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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3/20 00:00:00  조현진




[민자씨의 황금시대] 우리는 어쩌면 ‘특별한 초연’을 만났다.
오랜만에 등장한 극의 힘을 믿는 창작극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겨우 5명의 배우가 등장할 뿐이었음에도 무대는 작았다. 그래서 당연히 이 무대 위에는 숨거나 도망칠 공간이 없다. 막이 오르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든 배우 양희경이 지친 얼굴로 무대에 등장하자 200여개의 눈초리가 그녀를 집중하기 시작한다.


연극은 말 그대로 극(劇)을 연기하는 것이다.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재담가나, 훌륭한 성대를 가지고 있는 소프라노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다. 신기한 동작으로 눈을 홀리는 서커스나 마술과 연극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사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기본적인 원칙’의 중요성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연극이 ‘극과 상황’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말과 노래, 혹은 춤 등의 다른 부대적 요소들에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창작극이 사라지는 환경이 되었고, 대형뮤지컬은 활성화가 되었지만 우리나라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는 시들해지고 진짜 ‘연극’은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김경익의 연출



이렇게 긴 사설을 먼저 나눈 이유는 <민자씨의 황금시대>라는 기특한 창작극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난 3월6일부터 고작 230석의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초연되고 있는 이 연극은 대단한 광고나 요란한 홍보와 선전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젊은 작가 김태형의 희곡 ‘당신의 의미’를  몇 년동안 연출가 김경익과 프로듀서 김의숙은 꾸준히 만지고 고쳐왔다. 그러다가 양희경의 합류가 결정되며 세상에 등장한 이 연극의 특별함은 앞에서 길게 설명한 바로 그 연극의 기본원칙인 ‘극’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 버린 딸을 찾아오는 사고뭉치 어머니 민자씨(양희경)와 스물 네살의 딸 미아(심이영)는 당연히 불화(不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극은 이 둘의 화합을 위해 달리지 않고, 더 큰 시련과 사고(?)의 수렁으로 이 모녀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마지막 이 둘은 ‘상대방을 위한 화해’가 아닌 ‘자신의 구원’을 위한 선택으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봄날은 간다>로 재능을 인정받았던 연출가 김경익은 이 흐름을 배우의 능력이나 재치 있는 대사의 힘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무모할 정도로 그는 처음부터 두텁게 극과 상황을 쌓아가며 관객을 설득하려고 덤빈다. 참을성 부족한 관객들에게 그런 시도는 어색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에 관객은 김경익에게 항복 당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배우를 보던 눈과, 대사를 듣던 귀는 진정한 ‘극’ 속에 몰입된다. 그렇게 관객을 집중시키며 극의 하이라이트로 달려간 이 연극은 그 순간, 이 고조된 감정을 남발하거나 길게 잡아가지 않는다. 언어의 유희와 눈의 만족에 익숙해져버린 관객들에겐 아쉬울 정도로 짧고 단순하게 모든 상황을 정리하며 종료시킨다. 이것은 참 오랜만에 연극에게서 느껴본 경험이었다.



연극의 진심을 말하는 <민자씨의 황금시대>



물론, 양희경을 중심으로 무대를 채우는 심이영, 최명경, 김영준, 윤인조라는 다섯 배우도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처음 무대에 선다는 심이영은 ‘발견’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민자씨의 황금시대>가 받아야 하는 진짜 칭찬은 아직 대학로에 ‘극의 힘’을 믿는 연극이, 그것도 창작극이 출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첫 공연을 시작한지 겨우 열흘이 지난 이 연극을 아직 ‘완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확실히 고쳐나가야 하는 소소한 서투름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자씨의 황금시대>의 초연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당부하고 싶다. 이것은 어쩌면 유명한 혹은 앞으로 반드시 유명해질 작가의 ‘초판’을 소장하는 것과 같은 일일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연극의 진심이 우리시대에 선물한 ‘특별한 초연’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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