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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9/14 08:34:09  김리선




[인터뷰]광고전문가 이제석 "나는 공익광고 분야 개척자"
채식주의에 '장기기증' 문신 한 이유…"내가 설득되어야 남도 설득할 수 있어"/김리선



이제석 대표/사진=손유린 인턴기자
【인터뷰365 김리선 인터뷰어】
"저는 공익광고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죽을 때까지 공익광고를 할 것입니다. 이 분야의 개척자로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35살 청년은 공익 광고에 대한 이야기부터 말문을 열었다. 지방대를 나와 취업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그가 해외 광고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국내에서 알아주는 광고 전문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를 지탱한 원천은 나름의 결연한 광고 철학에서 비롯됐다. '내 자신이 먼저 설득되어야 남을 설득할 수 있다'는 소신에서다.

 

이를 위해 직접 몸에 '장기기증' 문신을 새겼고, 채식주의자도 됐다. 국내 공익광고 1인자로 불리는 광고전문가 이제석(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의 씩씩한 내면의 소리는 거침이 없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광고들로 넘쳐난다. 광고가 공해로 느껴질 때도 있다. 찰나의 순간에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야 하는게 광고다. 그의 광고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발함이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끌리는걸 해야 즐겁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이른바 '잘나가던' 그가 세계 유수 광고사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하고 싶은 광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일이 공익광고였다. 이 대표는 "돈을 위한 광고가 아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주는 광고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석 대표가 제작한 광고들. (사진왼쪽위부터 시계방향)무료약물치료상담전화 129 "쉿, 약끊는 약 있습니다", 국가 보훈처 "아빠, 우리 태극기 달아요.", 대구 달서구 선사유적공원 안내판 시리즈, 독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제공=이제석광고연구소

 

-제작한 광고들이 늘 화제다.


광고가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누가 만들었냐에 집중이 된다. '광고쟁이'의 숙명이다. 광고를 위해 노이즈를 만들어야 하니까. 사실 광고쟁이는 앞에 나서기 보다는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언론에서 여전히 내 안부를 묻기도 하고, 최근 동향을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 아직도 나한테 궁금한게 있나, 의아할 때도 있다. 사실 난 유명인도 아니지 않나.

 

(그는 대학 졸업 후 그야말로 치열한 20대 시절을 보냈다. 대구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수십군데 지원한 회사에서 받아준 곳은 없었다. 세계 최고 광고 전문가를 찾아 배우고픈 마음에 달랑 500만원을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6년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 광고디자인학과 3학년에 편입한 후 6개월 만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세계 유수의 국제 광고제에서 2년간 30여개의 메달을 휩쓸며 이름을 날렸다.

 

2007년 국내 언론에 '한국에서 홀대받던 미국 한인 유학생이 국제 광고공모전을 휩쓸다'란 내용으로 첫 매스컴을 타며 유명세도 치렀다. 졸업 후 내놓라 하는 세계적인 광고회사에서 잠시 몸을 담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광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귀국, 2009년 이제석광고연구소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그를 모델로 한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2013년)도 방영된바 있다.)

 

이제석 대표가 광고제에 선보였던 대표 작품들. (왼쪽부터)대기오염의 위험성을 담은 '굴뚝총', 반전공익 광고 '뿌린대로 거두리라', 장애인을 위한 공익광고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등의 히트작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제공=이제석광고연구소

 

-한국행을 결심했을 당시 당초 목적은 달성한 것 같나.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일한지도 10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왔다는 점이 뿌듯하다. 자기 일을 계속한다는 건 축복이고 행복한 일이다. 이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내겐 직함이나 소속은 중요치 않다. 장소도 물론이고.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하니까.(웃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상황에 따라 해외로 가서 일을 할 수도 있고, 환경이 더 안 좋을 곳으로 갈 수도 있는거고.

 

-'세상의 중심은 나'란 말은 어떤 의미인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위치, 나를 필요로 하는 위치,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게 아닌가 싶다는 의미다. 난 내 현재 위치가 만족스럽다. 내 일과 재능을 발현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나.


사실 요즘에는 주위의 눈치가 좀 보인다.(웃음) 지난 10년간 작품을 통해 언론에 주목을 받다보니 공인 아닌 공인이 됐더라. 이에 따른 사회적 책임감도 따른다는 것도 알았다. 작은 현상이나 내 파편적인 정보를 보고 크게 해석하거나 전체를 유추하는 경우들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오해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은 저럴꺼야, 이럴꺼야 단정을 짓더라.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  

 

(그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대선후보 당시 선거용 벽보로 불거진 논란과 관련해선 "오해로 빚어진 일들"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러나 "후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업 비중이 공익광고가 대다수다.

 

예전 상업광고 비중이 30~40%정도였는데, 요즘에는 10~20%미만으로 낮아졌다. 앞으로 공익광고를 100%까지 높이는게 목표다.

 

-상업광고를 받는 경우는.

