지나고 뉴욕의 맨하탄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캐나다로 들어간 다음 미국 북부와 서부, 옐로우 스톤과 그랜드캐넌, 록키산맥 등을 넘어 다닌 뒤 LA에서 인천으로 차를 실어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문화와 언어가 엇갈리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나 실수, 사고는 없었는가?
나는 초급영어와 중급일어를 하는 정도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어,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기네 언어를 사용한다. 남미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현지인들은 우리를 외국인인 줄 알고 많이 배려해 준다.
가끔씩 캠핑을 할 때는 차가 우리 세 식구의 이동식 가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되는 지역에서 늘 구글 지도로 미리 확인하고, 비온라인 지역에서도 위치를 알 수 있는 스마트 폰의 Maps Me 앱으로 길안내를 받으며 세계를 돌았다.

 

그럼 15개월간 무사고 무사건의 평화로운 여행을 했다는 건가?
정말 운 좋게 접촉사고 한 번 나지 않고 돌아왔다. 대부분의 중앙아시아와 남미 오지에는 아직 비포장도로가 많다. 타이어가 날카로운 돌에 찢겨 못쓰게 되는 사태도 많이 당했다. 늘 두 개의 보조 타이어를 싣고 다녔다. 15개월 동안 모두 11개의 타이어를 날렸다. 몽골 사막길과 눈길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도 몇 번 있었다.
가장 기가 막힌 일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겪었다. 경찰서 정문 앞의 도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시내 관광을 하고 돌아오니 차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둑들이 뒷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실내의 물건을 털어가면서 도난경고음이 울려 견인소로 옮긴 모양이었다. 경찰서 정문 앞에 세워둔 차 유리창도 깨고 밑반찬까지도 다 털어갔다.
 
어떻게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는가?
현찰과 여권은 가지고 다녔지만 많은 살림살이가 없어져 막막했다. 때마침 로마여행 중이던 누님네 식구가 일정을 포기하고 급히 파리로 건너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을 넘겨주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날이 추석날이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한가위를 프랑스에서 맞이했었다.

 

우유니 소금사막 질주 중(위), 땅끝 우수아이야(아래).

 

운행수칙 등 교통법규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처음 가는 곳이라면 당연히 운전사에게는 심리적 불안이 따를 것이다.
어느 나라든 차선을 지키고 과속을 하지 않고 신호 등을 준수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지나며 많이 겪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경찰이 차를 세운다. 교차로에서 조금만 천천히 가도 통행방해라고 잡혔다. 진입 후 노란 불로 바뀌면 신호위반, 라이트를 안 켰다고, 또 라이트를 켜고 다닌다고, 썬팅을 했다고, 비자가 없다고.... 여권과 자동차 서류를 가지고 자기네 차로 가서 흥정을 시작한다.  근데 그 패턴이 똑같다. 너는 지금 엄청난 법규를 위반해 죽을 죄를 졌지만 자기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다행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흥정을 해온다.

 

돈을 얼마나 요구하나.
하하하. 처음에는 무려 500달러를 요구한다. US 500$이다. 그러다가 내려간다. 200달러, 100달러. 결국 50달러... 거의 5달러 선에서 해결했다. 그런데 어떤 경찰은 내 선글라스를 껴보자고 하고선 그냥 가려 해서 겨우 뺏은 적도 있다. 내 운동화와 자기 구두와 바꾸자고 한 경찰도 있었고, 점프를 벗어주고 가라는 요구도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선 특히 썬팅 때문에 시비를 많이 당했다. 결국은 강제로 뜯기기도 했고, 경찰 앞에서 내가 벗겨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에서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발급하는 국제면허증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 그런데 여행기간은 그보다 길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국내에 있는 둘째아들이 재발급을 받을 수 있도록 위임장과 서류 등을 준비해 두고 출발했다. 중미 여행 중에 새로 받은 면허증을 DHL로 받았다.

 

여행국가 중 중국이 빠져있다.
중국은 외국인이 자기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가 무척 어려운 곳이다. 규제도 많고 제약도 엄청난 특이한 체계이다. 국제간의 협약인 국제운전면허증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운전하려면 중국 면허 시험을 치르고 면허증을 교부받아야 하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따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내 차로 운전하여 중국을 여행을 다녀 볼 예정이다.

 

여행기록을 정리해  ‘내차로 가는 세계여행’이라는 사진 중심의 책을 두 권 출간했는데 긴 기간의 세계 여행이지만 아프리카가 빠져있어서 아쉽다.
그렇지 않아도 꿈을 꾸고 있다. 이 여행을 다녀와서 내 꿈을 이룬 것이 아니고, 나는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아마 죽는 날까지 이런 꿈은 내 가슴속에서 반복하리라 여겨진다.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약 2개월 일정으로 일본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환경이 허락한다면 내년에는 오세아니아 대륙을 달려보고 싶다. 내 차로.
그리곤 언젠가는 태국으로 차를 가지고 가서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인도와 네팔을 거쳐 히말리야를 올라갈 수 있는 경로를 살펴보고 있다. 파키스탄과 이란, 터키를 지나 아프리카로 들어가 볼 계획이다.

 

차를 싣고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의 티티카카호수를 건너는 조용필씨.

 

전세금을 뽑아 여행을 떠났다는데 도대체 경비는 얼마나 들었는가?
여행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고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중요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이 없어 못가는 사람이 많다. 우리 식구들의 인생에 시간이 덤으로 더 많아서 15개월간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여행에서 가장 많이 투자한 것은 시간이다.
약 1억7천만 원 정도 쓴 것 같다. 하지만 40년 넘게 꾸어온 내 꿈의 가치는 얼마일까, 또 우리 세 식구가 세계를 다니며 머리와 가슴속에 담은 세상은 얼마짜리일까 생각해보면 결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로 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준비해야할 정보를 간추려서 얘기해 달라.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여행을 결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다. 네비게이션이 세계 구석구석을 안내해주고, 스마트폰으로 각종 정보를 검색하면 모든 것이 풀린다. 언어 번역도 스마트폰이 자동으로 도와주는 시대이니 미리 걱정할 게 없다. 부딪쳐라.
   
여행을 통해 남다른 인생의 즐거움을 체험한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
흔히 여행은 세 번 떠난다고 한다. 여행을 꿈꾸면서 한 번, 실제 여행을 다니면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여행을 다녀와서 추억을 즐기면서 다시 한 번 길게 떠난다고 한다. 내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여행을 꿈꾸면서 행복했었다. 여행은 내게 평생 꿈꾸는 즐거움을 주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미지의 땅, 새로운 풍물과 문화, 각기 다른 역사를 보고 세계인들이 숨쉬고 살아가는 현장을 직접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지, 우리가 작은 국토에서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지를 깨달은 매일 매일이 새로웠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매일 여행을 추억하고 곱씹으며 즐거워하고 흥미로워하고 있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떠나야지 다리가 떨리면 가지 못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지금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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