 

정말 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있으면 작업을 하긴 하지만, 우리는 따로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다. 꼭 우리랑 하겠다는 경우만 받고, 먼저 제안 하는 경우는 없다. 새로움을 위해 우리를 찾기도 하는데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까다롭게 받기도 하지만, 우선 내켜야 하니까. 내 자신이 설득이 안 되면 못하겠더라. 작업을 한번 하면 몇 달씩 걸린다. 길게는 1~2년씩 작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 싫어하는 주제로 일을 하는 건 너무 괴롭다. 최근 진행중인 장기기증과 관련된 광고작업을 하면서 직접 문신을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얘기를 하면서 그는 가슴에 새겨 있는 문신을 보여줬다. 문신에는 '나는 장기/조직 기증을 희망합니다'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문신을 진짜 한건가.

 

내가 설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겠더라. 근데 설득이 너무 되도 문제더라.(웃음) 난 자아가 강하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귀가 무척 얇더라. 시민단체와 NGO들과 일하면서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 2년 정도 부분 채식도 하고 있다. 해산물을 먹는데 육고기는 먹지 않는다.

 

(사진왼쪽)이제석 대표는 장기기증과 관련된 광고작업을 하면서 가슴에 직접 문신도 했다. 문신 하단에는 '나는 장기/조직 기증을 희망합니다'란 문구가 쓰여있다.(사진 오른쪽)13일 공개된 질병관리본부의 장기기증 캠페인 홍보광고. 이제석 대표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모티브로 '장기기증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메시지를 형상화시켰다.

 

의뢰를 받았을 때 몸과 마음, 영혼이 작업에 풍덩 뛰어들지 못하면 가짜를 만들게 된다. 진심이 아닌 연기라고나 할까. 가짜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진심어린 메시지를 뽑아내기 위해선 광고를 사랑해야 하고, 일하는 사람과의 신뢰도 중요하다. 단지 돈 때문에 억지로 한 경우엔 작업이 잘 안나온다.

 

사실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나도 처음엔 장기기증을 할 생각은 없었다. 작업을 위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거다. 장기 기증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신체 훼손이라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보존이란 사실을. 장기기증캠페인 슬로건도 '장기기증은 신체 훼손이 아니라 보존이다'다. 수술칼도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게 아닌가. 장기기증도 더 좋은 곳으로 이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명의 뇌사자가 9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

 

 -공익광고를 고집하는 이유는.

 

상업광고는 그 시기나 시점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자살예방이나 장기기증 같은 공익적인 사안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가야 할 부분 아닌가. 난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다. 생각이나 행동이 자유롭다. 공익광고도 본능에 끌린거다. 일하다보니 이윤을 밝히는 사람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연봉 10억을 준다고 하더라도 불길 속에 뛰어들고, 조폭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분들에게는 사명감이 있다. 내가 공무원을 좋아하고, 시민단체를 좋아하는 이유다. 마음이 가는 일이니 작업도 잘 나온다. 무엇보다 돈 이상의 보람도 있다.

 

부산 경찰청의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1탄(사진 위), 서울특별시&국제앰네스티의 '인권은 말로만 하는게 아닙니다. 나부터 행동으로 직접 실천합시다.'

 

-공무원들과 같이 일하는 경우도 많겠다.  

 

작업상 많이 만난다. 자칭 '공무원 심리 전문가'다.(웃음) 공무원은 아무나 하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성향에 맞는 분들이 있더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 따뜻한 가슴과 사명감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같이 일을 하다보면 아쉬운 적도 많다.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만 하려는 분들도 있다. 요즘 공무원 열풍인데, 공무원 선발기준을 성적보다는 성향에 더 초점을 맞췄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평소 남을 돕기 좋아하나.

 

사실 난 이런 시선이 두렵다. 공익광고를 한다 하면 이런 한 부분만 보고 내가 공익적인 사람이고 성자같은 사람으로 보여질까봐서.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전체로 확대하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 스럽기도 하다. 글쎄. 난 내가 아주 비굴한 것 같지는 않고, 약간의 정의감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공익적인 면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의미 있는 사업을 돕고 싶은 것 뿐이다. 난 창작자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슬럼프가 올 때도 있나.

 

매일매일 온다. 자주 온다. 하기 싫을 때도 많다. 그러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결국 일로 풀어야한다. 대신 더 재미있는 작업을 하려한다. 순수성이나 예술성, 공익성이 더 높은 것들. 내 인생의 신조가 ‘재미있게 살자’였는데, 요즘은 좀 헷갈린다. 재미있게 사는게 답인줄 알았는데, 모든 재미 뒤에는 숙취가 오니까.

 

-숙취라니?

 

재미가 끊어지면 ‘숙취’와 ‘금단현상’이 온다. 난 슬럼프를 이 두 단어로 표현한다. 예전엔 전기가 매일 통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지금은?

 

지금은 통했다 안 통했다 한다. 뭔가 찌릿찌릿하고 심장이 뛰어야 하는데, '전기발'이 떨어지면 슬럼프가 온다.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다보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창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뚝딱 일이 금세 완성되는 줄 아는 분들도 있고. 10년씩 같은 일을 하다보면 한번 씩 반복되는 게 지루할 때도 있다. 그러면 이런 각도, 저런 각도에서 계속 시도한다.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하려한다. 밝고, 창의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일하면서 '아직 내 (칼)날이 안 죽었구나'를 느낀다. 아무리 백만금을 주더라도 작업할 수 있는 양 이상의 것은 받지 않는다.

 

-재정적인 부분은 신경 안쓰나.

 

나는 돈이 많다고, 그렇다고 적다고도 말할 수 없다.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적당히 있다고나 할까. '적당히'는 자기 만족에 달린 거니까.(웃음)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구미가 당겨야 작업을 하겠더라.

 

공익 광고 중심으로 한다고 해서 전혀 돈이 안 되는건 아니다. 10년 정도 공익 광고를 하다보니 이 부분에서는 1인자라고 자부한다. 국내 대형 광고사와 붙어도 커리어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를 따라올 광고회사는 없다고 본다. 이 시장을 우리가 만들으니까. 아마 20~30년이 지나면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다. 죽을 때까지 공익광고를 하다보면 이 분야의 가장 선구자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작업 중인 이제석 대표. 시공에도 참여하고 직접 중장비도 다루기도 한다./제공=이제석광고연구소

 

-현장일이 많은가.

 

많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몸 쓰는 육체노동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노동은 신성한 일이다. 현장 작업이 없더라도 평소에 몸을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죽어있는 감각들이 깨어나면서 뭔가 살아있는걸 느낀다. 큰 짐이 없으면 이동할 때도 차 대신에 자전거로 한다. 마포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서울역까지도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자전거를 타고 왔다.) 창작업은 수명이 짧다고들 하는데, 거장들은 70~80세에도 좋은 광고 카피를 쓴다. 창작은 나이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건강한 마음과 몸 관리가 중요하다고 본다.

 

-'광고천재'로 불린다. 재능이라 생각하나.

 

글쎄. 재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내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도 해봤고, 물론 현재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이상을 잃어본 적이 없다는 것. 내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을 한다거나, 직업관이나 가치관을 바꾸지 않았다. 돌아보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상만 추구하면서 하늘에 둥둥 떠다닌 건 아니다. 이상을 추구하다보니 현실적인 기반도 갖추게 됐다. 발을 땅에 디디면서 눈은 하늘에 있는 별을 보고 있달까. 이상 뿐 아니라 현실 감각도 중요하다. 나는 광고도 실용성과 심미성, 아름다움과 아이디어를 다 갖춘 작업을 추구한다. 어르신들은 내게 철없다고도 말씀하신다(웃음). 나는 이상주의적인 부분과 현실주의적인 부분 모두 잘 충족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대학 졸업 후 원하던 곳에 입사했다면.

 

1년 하다 그만뒀겠지.(웃음) 난 조직생활이 안 맞는다.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다보니 자영업이 맞다. 예전 한 대학교에서도 오란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다. 한 곳에 매여 있을 자신이 없다.

 

 

-'현재' 이제석에 대한 식구나 지인들의 인식은 좀 달라졌나.

 

(이 대표가 쓴 '광고천재 이제석(학고재)'에서 그는 '한때 루저'였다고 소개된다. ‘의대에 간 형에 밀려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만 그리며 시간을 죽였고, 중학교 때는 수업 불량으로 숱하게 얻어터졌다’고 적혀있다.)
 
저에 대한 인식은 어렸을 때 대하던 그대로다. 좀 허접해 보이는?(웃음) 나를 달리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면 아직도 "너 예전에 랭귀지(language)도 못 읽어서 랭과지로 읽었쟎아"라고 놀린다. 나 역시 내가 바뀌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대우 하는게 불편한 것 같다.

 

-광고 이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비밀카드가 하나 있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건축 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더라. 도면을 한번 보면 이해가 된다. 그동안 시공에도 참여하고 옥외광고판을 많이 제작하다보니 철골구조작업에도 눈을 좀 떴다. 설계도나 도면도 그릴 수 있고,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도 몰 줄 안다.

 

이를 기반으로 서울 외곽의 맹지를 저렴하게 구매해 공공 타운을 형성하고 픈 꿈이 있다. 주거난도 극복하고, 문화공간도 만들고, 가정 형편이 안 좋거나 오갈 데 없는 청년들에게 헐값에 주거 제공도 해주고. 공동체 같은 타운이랄까.  또 비행기 조종도 해보고 싶고, 배도 만들어서 한번 띄워보고도 싶다. 물론 죽을 때까지 광고를 손에 놓지 않겠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난 세상을 더 뜨겁고 눈부신 곳으로 만들고 싶다. 내 스스로를 거대한 용광로 불꽃처럼 활활 불질러 한 점 재도 남김 없이 모두 불태우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 

 

 

글=김리선 인터뷰어

사진= 손유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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